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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김종인의 국민은 과연 누구인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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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4호 31면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행보가 심상찮다. 성큼성큼 보폭을 넓혀 가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본인은 여전히 선을 긋고 있지만 대선을 의식한 계산된 발걸음이란 시각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바꾸며 ‘국민’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진다. 말도 거리낌이 없다. 지난 10일엔 그 국민을 잇따라 언급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아침 회의에선 개천절 거리 집회를 3·1 만세운동에 비유하더니 여야 대표 오찬 회동에선 재난지원금을 거론하며 “국민은 한 번 정부의 돈에 맛을 들이면 거기에서 떨어져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대권 의식한 보폭 넓히기에 앞서 #당명 속 국민, 누군지부터 답해야

지난달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아 무릎 꿇고 사과했던 그의 발언이 맞나 싶지만 이 또한 의도된 시나리오라는 게 중론이다. 중도와 호남에 이어 강경 보수 세력까지 좌우 모두를 챙기려는 양수겸장의 속내가 담겨 있다는 해석이다. 노회한 정치 원로의 현란한 줄타기라는 얘기도 들린다. 바둑으로 치면 좌상귀에서 우하귀로 손바람을 내며 신출귀몰하고 있는 셈이다. 그의 머릿속엔 지금 추세를 이어가 내년 4월 재·보궐선거를 승리로 이끈 뒤 대안 부재론을 앞세워 야권 대표 주자로 등극하는 시간표가 그려져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엔 나가도 너무 나갔다. 여의도에서도 최근 정국 상황이 괜찮게 흘러가다 보니 잠시 방심한 탓에 부지불식간에 속마음을 드러내며 자충수를 둔 것이란 평가가 적잖다. ‘돈 맛’ 발언에 대해 같은 당 장제원 의원조차 “국민을 섬김의 대상이 아닌 훈육의 대상으로 보는 지극히 권위주의적인 발상이자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나누는 봉건주의적 사고에서 나온 말”이라며 “국민이 기생충이냐”고 일갈했을 정도다. 김 위원장이 일찍이 “시비 걸지 마라”고 경고했던 당내 강경파의 뼈아픈 지적에 그는 과연 뭐라 답할 것인가.

개천절 집회 발언은 더욱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다. 지난 6개월간 코로나 공습에 맞서 온 국민이 힘겹게 쌓아온 공든 탑이 8·15 집회 이후 한순간에 무너지는 걸 바라만 봐야 하는 심정이 어떠했을지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그 후 한 달 넘게 나라 전체가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있는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절규가 들리지 않는가. 이 정도 공감 능력으로 어찌 ‘국민의 힘’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당명만 바꾸면 끝인가.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돼 있다. 이 국민이 어떤 국민인가. 기꺼이 방역에 협조하고 희생하는 국민이 아니던가. 손쉬운 배제보다 힘든 연대를 선택한 국민이 아니던가.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보다 한 발 앞서 시대의 방향타를 제시하는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유권자들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김 위원장은 여전히 옛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시혜의 대상인 궁민(窮民)으로 착각하고 있진 않은가. 이런 전근대적 시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 정권 교체는 언감생심에 연목구어일 뿐이다.

김 위원장이 제1야당의 능력 있는 구원투수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가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어내는 뚝심 있는 정치인이길 바란다. 구원투수라고 MVP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나. 그러다 보면 한국 정치발전에 공헌하게 될 거고, 그러다 보면 본인은 원치 않더라도 ‘국민’이 먼저 그를 대선의 장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김 위원장이 당명으로 차용한 국민은 과연 누구인가. 김 위원장에게 국민은 어떤 존재인가. 돈에 맛을 들인 국민인가, 방역은 안중에도 없는 국민인가. 아니면 주권자로 헌법에 명시된 바로 그 국민인가.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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