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상은 피카소보다, 니체ㆍ아인슈타인ㆍ말러보다 더 위대하다는 게 내 주장이다.”가수이자 화가인 조영남(75)이 새 책 『보컬그룹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혜화1117)을 냈다.
22일 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기타를 꺼내들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 본인이 노래를 붙인 이상의 시 ‘이런 시’다. 조영남은 “이상과 피카소ㆍ니체ㆍ아인슈타인ㆍ말러가 5인조 보컬그룹을 만들어 이 노래를 서울 통인시장 골목에서 부르는 상상을 했다”고 했다.
이번 책은 그가 전율을 느꼈던 예술가와 사상가에 대해 쓴 이야기다. 딸에게 이들에 대해 설명하는 대화 방식으로 구성해 허구와 사실을 넘나든다. “소위 대작 사건으로 유배 생활을 하면서 할 일도 없고 해서 썼다. 어느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3번을 클래식 라디오에서 들었다. 그 순간 전율이 왔다. 이상에게 느꼈던 전율을 다시 느꼈다. 작곡가 말러와 시인 이상만 짝 지우는 게 뜬금 없어서 균형을 잡기 위해 미술작가, 사상가, 과학자까지 다루게 됐다.” 책은 이들이 이상이 리더인 밴드에 들어가기 위해 오디션을 치르는 내용도 담았다. 그 과정에서 피카소의 입체 미술보다, 아인슈타인의 에너지-질량 이론보다 뛰어난 이상의 세계를 소개한다.
조영남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이상의 소설 ‘날개’를 읽은 뒤 ‘이상 덕후’가 됐다”고 했다. 2010년에 『이상은 이상 이상이다』라는 본인만의 이상 해설서도 냈다. “이상의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시는 피카소가 눈에 안 보이는 부분까지 그려놓은 작품을 뛰어넘는다. 또한 이상의 ‘오감도’에는 설교하는 예수와 입장권을 파는 깡패가 나온다. 니체보다 더 문학적인 표현이다. 이상의 ‘최후’라는 시에는 사과 한 알이 추락해 지구가 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인슈타인보다 한 수 위의 표현 아닌가!” 이처럼 조영남은 “이상이 내 인생에 미친 영향은 총체적”이라며 “이상을 더 알려지게 하고 싶어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조영남은 6월 대법원의 무죄 판결 직후 나온 책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과 이번 책을 동시에 집필했다. 2016년 그림 대작과 관련해 검찰이 기소한 후 대법원 판결까지 5년을 기다리면서 한 일들이다. 이상과 네명의 천재를 소재로 그림도 그렸다. 이상의 초상화에서 시작해 다섯 명이 한번에 공연을 펼치는 그림까지 10여점이다.
법정 공방을 벌인 5년의 창작물들을 모두 공개한 그는 “이번 책이 마지막일 것 같다”고 했다.“오늘 아침에 조카한테 전화가 왔는데 내 그림이 화랑에서 수억원 어치 팔리고 있다고 하더라. 희한하지 않나? 기분이 뻥했다. 아, 내가 드디어 미술로 뜨는구나. 5년동안 국가가 나를 화가로 만들어줬다는 게 농담이 아니다.” 조영남은 “아마 여기저기 쌓여있는 그림이 얼추 2000점일 거다. 앞으로 한 3년 더 살까. 전부해서 3000점 정도 그리면 엄청나겠다”고 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