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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외국 자본 투기와 소송 조장하면서 경제 활성화 바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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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기업들은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 과제로 추진해 온 ‘기업 규제 3법’(공정거래법·상법·금융그룹감독법)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 통과 직전 단계에 다다르면서다. 20대 국회에서도 기업 경영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우려에 따라 제동이 걸렸던 이 법안들이 거대 여당의 국회 장악을 계기로 추진력을 얻게 되면서 기업들에는 비상이 걸렸다.

기업 투명성 강화에 급진적 수단은 역효과 #경제민주화라는 미명에 기업 설 자리 잃어

특히 기업들은 시장 원리를 중시해 온 야당조차 제대로 방어막을 쳐주지 않자 이제는 마지막 산소호흡기를 떼는 상황이라며 불안에 떨고 있다. 재계에서는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찾아가 입법 반대를 호소해도 효과가 없었다. 김 위원장이 “여당 법안이란 이유로 무조건 반대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다. 다른 경영단체장도 김 위원장을 방문해 반대 의견을 전달하기로 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김 위원장 스스로 공정 경제,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 큰 틀의 경제민주화를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법안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급진성을 띠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헌법이 보장한 경영의 자율성은 물론이고 국제적 관행에 비추어 봐도 반(反)기업적 독소조항을 갖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에 대한 다중대표소송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임이다. 이들 두 조항은 기업 경영에 대한 무차별적 소송과 투기의 빌미를 주고 있다. ‘재벌의 경영 투명’이라는 명분 속에 국내 기업들에 대한 투기자본의 공격이 일상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중대표소송은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의 부실 경영을 이유로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소송할 수 있는 제도다. 자회사의 상장 여부와도 무관하기 때문에 기업의 신규 사업이나 신수종 사업도 모두 소송의 대상이 된다. 소송의 남발 가능성이 커 미국·일본에서도 모회사가 자회사의 지분 100%를 가졌을 때만 허용된다. 실정이 이런데도 그대로 도입할 경우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고 있는 국내 기업은 자회사의 경영 실책을 빌미로 끝없는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임은 기업 이사회에 투기자본의 트로이 목마를 들여놓는 격이 될 수 있다. 3명으로 구성되는 감사위원회에서 사내 감사위원 몫은 지분 행사를 3%로 제한하는 규정에 걸려 대주주의 영향력이 이미 차단돼 있다. 이번 개정안은 3% 룰의 대상을 외부 감사위원 2명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투기적 외국 자본이 주주총회에서 힘을 합쳐 감사위원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 역시 미국·일본에서는 도입하지 않고 있다.

이런 반기업적 법안이 도입되면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에 급급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설 수 없게 된다. 오늘의 1등도 내일에는 루저가 되는 무한경쟁과 적대적 인수합병(M&A)이 난무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영이 불안하면 투자에 집중할 여력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과도한 기업 규제는 코로나19 극복과 경제 활성화를 추진하는 정부 정책에도 역행한다. 기업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는 것은 좋지만, 급진적으로 하면 기업이 설 자리가 없다. 국정 과제라는 이유로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기업의 현실을 충분히 살펴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실수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