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제주 바다 역설…"낭떠러지 같은 변화" 해녀의 비명

화려한 제주 바다 역설…"낭떠러지 같은 변화" 해녀의 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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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시 문섬 주변 바다. 해조류가 사라지고 아열대 바다에 서식하는 돌산호 등이 바닥을 뒤덮고 있다. 이선명 수중 사진작가

제주 서귀포시 문섬 주변 바다. 해조류가 사라지고 아열대 바다에 서식하는 돌산호 등이 바닥을 뒤덮고 있다. 이선명 수중 사진작가

“30년 전만 해도 최저 수온이 13도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올해 같은 경우에는 15도까지만 내려가고 있거든요. (바다 수온 차이가) 2도 정도면 엄청난 변화에요. 육상으로 따지면 20도가 차이 나는 거죠.”(김병일 다이버·경력 34년)

지난달 13일 제주 서귀포시 문섬. 마스크와 오리발을 착용하고 공기통을 멘 수십 명의 다이버가 연이어 바다로 뛰어들었다. 문섬 주변은 스쿠버 다이버 사이에서 '성지'로 떠오르고 있는 곳이다. 아열대 바다에 있는 화려한 산호들을 이곳에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재앙 눈앞에 보다]

#변해가는 제주 바닷속의 모습을 VR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영상이 보이지 않으면 주소창에(https://youtu.be/utGKJC45d9M)를 입력하세요.

겉보기엔 화려해진 제주 바다 “산호 급격하게 불어나”

제주 서귀포시 문섬. 화려한 산호 군락을 볼 수 있어 다이버들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이승우

제주 서귀포시 문섬. 화려한 산호 군락을 볼 수 있어 다이버들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이승우

취재팀은 기후변화가 제주 바다에 미친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제주 바다에서 30년을 넘게 다이빙을 했던 다이버들을 따라 문섬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해조류 숲을 지나자 거대한 연산호 군락이 나타났다. 바닥에는 사람 키만 한 거대한 바다맨드라미들이 자라고 있었다.

제주 서귀포시 문섬 주변 바닷속 화려한 산호 군락과 물고기들의 모습. 이선명 수중 사진작가

제주 서귀포시 문섬 주변 바닷속 화려한 산호 군락과 물고기들의 모습. 이선명 수중 사진작가

김 씨는 “30년 전만 해도 섬 주변에는 가시수지맨드라미를 볼 수 없었는데 15년 전부터 급격하게 불어나기 시작했다”며 “1년에 50㎝까지 자라는데 섬 주변에만 수만 그루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데워지는 바다…상승 속도 3배 빨라

그래픽=김수빈 디자이너

그래픽=김수빈 디자이너

이렇게 제주의 바다 생태계가 급격하게 변하는 건 수온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제주를 포함한 남해의 수온은 지난 50년간 1.5도가량 올랐다. 세계 평균 상승 폭보다 3배가량 빠르다.

수중 사진작가인 이선명(다이빙 경력 50년) 씨는 “열대 바다에서 볼 수 있는 물고기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고, 보이던 물고기들은 사라지고 있다”며 “이 화려함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온난화가 몰고 올 수 있는 또 다른 코로나19 같은 그런 재앙이 온다고 하면 준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

제주 서귀포시 문섬 주변 바닷속에 사람 키만한 가시수지맨드라미가 있다. 이선명 수중 사진작가

제주 서귀포시 문섬 주변 바닷속에 사람 키만한 가시수지맨드라미가 있다. 이선명 수중 사진작가

해조류 사라지고 황폐해진 바다 

제주 서귀포시 문섬 주변 바닷속 모습. 이선명 수중 사진작가

제주 서귀포시 문섬 주변 바닷속 모습. 이선명 수중 사진작가

기후재앙의 징후들은 이미 제주 바다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문섬에서 배를 타고 10분가량 이동해 다시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이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한때 해조류가 풍부해 물고기들의 산란장이었던 이곳에 바다숲은 사라지고 외래종 산호들이 바닥을 뒤덮고 있었다. 말미잘처럼 생긴 거품돌산호들이 바닥을 완전히 점령한 곳도 있었다.

