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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종이상자 배달' 논란…"되레 아이스박스 온도조절 어렵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운반 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돼 접종이 중단된 독감 백신과 관련해, 이 백신을 유통하는 신성약품 측의 관리 부실 논란이 일고 있다. 일선 현장에서 “백신을 종이박스로 전달받았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냉장차 이용시엔 용기 규정 따로 없어 #신성약품 "냉장차로 이동, 종이박스 자체 문제 안돼"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날부터 13~18세용 무료 접종에 쓰일 백신이 일부 병원에 종이박스를 통해 운반된 것으로 확인됐다. 2~8도의 냉장 상태로 보관돼야 하는 백신 일부가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상온에 어느 정도 노출됐다는 얘기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22일 오전 브리핑에서 “의료기관까지 전달되는 과정에서 냉장온도가 일부 유지되지 않았다는 문제가 제기돼서 그 부분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었다.

22일 서울 송파구 한 병원에서 간호사가 독감백신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서울 송파구 한 병원에서 간호사가 독감백신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당국은 구체적인 노출 정도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정 청장은 “현재까지는 냉장차로 지역별 재배분하는 과정에서 물량 일부가 상온에 노출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노출 시간과 문제 여부 등은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가예방접종사업은 조달청이 백신 공급 공고를 내고 도매업체들이 입찰에 참여해 낙찰되면 각 제조사에 필요한 만큼의 백신을 수령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신성약품 측은 냉장 유통할 수 있는 전문 물류업체를 통해 보건소나 병원 등으로 백신을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종이박스로 전달받았다” 문제제기

현장에선 백신을 인수할 때 문제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온다.

경기도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보건소에 150개 백신을 신청해 납품업체로부터 최근 물량을 받았다”며 “문제가 생긴 뒤 어떻게 갖고 왔는지 직원에 물었더니 종이박스에 담아 왔다고 하더라. 박스가 차가웠다는 걸 보면 냉장차량을 이용한 것 같긴 한데 보통 아이스박스에 보냉재(아이스팩)를 넣어 보관해 오는 게 상식”이라고 말했다.

이 전문의는 “백신 제조회사 측에선 어느 정도 상온 노출은 괜찮다고 하는데 노출된 시간이 어느 정도였는지, 이 시간이 누적되면 백신이 변질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보건당국이 정확한 실태 파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조사들은 백신이 일정 시간 상온에 있어도 효능에 문제가 없도록 만들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날 의사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메디게이트에도 이런 글이 올라왔다. 의사로 추정되는 한 회원은 “(백신을)종이박스에 그냥 들고나와 병원에 옮겼다”며 “스티로폼 아이스박스에 넣지 않았다”고 썼다. 여기엔 “아이스박스에 아이스팩도 아니고 그냥 종이상자에 그대로 전달받았다”는 댓글이 달렸다.

한 보건소 관계자는 “정부의 예방접종 관련 지침에 따르면 백신은 늘 콜드체인을 유지하라고 돼 있기 때문에 백신을 인수할 땐 업체로부터 아이스박스로 받아왔다”며 “간혹 병원에서 초기에 배정받은 물량 외 추가로 백신이 필요해 보건소로 찾으러 올 때도 제대로 준비를 안 해올 경우 보건소에서 아이스박스를 준비해놨다가 백신을 담아 준다”고 말했다.

한 시민이 인플루엔자(독감) 예방접종을 하고 있다. 뉴스1

한 시민이 인플루엔자(독감) 예방접종을 하고 있다. 뉴스1

상온에 짧게 노출되는 건 크게 문제가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한 의사는 메디게이트에 “인플루엔자 백신을 포함해 대부분의 백신은 수시간 정도(노출)은 괜찮다”며 “냉장차에서 의원까지 옮기는 잠시 동안의 문제라면 관계없다. 다만 창고·차량 보관에서 냉장으로 적절히 보관됐느냐를 따져봐야 한다”고 썼다.

정은경 청장도 이와 관련해 “현재 인플루엔자는 사(死)백신이다. 바이러스를 일단 죽여서 불활성화시켜 만든 백신”이라며 “홍역이나 수두 같은 생(生)백신은 굉장히 냉장온도 유지가 중요하다. 사백신은 그것보다 덜 민감하다고 알려져 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일지에 대한 것은 전문가의 의견과 품질검사를 진행한 뒤 엄밀하게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의 백신 용기 관련 규정. 자료 식약처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의 백신 용기 관련 규정. 자료 식약처

현재 정부 지침에선 백신 운반이 필요한 경우 콜드체인 유지가 중요하고, 적절한 용기나 이송용 냉장기·냉동기에 포장해 적정온도가 잘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질병관리청이 지난 7월 발표한 ‘백신 보관 및 수송관리 가이드라인’ 개정안에는 “백신 콜드체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조·수입업체에서 생산·수입된 백신을 유통업체를 거쳐 접종이 이뤄질 때까지 적정온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돼 있다.

가이드라인에는 백신을 담아 옮기는 용기까지 가~다형으로 구분해 용기에 따라 최소 5시간에서 최대 24시간까지 10도 이하 온도를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식약처 관계자는 “냉장시설이 없는 차량을 이용할 경우 용기 자체로 저온을 유지할 수 있게 운송 용기를 따로 규정한 것”이라며 “일반적으로 냉장탑차로 병원까지 도착한 뒤 병원 냉장고로 이송하는 경우 용기 규정은 별도로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신성약품의 경우 구체적인 노출 경로와 시간 등을 조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냉장차로 백신이 운반됐고, 의료기관에 차량이 도착한 뒤 병원 냉장고로 배달할 잠깐 사이에 백신을 종이박스로 옮겼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일부 기사들이 냉장차의 문을 한참 열어두거나 판자 위에 박스를 쌓아두고 확인작업을 했단 의혹도 있어 업체 측의 유통 과정 전반을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백신에 온도 관리가 중요한 건 효력이나 안전성 등에 영향을 미쳐서다. 높은 온도에서 백신을 보관하면 주성분 중 하나인 단백질 함량이 낮아지며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문은희 식약처 바이오의약품 품질관리과장은 22일 브리핑에서 “백신이 상온에 노출되면 품질에 이상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제일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은 단백질 함량”이라고 말했다.

문 과장은 “함량이 낮아지면 백신의 효과가 약간 떨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며 “백신의 효과뿐만 아니라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안전성 문제는 없는지까지 확인하겠다”고도 덧붙였다.

관리 미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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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선 신성약품 측이 올해 처음 정부와 조달 계약을 맺은 업체라는 점 등을 들어 경험 부족으로 인해 문제가 생긴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간 백신을 조달했던 업체들이 최근 백신 담합으로 검찰 수사를 받으며 입찰에 참여하지 못했고, 2순위 업체였던 신성약품이 계약을 땄는데 정부의 조달 업무를 처음 맡으면서 미숙했던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신성약품 측은 그러나 종이박스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김진문 신성약품 회장은 “제조사에서 백신이 올 때도 종이박스로 온다”며 “종이박스에 담아도 냉장차로 운반하니까 냉장차 안에서는 2~8도로 온도가 유지된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냉매가 붙은 캐리어에 종이박스를 담아 병원까지 전달한다”고 말했다. 백신을 아이스박스에 포장해 냉장차를 이용할 경우 오히려 적정 온도 유지가 어렵다는 얘기다. 김 회장은 “현재 문제는 지방에 배달하는 과정 중 차에서 차로 옮겨 실을 때 일부 백신이 상온에 짧게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 부분에선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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