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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현돈의 미래를 묻다

10년 주기로 오르내리는 기름값…2025년이면 다시 고유가 시대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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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취약한 에너지 안보

신현돈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

신현돈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

기름값 부담을 그리 크게 느끼지 않는 요즘이다. 전국 평균 휘발윳값이 리터당 1350원이다. 도시를 벗어나면 1200원대인 곳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국제 유가가 떨어지고, 환율이 비교적 안정된 덕이다. 격세지감마저 든다. 불과 6년여 전인 2014년 4월에는 전국 평균 휘발윳값이 2060원이었다. 그때는 승용차에 휘발유를 가득 채우면 10만원을 훌쩍 넘는 게 예사였다.

중국·일본 꾸준히 해외 자원 확보 #한국은 거꾸로 자원 개발 뒷걸음질 #한 해 에너지 수입 160조~200조원 #고유가 다시 오면 감당할 수 있을까

2050년에도 석유·가스에 70% 의존

지금의 저유가는 여러 가지 요인이 겹친 결과다.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미국의 셰일오일 붐이다. 급격한 셰일오일 생산량 증가로 공급이 늘면서 가격이 떨어졌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한 급작스런 수요 감소가 저유가에 기름을 부었다. 궁금한 건 코로나19에서 벗어난 뒤에 유가는 어찌 될까 하는 점이다. 코로나19 전에도 저유가였으니, 저유가가 지속할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과연 그럴까. 얼마 동안 저유가가 지속할까.

유가는 보통 10년 이상의 긴 주기를 갖고 고유가와 저유가를 오간다. 유가가 오르면 석유회사는 수익의 많은 부분을 신규 유전 개발에 재투자한다. 그러면 5~10년 뒤 생산이 늘어 공급 과잉이 발생하고 유가는 떨어진다. 이 상태로 저유가가 지속하면, 수익이 감소한 석유회사들은 신규 유전에 투자하기 어렵게 된다. 이는 5~10년 뒤 원유 생산 감소로 이어지고 유가는 다시 상승하게 된다. 이것이 유가가 10년 정도의 주기로 오르내리는 배경이다.

국내 민간 기업들이 확보한 해외 유전과 가스전들. 에너지 안보 전초 기지들이다. 사진은 포스코인터내셔널의 베트남 해상 가스전. [중앙포토]

국내 민간 기업들이 확보한 해외 유전과 가스전들. 에너지 안보 전초 기지들이다. 사진은 포스코인터내셔널의 베트남 해상 가스전. [중앙포토]

지금은 어떤가. 현재의 저유가는 2014년 이후 지속하고 있고 석유회사의 투자는 위축됐다. 만일 미국 셰일오일의 생산 감소와 세계 석유개발 투자 위축이 수년간 지속한다면, 2025년 이후 다시 고유가 시기가 올 가능성이 무척 높다. 고유가에 대한 회의론도 있기는 하다.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화석연료 수요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거의 30억 인구가 있는 중국과 인도의 에너지 수요 증가를 고려하면, 2050년이 돼도 여전히 석탄·석유·가스 같은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70%가량을 유지할 것이라는 슬픈 예측이 지배적이다.

고유가는 한국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한국은 에너지원의 95% 이상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에너지 자원 빈국이다. 고유가 시기에 석유·가스·석탄 같은 에너지 총 수입액은 200조원에 이르렀고, 비교적 저유가였던 2018년에도 160조원이었다. 우리나라는 원유만 한 해 10억 배럴 이상을 수입한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40~45달러인, 요즘 같은 저유가 시대에도 한 해 원유 수입에 50조원가량을 써야 한다. 배럴 당 100달러로 오르면 120조원이다. 속절없이 수입액이 늘어난다.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 이렇듯 우리의 에너지 안보 현실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 재생에너지를 늘린다 해도, 좁은 국토를 고려하면 그 비율은 전력·산업·수송 등에 들어가는 모든 에너지의 20%를 넘는 것도 벅찰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의 미국 오클라호마주 셰일오일 생산 시설. [중앙포토]

SK이노베이션의 미국 오클라호마주 셰일오일 생산 시설. [중앙포토]

우리에게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방법은 해외 자원개발이다. 해외의 유전·가스전 등을 확보하는 것이다. 원유·가스 생산비용은 별로 변동이 없기 때문에, 유전·가스전을 갖고 있으면 고유가에도 충격을 덜 받는다. 하지만 국내 기업이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통해 확보한 석유·가스양은 한때 국내 수요의 14%(석유 가스 개발률)까지 이르렀다가 감소하는 상황이다. 비슷한 처지의 에너지 자원 부족 국가인 일본과 비교하면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에너지 자원 확보의 현주소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자원 확보에 손을 놓고 있는 한국 정부는 너무나 ‘용감’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자원개발은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땅속의 자원을 탐사하고 생산하는 일이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불확실성이 크고, 성공보다 실패가 다반사인 고위험 사업이다. 또한 탐사에서 생산까지 10년 넘게 걸리는 장기적인 사업이다. 반면 탐사 및 개발에 성공하면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수익 창출이 가능한, 장기적 고수익 사업이기도 하다. 물론 사업의 추진 단계에 따라 위험도 등은 다르다. 원유·가스가 묻힌 곳부터 찾는 ‘탐사 사업’은 성공 확률이 낮고 수익률은 높다. 이에 비해 생산 중인 광구를 사들이면 위험성을 낮출 수 있으나 수익률이 떨어진다.