2년 전 감태 등 해조류가 풍부해 바다숲을 이뤘던 모습. 박상율 제주대 교수

2년 전 감태 등 해조류가 풍부해 바다숲을 이뤘던 모습. 박상율 제주대 교수

지난달 16일 해조류는 사라지고 거품돌산호 등이 점령한 모습. 이선명 수중 사진작가

지난달 16일 해조류는 사라지고 거품돌산호 등이 점령한 모습. 이선명 수중 사진작가

김 씨는 “예전에는 모자반과 감태가 아주 많아서 물고기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하고, 산란장의 역할도 했는데 감태가 이제 사라지고 돌산호들이 대부분 뒤덮었다”며 “수온 상승으로 생물종의 다양성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 씨도 “소라가 일부 보이긴 했지만, 먹이활동 할 수 있는 영역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결국엔 도태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산호와 경쟁서 밀린 감태 급감

그래픽=김수빈 디자이너

그래픽=김수빈 디자이너

전문가들은 수온 상승으로 인해 제주 바다가 아열대 생태계로 바뀌면서 해조류들이 산호류와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태풍의 위력이 점점 강해지면서 감태 등의 해조류를 초토화하는 일도 잦아졌다.

해양수산부의 ‘장기해양생태계 연구’에 참여 중인 박상율 제주대·이혁제 상지대 교수 연구팀이 문섬 수중 벽면을 장기 모니터링한 결과, 수심 10~15m 지점의 감태 점유율은 2002년 67.5%에서 2015년 4.2%로 줄었다. 13년 만에 대부분이 사라진 것이다. 반면, 2.5%였던 연산호 점유율은 12.7%로 5배가량 증가했다.

박 교수는 “과거에는 태풍이 수심 5m 이내에만 영향을 줬는데 최근에는 강도가 세지면서 수심 10~15m까지 공격하고 있다”며 “때문에 감태가 떨어져 나간 공간을 연산호가 치고 올라오면서 해조류의 자생 공간이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라·전복 급감…해녀들 “낭떠러지 같은 변화”

바다숲이 사라지면서 해조류를 먹이원으로 하는 소라·전복 등 패류들도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제주 바다를 생계 터전으로 삼아온 해녀들에게는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서귀포 운진항에서 배로 10분 거리에 있는 가파도. 섬에 도착하자 보말을 잡고 있는 해녀들이 눈에 띄었다. 1시간 넘게 바닷속에 있었지만 한 바구니도 채우지 못했다.

가파도에서 30년 넘게 해녀로 일해온 김영남씨. 이승우

가파도에서 30년 넘게 해녀로 일해온 김영남씨. 이승우

경력 30년의 해녀 김영남 씨는 “10년 안에 툭 떨어지는 낭떠러지 같은 변화가 제주 바다에서 일어났다”고 말했다.

“제가 해녀를 배울 때쯤은요. 제주도 전체 바다가 황홀할 정도로 살아있는 바다라고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말할 수 없을 만큼 황폐화 돼 있어요. 20년 전에는 전복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지금은 바다에 가면 어우 소라를 못 보겠어, 아 전복 어디 갔어….”

김 씨는 “지금 제주도에는 3800명 정도의 해녀가 있다. 한 15년 후에는 천여 명으로 절반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감태가 30년 안에 50% 이상 줄어들 거로 보기 때문에 그걸 기반으로 사는 소라, 전복, 물고기가 줄게 될 것”이라며 “어촌 경제의 붕괴가 일어날 수 있기에 기후변화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주=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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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으로 QR코드에 접속하면 기후변화를 겪고 있는 제주 바닷속 모습을 360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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