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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한 평짜리 판잣집 빛나게 한 필리핀 빈민가 두 딸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허호의 꿈을 찍는 사진관(23)  

올여름, 태풍이 쉬지 않고 연이어 오는 바람에 생각났다. 필리핀 수상가옥과 아이들 풍경이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보다 더 맑게 개인 하늘이 그들을 반기지만, 어딘가에 구석구석 숨어 있던 쓰레기가 어린이의 살 곳 인근을 가득 메운다. [사진 허호]

올여름, 태풍이 쉬지 않고 연이어 오는 바람에 생각났다. 필리핀 수상가옥과 아이들 풍경이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보다 더 맑게 개인 하늘이 그들을 반기지만, 어딘가에 구석구석 숨어 있던 쓰레기가 어린이의 살 곳 인근을 가득 메운다. [사진 허호]

개발도상국의 컴패션 현지에서 가정 방문을 하러 가면 대부분 판잣집으로 향합니다. 집을 위한 자재가 아니라 누군가 버린 폐자재를 주워 만든 집이죠. 그런데 그런 집이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엮어 놓아서 구멍이 숭숭 뚫려 있지만 그것이 벽이 되고 옆방과 옆집을 나누는 거지요. 그런 판자로 된 한 평 남짓한 방에서 대여섯 명씩, 많게는 삼대가 같이 기거하기도 하죠. 저는 종종 궁금했습니다. 이곳에서 과연 인간의 존엄이 지켜질까. 누구에게나 사생활을 지켜주는 것은 중요할 텐데, 부부관계나 화장실 사용같이 기본적인 사생활도 도저히 지켜질 것 같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걸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지요.

필리핀컴패션에서 가정방문을 위해 가던 중 찍은 사진. 집을 빙 둘러싼 쓰레기와 녹조 가득한 개울에서 아이들이 헤엄치고 있다. 여러 장 합성하여 파노라마로 찍었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장벽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누추한 집 외관을 강조할 수 있었다.

필리핀컴패션에서 가정방문을 위해 가던 중 찍은 사진. 집을 빙 둘러싼 쓰레기와 녹조 가득한 개울에서 아이들이 헤엄치고 있다. 여러 장 합성하여 파노라마로 찍었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장벽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누추한 집 외관을 강조할 수 있었다.

인간생활의 기본요소라는 ‘의식주’ 중에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게 집, ‘주’일 것입니다. ‘의’, 옷은 남이 버린 옷을 줍든, 누구에게 헐값에 사든 구할 방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비전트립을 가보면 아이들의 책가방에 ‘00유치원’ 네임택이 붙어 있는 것을 봅니다.  한국어가 쓰여 있는 옷도 있죠. 맞춤법은 뭐,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버려진 옷을 수거해 수출한다고 들었는데 컴패션 어린이한테도 흘러가는 듯 했습니다. 옷은 그렇게 해결한다고 칩니다. ‘식’, 먹을 것은 컴패션 같은 데도 있고, 자주 건너뛸 때도 있지만 도움을 받을 구멍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데 집은 이들에게 큰 부담입니다. 나무 판잣집도 아주 오래전부터 살아온 경우를 많이 봅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그대로 이어받아서 사는 거죠. 금방 쓰러질 것 같은데, 이곳에 산 지 얼마 되었냐고 하면 40~50년 되었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은 거기에서 많이 놀라죠. 우리야 한집에 사는 게 특별한 경우 말고 길어 봐야 10~20년이잖아요. 그전에 이사를 간다든지,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잖아요. 그런데 이들은 가난에 삶을 속박당하고 억압받으면서 조상이 살던 그대로 그 집에 묶여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잘못 밟으면 발바닥이 푹푹 빠지는데도 대물림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만큼 ‘주’는 이들 인생에서 속박의 틀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기억에 남는 가정이 있다. 부모와 딸 둘 해서 네 명이 같이 사는데 딱 사무실 책상만 한 공간이 전부였다. 그런데 정말 따뜻하고 빛이 났다. 도시 변두리 집인데 비만 오면 잠긴다고 했다. 그런 집을 6,8살 먹은 두 딸이 손님들 왔다고 계속 쓸고 닦았다.

정말 기억에 남는 가정이 있다. 부모와 딸 둘 해서 네 명이 같이 사는데 딱 사무실 책상만 한 공간이 전부였다. 그런데 정말 따뜻하고 빛이 났다. 도시 변두리 집인데 비만 오면 잠긴다고 했다. 그런 집을 6,8살 먹은 두 딸이 손님들 왔다고 계속 쓸고 닦았다.

가정방문했을 때 비전트립 참가자가 빠트리지 않고 물어보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집과 땅이 당신 것입니까?” 도시지역은 대부분 월세였습니다. 필리핀 같은 경우 그 얼기설기 판잣집도 월세가 80달러 이상 나가더라고요. 적은 돈이 아니죠. 이들이 열심히 벌어도 한 달 수입이 100~150달러인데, 전기세가 5~10달러 사이였던 것 같고, 거기에 수도세도 있고 각종 세금도 있거든요. 그런데 이런 집 중에 뭔가 빛이 나는 집이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희망이 있고 행복이라는 게 느껴지는 집입니다.

필리핀 도시 인근의 집이었는데, 부모가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딸 둘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일용직인 듯한 아빠가 직접 집을 올린 것 같더라고요. 버려진 간판을 벽으로 세우고 비닐 같은 것으로 메웠습니다. 낡은 양철대기 같은 걸로 지붕을 올렸더라고요. 바닥은 대나무 쪼갠 거로 얼기설기 해놓았죠. 우리가 들어가니까 서로 무릎이 붙을 정도로 좁았습니다. 그런데 참 깨끗했어요. 6살, 8살 정도되는 딸 둘이 계속 빗자루로 쓸길래 물어봤더니 엄마가 바지런하고 손님 맞을 때 그런 걸 배워 가지고 청소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남이 버린 폐자재로 집을 짓고 살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가짐이 다르면 살아 있는 공간이 되더라고요.

가난의 속박에 사로잡힌 칙칙하고 어두컴컴한 분위기가 있으면 삶도 같이 주눅 들어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여기선 사는 공간이 다른 곳과 같이 좁고 가난했지만, 최대한 자기의 공간을 가꾸는 손길이 닿아 있고 살아 있었습니다. 가족들을 만나보니 얼마나 밝은지 몰라요. 거기에서 소망이라든가 희망을 봤습니다. 가난이 문제가 아니었던 거죠. 어릴 적 새마을 운동도 생각났죠. 우리 환경도 못지않게 누추했지만 결국 사회 전반적인 운동이 되었잖아요. 바로 개선할 수 없어도 자기가 사는 주거환경을 가꾸고 정리하고 변화를 일으키려는 마음의 동기가 느껴졌습니다.

살아 있는 공간, 환경이 그렇게 만들어갈 수도 있지만 고사리손이 만들어 보여주는 생기와 밝음을 생각하면, 환경을 만들어가는 건 결국 우리 마음이구나, 싶습니다. 이번 태풍에 이 집도 잠겼을 텐데, 많이 힘들지 않았길 바라봅니다.

사진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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