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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이란 제재에 세컨더리 보이콧…한국에 불똥튀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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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이 21일(현지시간) 새로운 대이란 경제 제재를 발표하며 제재 대상과 금융거래를 하는 제3국 개인이나 기관에도 제재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상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 제재 대상과 거래하는 외국인이나 기관도 제재)을 적용할 수 있다는 뜻이라 한국 기업과 은행들이 주의할 필요성이 더 커졌다.

“무기 금수조치 위반 제재” 밝혀 #간접거래 제3국 개인·기관도 타깃 #적발 땐 자산압류·금융거래 차단 #미 국무부 “북한과 협력 막을 것”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런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성명을 통해 “이란의 핵, 탄도미사일, 재래식 무기 개발을 억제하기 위한 새로운 조치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란의 핵·미사일 개발에 관여한 27개 기관과 개인도 제재 명단에 올렸다.

행정명령은 이란에 대한 재래식 무기 금수 조치를 위반한 개인이나 기관을 제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란 정부에 무기를 수출·입 및 공급하거나 이에 도움을 주는 자금 지원, 기술 이전 등을 한 경우에 미국 내 자산은 압류되고, 미국 금융기관과 거래할 수 없다.

특히 이런 위반 행위자를 지원하는 모든 이를 제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모든 이’의 국적에는 제한이 없고, 위반 행위자와 금융 거래를 하는 경우에도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외교 소식통은 “이 부분이 세컨더리 보이콧의 요소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들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이란과 직접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제3자를 거쳐 간접적으로 거래하는 것도 제재 위반으로 간주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행정명령이 타깃으로 한 ‘이란 정부’에는 이란중앙은행도 포함된다. 소식통은 “미국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에 제재에 위반되는지 상세한 설명이 나오긴 해야겠지만, 일단 경각심을 갖고 외국의 업체, 금융기관과 거래할 때 유의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란에 대한 이런 고강도 조치는 최근 미국이 중재한 ‘아브라함 협정’과도 무관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통해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 간 국교 정상화의 토대를 마련했고, 대선을 앞두고 최고의 외교적 업적으로 자랑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NYT)는 “미 관료들은 대이란 제재를 이와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설명한다. 이란에 대항해 중동을 연합시키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행정명령 서명 직후 국무부 청사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윌버 로스 상무장관 등이 등장해 직접 새로운 행정명령에 대해 설명했다. 각료 4명이 총출동한 것 자체가 미국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오늘 우리의 조치는 전 세계적으로 들어야 할 경고”(폼페이오 장관)라는 고강도 메시지를 발신했다.

앞서 이란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및 독일(P5+1, 미·영·프·중·러+독일)은 2015년 이란과 핵 합의를 타결하고 공동행동계획(JCPOA)을 마련했다.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면 유엔 안보리는 대이란 제재를 일부 해제하되(일몰 조항), 이란이 합의를 위반하면 자동으로 제재를 원상태로 되돌리는(스냅백 조항) 게 핵심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일몰 조항을 문제삼아 합의에서 탈퇴했다. 그래놓고선 이날 “(스냅백 조항에 따라)대이란 유엔 제재는 복원됐다”(트럼프 대통령)고 선언했다. 물론 안보리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다른 합의국이 반대했고, 기술적으로 유엔 제재가 복원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다. 미국이 앞으로 이를 준수하지 않는 유엔 회원국은 독자 제재 등을 통해 처벌하겠다는 의도를 명확히 밝힌 만큼 유엔 제재의 실효성은 복원됐다고 볼 수 있다.

제재의 타깃은 이란이지만, 미국은 북한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이란과 북한 간 미사일 협력에 관여한 인물도 제재 대상에 포함했기 때문이다. 이란 항공우주산업기구(AIO) 하부 조직인 샤히드 헤마트 산업그룹(SHIG) 관련자들이 북한 미사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우주발사체 발사에 참여했다고 국무부는 설명했다.

엘리엇 에이브럼스 미 국무부 이란·베네수엘라 특별대표는 “이란이 북한과 협력하는 데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유지혜 국제외교안보에디터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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