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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은화의 생활건축

혐오시설의 대변신, 동탄호수공원 주차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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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한은화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한은화 경제정책팀 기자

한은화 경제정책팀 기자

도시에서 꼭 필요한 존재지만 혐오시설로 낙인 찍힌 건물이 있다. 주차빌딩이다. 이 건물이 동네 어귀에 지어진다 하면 미관을 해친다며 민원이 쏟아진다. 거대한 창고 같은 모양새 탓이다. 용도에만 맞게, 되도록 값싸게만 짓느라 알루미늄 패널로 마감한 건물이 대다수여서 그렇다.

그런데 경기 화성시 송동의 동탄2 호수공원에 들어설 공영주차장은 남다르다. 최근 화성도시공사는 이 주차빌딩 관련 설계공모전을 열었다. 공원 방문객을 위해 처음부터 지정된 도시계획시설이었지만, 호숫가 금싸라기 땅(면적 3510㎡)에 창고 같은 건물을 덜렁 지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공모전을 기획하고 프로젝트의 총괄을 맡은 조항만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현장설명회에서 일반적인 주차장으로 짓지 말 것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통상의 주차빌딩인 줄 알고 왔다가 포기한 팀도 여럿이었다.

그 결과 UIA 건축사사무소의 ‘산책자들, 아치로 공원을 만나다’가 당선됐다. 언뜻 보면 주차빌딩 같지 않다. 아치형의 철골 조형물 같은 모양새다. 철골 구조체이면서 아름다운 조형미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파리의 에펠탑의 분위기도 난다. 그런데 이 건물은 총 325대의 차를 주차하는 주차장이자 호수공원으로 이어지는 문과 같은 조형물이고, 야외공연장으로도 변신한다.

동탄2 호수공원에 들어설 공영주차장 당선작. [사진 UIA 건축사무소]

동탄2 호수공원에 들어설 공영주차장 당선작. [사진 UIA 건축사무소]

건축가 위진복 소장의 영리한 셈법이 만든 디자인이다. 주차빌딩의 남쪽으로는 상가건물이 있고, 북쪽으로 호수가 있다. 만약 기존 모양대로의 주차빌딩이 들어서면 앞 건물의 호수 뷰를 가리게 된다. 건축가는 주차빌딩을 최대한 뚫고 띄워 시야를 확보하기로 했다. 건물을 군더더기 없는 구조체 그 자체로 디자인했다. 처음부터 구조공학자와 협업해 디자인을 완성했다. 건물 모양새가 곧 기능이다.

건물 1층을 한강 다리처럼 아치 형태로 뚫은 것도 위 주차장 하중을 가장 효율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방법이어서다. 그 덕에 기둥 없이 뻥 뚫린 아치의 길이가 50~80m에 달한다. 아치 안의 공간은 공원으로 가는 길이자, 경사 차를 활용해 계단석이 있는 야외공연장이 된다. 공원으로 이어지는 자전거 길도 있다.

그런데 건물 내부에도 기둥이 적다. 주차공간을 위해 가능한 한 비웠다. 바람을 버티는 구조체 역할은 건물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다이아몬드 모양의 철골이 맡고 있다. 속은 텅 비어 있지만, 사람이 베고 누워도 탄탄한 죽부인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고층 빌딩의 전망대에서 자주 쓰는 방법이다. 잠실의 롯데월드 타워도 같은 방법을 썼다. 건물의 남쪽 면에는 이 구조체를 활용해 친환경 수직 정원을 만들었다. 주차장도 이렇게 근사하게 지어질 수 있다. 기피시설이 아니라 얼마든지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한은화 경제정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