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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 논설위원이 간다

조두순 집밖 200m 이내 묶나, 피해자와 거리 1㎞ 띄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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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12년 만에 돌아오는 ‘그’의 문제를 보다

지난 18일 경기도 안산시청에서 ‘조두순 재범 방지 대책 마련 간담회’가 열렸다. 고기영 법무부 차관, 최해영 경기남부경찰청장, 윤화섭 안산시장, 전해철·고영인·김철민·김남국 더불어민주 당 의원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지난 18일 경기도 안산시청에서 ‘조두순 재범 방지 대책 마련 간담회’가 열렸다. 고기영 법무부 차관, 최해영 경기남부경찰청장, 윤화섭 안산시장, 전해철·고영인·김철민·김남국 더불어민주 당 의원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포항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조두순이 징역 12년 형기를 마치고 12월 13일에 출소한다. 만 7세 아동을 잔인하게 성폭행하고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다며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던 그가 사회로 돌아온다. 판사 명령에 따라 7년간 전자발찌를 차게 돼 있지만 확실한 안전장치라고 볼 수는 없다. 올해 상반기에만 전자발찌를 차고 성범죄를 저지른 이가 30명(법무부 통계)이다.

이동 제한부터 시설 수용까지 #다양한 해결책 담은 법안 봇물 #피해자의 불안 덜 대책이 절실 #12년 새 변한 것은 거의 없었다

교도소 측에 따르면 조두순은 출소 뒤 경기도 안산시의 집에서 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의 처가 이사를 했는데, 범행 당시에 살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갔다고 한다. 윤화섭 안산시장은 “조두순이 안산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해 달라”는 전화가 시청으로 최근 수천 건 왔다고 했다. 윤 시장은 조두순을 보호수용시설에 격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에는 출소자가 위험인물이라고 해서 별도의 수용시설에서 생활하게 하는 법은 없다.

100m 밖까지 피해자에 접근 가능

조두순이 가겠다고 한, 그의 처가 살고 있는 집은 피해자(‘나영’이라는 가명으로 언론에 보도)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고 한다. 경기남부경찰청 관계자는 “직선거리로 피해자 거주지에서 1㎞가 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두순은 피해자로부터 100m 떨어진 곳까지는 접근할 수 있다. 현재의 법에 최대 접근금지 거리가 100m로 돼 있다. 성인 남성이 15초면 달려갈 수 있는 거리다. 법무부가 전자발찌로 위치 추적을 해 피해자에 근접했다는 것을 알아채도 경찰관에게 연락해 제지시킬 시간이 확보되지 않는다. 순식간에 불상사가 벌어질 수 있다.

피해자는 등굣길에 교회 화장실로 끌려가 처참하게 폭행을 당하고 영구적 장애까지 안고 살아가는데, 언제 또 무슨 일을 겪을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생활해야 한다. 올해 대학생이 된 그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는 물음이 아니 나올 수 없다.

쏟아져 나오는 법안들

조두순 출소 관련 법안들

조두순 출소 관련 법안들

조두순 출소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국회에서 법안들이 잇따라 발의됐다.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은 ‘보호수용안’을 냈다. 이 법안이 의결되고 조두순에게까지 소급돼 적용된다면 그를 별도의 수용시설에 머물게 할 수 있다. 2014년에 법무부가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준비했으나 국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범죄자 인권 침해, 이중처벌의 문제를 주장하는 반대론에 부닥쳤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승재현 연구원은 이에 대해 “인권 문제를 범죄자에 맞춰 보지 않고 구체적인 피해자를 놓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형벌과 보안처분은 다르다. 보호수용을 형벌로 인식하는 구시대적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에는 범죄자를 보호감호라는 형식으로 형기를 마친 뒤에도 교정시설에 계속 감금한 역사가 있다. 치료와 교육이 아니라 ‘사회 정화’라는 이름의 격리가 목적이었다. 이 흑역사 때문에 ‘보호수용’이라는 말에 즉각적 거부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이 많다. 논란 극복이 쉽지 않은 법안이다.

