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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혁 사진만 10만 장' 파란만장 중국 현대사의 기록자

중앙일보

입력

문화대혁명(1966~1976), 광풍(狂風)의 현장을 기록하고 40년간 은밀히 보관해 세상에 알린 보도사진가

1940년 중국 랴오닝 성 다롄에서 태어난 리전성(1940-2020, 李振盛)은 어려서부터 영화 촬영감독의 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 중국에서 대약진운동(1958~1960)이 일어났고 이 운동의 결말은 농촌 경제 파탄과 대기근이었다.

1963년 장춘 영화 아카데미 사진학과를 졸업할 시기, 취업난으로 인해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지자 그는 하얼빈에 위치한 헤이룽장일보의 사진 기자로 일하게 된다. 영화 촬영의 꿈은 시대 상황으로 인해 사라졌고 그는 20년간 사진 기자로 살게 된다. 1966년부터 10년간 이어진 문화대혁명 기간 그는 각계각층, 다양한 지역에서 일어난 일을 카메라에 담았다.

기자시절 리전성

기자시절 리전성

당시 신문사로부터 주먹을 높이 든 사진, 대중 집회 모습이 담긴 '선전용 사진' 찍기를 강요받기도 했으나, 가공되거나 연출되지 않은 사진도 다수 찍었다. 리전성은 홍위병의 상징인 '붉은 완장'에 '홍색신문병(紅色新闻兵)'을 새기고 감시의 눈초리를 피했다.

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신문에는 문혁의 긍정적인 이미지만 게재됐지만, 이는 역사의 일부일 뿐이다. 언젠가 완전한 역사로 남을 수 있도록 부정적인 장면도 찍었다"고 말했다. 1963년부터 76년 사이 그가 찍은 사진만 10만장에 달한다.

약탈, 방화, 무자비한 비난…나는 이 시기를 기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를 기록하는 도구로 카메라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사진기자 자격으로 곳곳을 취재하며 현장에서 군중과 함께 비판하거나 구호를 외치는 등, 분위기에 걸맞은 행동을 취해야 했고 눈앞에서 죄목이 적힌 표지를 매달고 모욕당하는 이들을 무심한 눈으로 봐야 하기도 했다.

1966년 중국 하얼빈

1966년 중국 하얼빈

그러나 1968년 말, 새로운 부르주아로 낙인 찍히며 신문 편집자였던 아내와 함께 다양한 범죄 혐의를 받게 됐다. 가택수사도 이뤄졌지만, 당시 바닥에 숨겨둔 사진은 발각되지 않았다. 그는 300명의 신문사 직원 앞에서 6시간 이상 비판받고 1969년 9월부터 아내와 농촌에서 노역 생활을 했다. 1971년에야 하얼빈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1965년 5월 12일 중국 헤이룽장

1965년 5월 12일 중국 헤이룽장

1976년 문혁은 막을 내렸다. 약 10년간 수천만 명이 박해를 당했고, 170만 명이 사망했다. 몇십 년간 문혁은 중국에서 금기시되는 주제였다. 당시 동료들은 문혁과 관련된 부정적인 이미지를 모두 삭제할 것을 강요받았지만, 그는 하얼빈 본가 마루 아래에 이 사진을 숨겨 오랫동안 봉인했다. 그는 그때만 하더라도 이 사진이 훗날 어떤 가치를 갖게 될지 상상하지 못했다.

1982년 그는 베이징 한 대학에서 사진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평온한 일상을 되찾은 것 같았지만, 문혁의 잔상이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1988년, 베이징에서 그가 보관하던 사진 20장이 처음 세상에 공개됐다. '과거로 미래를 이야기하자'는 주제의 사진전이 열렸는데, 문혁 이전 10년, 문혁 기간, 그리고 이후 10년을 담은 사진이 주제였다. 주최 측은 리전성에게 문화대혁명 당시 사진을 응모해달라 간청했고, 그는 당시 찍은 사진 몇장을 보냈다. 이 사진은 최고상을 받으며 세상에 공개됐다.

당시 리전성의 사진을 주의 깊게 본 인물이 있었는데 뉴욕의 국제 저널리즘 기관인 미국 콘택트 프레스 이미지(CPI)의 사장 로버트 프레지(Robert Pledge)였다. 그는 리전성과 함께 작업하고자 했으나 1989년 천안문 사태로 인해 협업이 좌절됐고 1996년 리전성이 뉴욕으로 강연하러 가서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촬영한 사진을 뉴욕으로 조금씩 옮겨갔다. 1997년에는 전 국무원 부총리였던 장아이핑(張愛萍) 장군이 리전성의 사진으로 'Let History Tell the Future' 전시를 주관했는데, 60개 이상의 국가와 도시를 순회하며 40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그의 작품을 감상했다.

사진집 '홍색신문병(紅色新?兵)'

사진집 '홍색신문병(紅色新?兵)'

2003년, 영국의 피톤(Phaidon) 출판사는 사진집 '홍색신문병(紅色新闻兵)' 출판했다. 이듬해 이 사진집은 세계 최고의 사진집(The World 's Best Photo Album)으로 선정됐고 미국의 해외기자 클럽(Overseas Press Club of America)에서 올리비에 레보트상(Olivier Rebbot Award)를 수상했다. 2013년에는 중국인 최초로 국제 사진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루시 어워즈(Lucie Awards)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인들이 문화대혁명을 제대로 알고 기억하게 하는 것이 평생의 목표"라고 말했다. 마오쩌둥 사후, 덩샤오핑(鄧小平)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은 문화대혁명을 '거대한 실수'라고 지적하며 역사적 성격을 기본적으로는 규정했지만 이후 중국 사회에서 문화대혁명을 정면으로 거론하는 것은 여전히 금기시되어 있다. 2018년에야 홍콩의 한 대학에 의해 그의 사진집이 처음으로 '중국어'로 번역돼 발간됐다. 그의 소원이 일보(一步) 전진한 의미 있는 일이었다. 중국 현대사를 생생하게 목격하고 기록으로 남긴 리전성은 2020년 뉴욕의 퀸스 롱아일랜드시티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79세.

나는 평생 역사를 목격하고 기록하는 데 모든 걸 바쳤다. 이제 나는 역사 속에서 쉬련다. 

차이나랩 임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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