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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핀 “일상 얼마나 소중한지는 잃어봐야 알 수 있어”

중앙일보

입력

“난 해를 잃었어 이제 나는 눈 멀어”
인디밴드 허클베리핀이 꼽은 ‘내 인생의 노랫말’입니다. 2004년 발매된 3집 ‘올랭피오의 별’의 동명 수록곡인데요. 프랑스 문학가 빅토르 위고의 시 ‘올랭피오의 슬픔’에서 따온 제목처럼 장엄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작사ㆍ작곡한 이기용은 “올랭피오라는 이름이 주는 낯섦이 마음에 들었다”며 1998년 데뷔 이후 생겨난 터프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서정적인 곡에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내 인생의 노랫말]

“사실 어떤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잖아요. 이별 후에 얼마나 격렬하게 고통을 느끼는지가 역으로 그 사람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알게 해주니까요. 그래서 처음부터 ‘해를 잃었다’는 말로 시작해요. 당신이 사라지면서 빛도 사라지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눈이 멀었다는 거죠. 일상적이진 않지만 내면의 갈등이 드러나는.”

서울 연희동 작업실에서 만난 허클베리핀의 이기용, 성장규, 이소영. 창문 사이로 계단이 비친 모습.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 연희동 작업실에서 만난 허클베리핀의 이기용, 성장규, 이소영. 창문 사이로 계단이 비친 모습.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는 ‘음유시인’이라 불리는 허클베리핀이 음악을 만드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평범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톡’하고 무언가가 떨어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순간이 모여 감정의 파장이 생겨나고 마음 속에서 꿈틀대던 무언가가 노래로 소화돼야지만 정리가 된다”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이들은 감정의 파편이 쏟아지면 온몸으로 견뎌내는 편입니다. 3~4년 간격으로 발표해온 신보가 뜸했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5집 ‘까만 타이거’(2011) 이후 이기용에게 찾아온 마음의 병이 심해지면서 서울을 떠나 제주로 향했던 이들은 7년 만에 6집 ‘오로라피플’(2018)을 선보였습니다.

그 사이 ‘사랑하는 친구들아 안녕 나는 너희들이 모르는 사이에 잠시 지옥에 다녀왔어’(2015)라는 싱글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성장규는 “제주 김녕에 도착하자는 순간 어떻게 이렇게 형이랑 어울리는 곳을 찾았나 싶었다”며 “어둠과 빛이 극명한 대비를 이뤄 스산하면서도 반짝이는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2017년 3월 SNS에 올린 제주 김녕에서 머물 당시 모습. [사진 허클베리핀]

2017년 3월 SNS에 올린 제주 김녕에서 머물 당시 모습. [사진 허클베리핀]

어느덧 23년 차가 된 이들은 다시 연희동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지난 5월 싱글 ‘선라이트’를 발표하고 7집 준비가 한창입니다. “사람 때문에 지치고 마음의 병이 심해졌는데 막상 떠나보니 다시 사람이 그리워졌다”네요. 음악 역시 자연과 어울리는 아날로그에서 도시를 담아내는 전자음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올랭피오의 별’에서 빛을 잃고 헤매던 화자처럼 “겨우 다다른” 새로운 모서리에서 “오랜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는 셈입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영상=심정보·조수진·정수경·여운하

내 인생의 노랫말

가수들이 직접 꼽은 자신의 노랫말입니다. 시대와 장르의 경계를 넘어 가수와 청중에게 울림이 컸던 인생의 노랫말을 가수의 목소리로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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