고영인 의원(더불어민주당)은 ‘200m 금지안’을 제출했다. 조두순이 거주지로부터 200m 떨어진 곳까지만 갈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더 먼 곳에 갈 때는 보호관찰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법원이 정한 죗값을 치른 출소자들의 자유를 과도하게 억압한다는 반대론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긴 하지만 조두순 출소 때문에 불안해하는 피해자와 그의 가족, 지역 주민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이동 제한은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아동 대상 성범죄 매년 증가

아동 대상 성범죄 매년 증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인 정춘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삼은 성범죄자가 피해자의 집과 학교로부터 1㎞ 이내에는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냈다. 일명 ‘1㎞ 금지안’이다. 정 위원장은 “이 정도 거리는 둬야 피해자가 느끼는 엄청난 공포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 지금처럼 100m 밖까지 접근이 가능하면 결국 피해자가 이사해야 한다. 피해자가 도망을 다니는 세상은 정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법안 마련에 도움을 준 아동보호 전문 비영리단체 ‘옐로소사이어티’의 이제복 대표는 “1년에 1만 건에 가까운 성범죄가 발생한다. 그중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가 1300건에 달한다. 조두순뿐만 아니라 다른 가해자들도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자발찌와 보호관찰이 성범죄자 통제에 효과적이라고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나. 무수히 많은 성범죄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보복이나 재범 피해를 걱정하며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1㎞ 제한만 성사돼도 불안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조두순에게까지 적용되는 게 인정된다면 그는 처가 사는 집으로 갈 수 없다. 피해자의 집에서 1㎞ 이상 떨어진 곳에 거주해야 한다. 정 위원장은 이 문제에 대해 “조두순이 자발적으로 새 거주지를 찾지 않으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비용을 대 이주시켜야 한다. 그 정도의 문제는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2년간 무엇을 했나

표창원 전 의원은 새 법안들이 잇따라 나오는 현상을 놓고 “이미 법제화된 제도조차 실행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20대 국회에서 1:1 보호관찰 규정을 만들었다. 재범 가능성이 높은 성범죄자는 1대 1로 추적·감시하는 제도다. 법무부에 따르면 현재 약 200명이 대상인데, 실제로 1대 1 관찰이 되는 이는 24명에 불과하다. 보호관찰관 증원에 필요한 예산이 문제가 됐다. 과연 의지는 있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지난 12년 새 딱히 달라진 게 없다. 조두순 출소는 이미 오래전에 정해져 있던 일인데도 이제야 ‘초치기’로 해법을 찾는다. 최근 국회 대정부 질의는 추미애 장관 아들 병역 논란으로 뒤덮였다. 야당의 공격과 여당의 엄호, 장관의 억지 변명으로 점철됐다. 그러는 사이에 법무부 장관에게 조두순 문제 해결책을 물을 시간이 사라졌다. 12년의 마지막 석 달도 이렇게 허무하게 흐른다.

조두순은 어떻게 12년형을 받게 됐나

검찰은 형법 297조(강간)와 301조(강간상해)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법원은 1심에서 조두순에게 징역 12년형을 선고했다. 이 결과는 2심 법원과 대법원에서 그대로 유지됐다. 검찰은 항소하지 않았고, 조두순의 항소와 상고는 모두 기각됐다.

1심 재판부 판사가 12년으로 정한 데는 ‘주취감경(酒醉減輕)’이라는 양형 요소가 작용했다. 술에 취해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조두순 측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당시 검찰은 조두순이 술기운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항변에 대응하지 않았다. 표창원 전 의원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1심 판사가 ‘조두순이 심신미약 상태가 아니었다고 검사가 공판에서 주장하지 않아 감형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자신에게 쏟아진 비난에 억울한 심정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이 주취감경이 문제가 돼 성폭력방지 특별법에 피고인이 술이나 약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였어도 판사가 형량을 줄이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20조)이 생겼다(2010년).

2009년 10월 국회에서는 검사가 조두순에 대해 기소할 때 법률 적용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비판(조순형 당시 의원)이 제기됐다. 일반 형법 대신에 성폭력방지 특별법을 의율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형법의 강간상해죄는 최소 형량이 징역 5년이고, 성폭력방지 특별법의 아동 강간죄는 최소 형량이 징역 7년이다(최고 형량은 둘 다 무기징역). 법조계에선 성폭력방지 특별법을 적용했다면 주취감경을 해도 12년보다 긴 형이 선고됐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검찰이 더 엄히 처벌하는 법을 의율하지 않은 것은 검사의 직무 태만에 해당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대검찰청은 조두순을 기소한 검사를 감찰했다. 결과는 검찰총장이 검사에게 ‘주의’를 주는 것이었다. 검찰은 “무기징역을 구형하며 엄벌에 처하기 위해 노력한 정상을 참작했다”고 경징계 처분 이유를 밝혔다.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