GS에너지가 참여한 아랍에미리트 유전. [중앙포토]

GS에너지가 참여한 아랍에미리트 유전. [중앙포토]

한국은 2010년을 전후해 10년간 지속하던 고유가 시기에 해외 자원개발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한국석유공사 같은 에너지 공기업을 앞세워 단기간에 자원개발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위험도가 낮은 생산광구 위주로 투자가 이루어졌다. 고유가 시기여서 비싸게 살 수밖에 없었고, 그것도 주로 차입금에 의존했다. 유가가 급락하면서 투자 손실에 금융 비용이 겹쳐 자원 공기업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난해 말 기준, 석유공사의 부채비율은 3000%에 이른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조급한 마음에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다가 발생한, ‘예견된 불행’이다. 그렇다고 인제 와서 확보한 광구를 모두 매각하고 사업을 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 큰 손실을 야기할 뿐이다.

에너지 안보 출발은 자원 공기업 정상화

기본적으로 자원개발에는 성공보다 실패가 많다. 실패는 병가지상사처럼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한국만 실패를 한 것도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자원 확보 전쟁에 뛰어들었던 중국과 일본은 고유가 때도 한국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규모 자원 확보를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했다. 이들은 현재의 저유가를 ‘자원확보의 적기’로 판단하고 적극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은 반대로 대폭 축소 또는 철수와 같은 거꾸로 가는 정책을 추진한다. 이것이 그들과 우리가 다른 점이다. 결과는 10년 후에 나타날 것이다.

자원개발의 높은 불확실성과 위험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사업을 동시에 추진해 그 가운데 일부가 실패하더라도 생존할 수 있도록 기업을 대형화해야 한다. 사업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봐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특성을 고려하면, 전 세계 대부분의 자원개발 기업이 국영 회사이거나 오랜 역사를 지닌 대규모 업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자원개발 역사가 일천한 한국은 더욱더 공기업의 역할이 절실하다.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정치·행정에서 공기업이 독립할 수 있는 제도 마련도 또한 필수다. 즉, 정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엄청난 부채에 비틀거리는 자원 공기업의 빠른 정상화야말로 에너지 안보의 출발점이다.

해외에 확보한 유전·가스전은 최고의 비축 기지

어느 나라든 없어서는 안 될 물품은 비축 대상이다. 식량이 그렇고, 필수 의약품이 그렇다. 코로나19로 마스크 대란이 벌어지자 “마스크를 비축 물자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을 정도다. 없으면 생활과 경제가 마비되는 에너지 자원도 마찬가지다.

특히 중요한 에너지원인 석유는 공급 차질이 생겼을 경우에 대비해 국제에너지기구(IEA)는 90일 사용량을 비축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한국도 이에 따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비축량은 석유는 원유 기준 45일, 천연가스는 30일, 석탄은 20일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그런데 만약 국제적 외부 요인에 의해 30일 이상 천연가스가 도입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황당한 상상이 아니다. 갈수록 국가 간 갈등이 첨예해지는 요즘이기 때문이다. 중동 지역에 전운이 감돌아 호르무즈 해협이 장기 봉쇄되는 사태가 오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남중국해에서는 미국과 중국 간에 연일 무력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비관론자들은 ‘일촉즉발’이라고까지 한다.

그래서 해외자원개발이 더욱 필요하다. 국내 자원 비축이 일시적이고 단기적인 처방이라면, 자원개발을 통해 확보한 해외 광구는 장기적인 천연 비축기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국내 비축은 ‘소극적 자원안보’, 해외 자원개발은 ‘적극적 자원안보’인 셈이다.

한국은 일본과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 무역 분쟁으로 한때 큰 타격을 입었다. 이와 유사한 문제가 에너지 자원 분야에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국가 간에 분쟁이 발생하면, 국영회사 중심의 자원 시장에서는 자원 공급이 무기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개발과 생산에 5~10년이 걸리는 자원개발의 특성상, 문제가 발생할 때 시작하면 늦을 수밖에 없다. 잠복기가 2주인 코로나바이러스도 통제하기 어려운데, 5~10년의 잠복기(생산·도입까지 걸리는 시간)를 갖는 에너지 자원은 잘 대처하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의 현실에 맞는 자원 안보 차원의 자원개발 정책이 꾸준히 추진되면 좋겠다. 에너지 자원개발은 미래 세대를 위한 일이다.

◆신현돈 교수

서울대 자원공학과 학·석사를 마치고 캐나다 앨버타대에서 석유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셸·코노코필립스 등 글로벌 메이저 에너지 기업에서 일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자원개발 전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신현돈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