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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연금보험, 보험사 승낙 없이 유증해도 될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경영의 최소법(24) 

생명보험계약은 피보험자의 사망, 생존 등을 보험사고로 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지속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약 내용을 변경해야 할 사정이 생길 수 있는데, 그러면 보험 계약자가 일방적으로 변경할 수 있을까요? 특히 유언으로 수익자를 일방적으로 변경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보험 계약자가 수익자를 단순히 ‘법정상속인’이라고만 기재한 경우 수익자가 받을 수 있는 수익 범위가 어떻게 될까요?

사례 1

A는 X 보험사에서 연금보험에 가입하고 보험료를 일시불로 지급했다. A가 사망 후 자녀 B는 보험 계약자 지위를 유증 받았다는 이유로 계약 명의 변경을 요청했지만 거절 당했다. [사진 pxhere]

A는 X 보험사에서 연금보험에 가입하고 보험료를 일시불로 지급했다. A가 사망 후 자녀 B는 보험 계약자 지위를 유증 받았다는 이유로 계약 명의 변경을 요청했지만 거절 당했다. [사진 pxhere]

A는 2012년 11월 X 생명 보험사의 ‘무배당 OO 연금보험’에 가입하고, X에게 연금보험료 6억9460만원을 일시불로 지급했다. 연금보험의 내용은 자녀 중 한 명인 B를 피보험자로 해 B가 생존하는 동안 매월 200만원을 A에게 지급하고, 만일 B가 사망하면 법정 상속인에게 7000만 원과 사망 당시 책임준비금을 합산한 금액을 지급하는 것이었다.

A는 2013년 9월 B를 유언집행자로 지정하고, ‘무배당 OO 연금보험’을 B에게 유증하기로 하고 공증했다. A는 2014년 2월 사망했고, 상속인으로는 배우자와 피보험자 B를 포함해 총 6명이 있었다.

X 보험사는 연금보험금으로서 A에게 지급하던 200만 원을 매월 B에게 지급했다. 그런데 B는 보험 계약자 지위를 유증 받았다는 이유로 계약 명의를 자신 명의로 변경해달라고 요청했다. 반면 X 보험사는 유증 받은 것은 보험금 청구권이라는 이유로 B의 요구를 거절했다.

보험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 유증 대상이 무엇인지에 따라 결과에 큰 차이가 발생합니다. 유증 대상이 보험 계약자 지위인 경우 해지 환급금은 오로지 B에게만 환급되지만, 보험 청구권이라면 해지 환급금은 B와 다른 상속인들에게 상속분에 따라 분배됩니다.

법원은 B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였을까요? 보험계약자의 신용도는 보험 계약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요소일 뿐만 아니라, 보험계약자는 보험수익자를 지정·변경할 수 있습니다. 보험 계약자를 변경하는 것은 피보험자, 보험수익자 사이의 이해관계나 보험사고 위험의 재평가, 보험계약의 유지 여부 등에 아주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상 보험 약관에는 생명보험의 보험계약자 지위 변경에 보험자의 승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례의 X 보험사 약관에는 보험 계약자를 변경하려면 보험 회사의 승낙을 요건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보험자의 승낙이 필요한 이유는 유증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례의 경우 B가 유언집행자라고 하더라도 X의 동의가 있어야만 계약자를 변경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법원은 B의 주장을 배척하고 X 보험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사례 2

C의 남편 D는 Y보험사를 상대로 사망 보험금 5000만원 전액을 청구하였다. 하지만 Y는 부검도 없어 C가 상해로 인해 사망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였다. [사진 pixabay]

C의 남편 D는 Y보험사를 상대로 사망 보험금 5000만원 전액을 청구하였다. 하지만 Y는 부검도 없어 C가 상해로 인해 사망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였다. [사진 pixabay]

C는 일반 상해로 사망하는 경우 5000만 원을 지급하는 내용으로 Y 손해보험 회사의 보험에 가입했다. 그러면서 보험 수익자를 단순히 ‘법정상속인’이라고만 기재했다.

C는 2013년 12월 한 하천에서 익사한 채로 발견됐다. 수사기관은 추운 날씨에 장시간 하천을 따라 올라가며 다슬기 채취 작업을 하던 중 하천 바닥 돌에 끼어 있는 이끼에 발이 미끄러지면서 앞으로 넘어져 정신을 잃어 익사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유로 범죄 관련성이 없다고 보아 내사 종결하였다.

C의 남편 D는 Y보험사를 상대로 사망 보험금 5000만원 전액을 청구하였다. Y는 C가 과거 파킨슨병과 뇌허혈성 병변으로 치료받은 이력이 있어 심혈관계 질환 또는 뇌혈관계 질환에 의한 내인성 급사 또는 의식소실 후에 물에 잠겨 사망하였을 가능성이 있고, C에 부검도 없어 상해로 인해 사망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였다.

사례의 경우 C를 부검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C의 사망 원인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Y는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 것입니다.

하지만 보험 사고 원인에 대해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면 보험금 청구자에게 너무 불리하고, 사고가 고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면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험금 청구자의 입증책임은 엄격한 증명일 필요는 없고 법관이 개연적인 심증을 형성케 할 정도의 증명이면 충분하다는 것이 판례입니다.

법원은 사체검안 결과 직접 사인이 익사로 진단되었고, 수사기관에서도 C의 사망 원인을 미끄러지면서 넘어져 정신을 잃어 익사한 것으로 추정한 점 등을 이유로 ‘급격하고 우연한 외래의 사고’에 의한 익사라는 데 대한 일응 입증이 되었다고 보면서, Y 보험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즉 D의 입증에 대한 부담을 경감시킨 것입니다.

다만 C에게는 남편 D 외에도 자녀가 2명 있었는데, 보험수익자를 단지 ‘법정상속인’이라고만 지정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장차 상속인이 취득할 보험금 청구권의 비율을 상속분에 의하도록 하는 취지라고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D의 청구를 그의 상속분 범위 내에서만 인정하였습니다.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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