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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빚 제동 걸 재정준칙···거여 입김에 벌써부터 '맹탕' 우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가 이달 말 발표키로 한 재정준칙이 벌써 ‘맹탕’이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된다. 재정준칙 도입이 현 정부의 적극적 재정 기조와 맞지 않는다는 여권의 시각이 반영되면서다. 정부도 원칙보다 유연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경기 둔화, 재난 상황에는 예외를 두는 식이다. 이런 느슨한 방식으로는 나랏빚 속도 제어라는 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홍남기, "9월 중 재정준칙 발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9월 중으로 재정준칙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8월 말에 제출하려고 했으나 해외 준칙 제도를 전부 조사하며 검토가 늦어졌다”며 “지금 검토 마지막 단계”라고 설명했다.

발표 시기는 이달 28~29일이다. 재정준칙은 재정수지 적자, 국가채무 총량 등을 일정 수준 이내에서 통제하도록 법제화하는 제도다. 가속화한 나랏빚 증가에 제동을 걸기 위한 장치다. 올해 네 차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면서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3.9%,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6.1%가 된다는 게 정부 추산이다. 모두 역대 최대 수치다.

재난, 경기침체 시 예외 규정

정부는 전년 대비 증가율을 기준으로 국가채무 비율이나 관리재정 수지 적자를 특정 수치 이상 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페이고(PAY-GO)’ 원칙 도입도 추진한다. 복지제도와 같이 향후 규모를 줄이기 어려운 의무지출 도입 시 재원 확보 방안을 반드시 마련토록 하는 제도다.

폭증하는 나라빚.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폭증하는 나라빚.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예외 조항도 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같은 전염병이나 재난, 경기침체 등의 상황에선 재정준칙을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고 명기하는 식이다. 홍남기 부총리는 이달 초 내년도 예산을 발표하면서 “이번 코로나19 위기처럼 극단적인 위기로 재정이 반드시 역할을 해야 할 상황에는 예외를 인정하는 등 유연성을 보강해 재정준칙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또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2020년 정기국회 대비 국회의원 워크숍’ 온라인 강연에서 “경기둔화 시 (국가채무비율 등) 한도를 완화하고, 위기 시엔 면제토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당에선 아예 재정준칙 제정을 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위원회 회의에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선 확장적 재정 방향이 필요한데, 이 시점에서 재정준칙을 만들면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60년 GDP 대비 국가채무 전망. 박경민 기자

2060년 GDP 대비 국가채무 전망. 박경민 기자

"포괄적 예외규정 두면 재정준칙 선언 수준에 그쳐" 

당·정이 포괄적인 예외 규정부터 거론하면서 재정준칙을 만들어도 유명무실할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안창남 강남대 경제세무학과 교수는 “재정준칙 예외 여부에 대해서 별도 심사 과정을 거치도록 장치를 하지 않으면 재정준칙은 선언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3년 평균 예산 증가율을 넘어갈 수 없도록 법을 정하고, 예외를 인정하려면 개헌 수준에 해당하는 ‘의원 재적 3분의 2 이상 찬성’과 같은 요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재정준칙은 국회에서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야당이 정부‧여당에 비해 훨씬 엄격한 재정준칙을 주장하고 있어서다. 야당은 이미 4건의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국가채무비율 적자 GDP 45% 이하, 관리재정수지 GDP 2% 이하 유지 등의 내용을 담았다. 앞서 정부는 지난 2016년에 국가채무 비율을 GDP 대비 45% 이하로,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GDP의 3% 이하로 관리하는 내용의 재정 준칙을 담은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었다. 하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해당 법안은 자동폐기됐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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