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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A레벨’ 성적 엉터리 산정, 알고리즘이 기가 막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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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4호 22면

[런던 아이] 영국 대학입시 대혼란

고3 학생들이 실력에 걸맞는 정당한 수능성적을 못 받는 상황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전체 수능생의 40%가 그랬다면 말이다. 그것도 국가시스템의 오류 때문이라면.

코로나로 올해 시험 취소 후폭풍 #학교 과거 성과·내신·교사 예측 등 #알고리즘 바탕 예상 점수 산출 #학생 39%가 기대치보다 낮아 #학생들 시위에 정부 뒤늦게 철회 #일부는 이미 불합격 피해 입어 #‘A레벨’ 못 치른 부담 평생 갈 수도

그런데 이런 상황이 영국에서 실제로 발생했다. 영국에서는 재수도 어렵다. 시험을 다시 볼 수 있는 제도가 갖춰져 있지 않다. 한국 같은 재수학원도 없다. 수능이 대학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상상할 수도 없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이게 바로 올해 8월 13~17일 영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영국은 한국과 매우 다른 입시제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느끼는 시험에 대한 압박감은 한국 학생들 못지않다. 그리고 이 압박감은 13세부터 시작한다. 영국 교육시스템은 4~11세가 다니는 초등학교(primary school)와 11~18세가 다니는 중등학교(secondary school)로 나뉜다.

16세 때 GCSE 시험이 첫 관문

지난 8월 16일 런던에서 학생들이 정부에 항의시위하고 있다. 영국 정부가 A레벨 시험 결과를 알고리즘 시스템에 기반해서 산출하기로 한 기존의 입장을 유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난 여론이 커지자 이틀 후 영국 정부는 결정을 번복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8월 16일 런던에서 학생들이 정부에 항의시위하고 있다. 영국 정부가 A레벨 시험 결과를 알고리즘 시스템에 기반해서 산출하기로 한 기존의 입장을 유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난 여론이 커지자 이틀 후 영국 정부는 결정을 번복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초등학교부터 중등학교 3년차인 4~13세 학생들은 모두 같은 과목을 공부한다. 그리고 13세가 되면 그 이후부터 자신이 공부할 과목을 결정하기 시작한다. 16세가 되면 모든 학생들은 자신이 결정한 과목에 대해 수능과 비슷한 형태의 꽤 까다로운 국가 시험을 봐야 한다. 14~15세 2년 동안 모든 학생들이 이 시험을 준비한다.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는 과목은 13세에 결정된다. 영어, 과학, 수학은 모든 학생들이 공부해야 하는 필수과목이다. 이 3가지 필수과목 외에 외국어나 인문학 과목들, 또는 예술, 스포츠, IT 등의  6~7개 선택과목을 골라서 공부한다. 이렇게 해서 학생들은 총 9~10개 과목을 공부하며, 이 선택이 남은 교육 과정과 평생을 좌우한다. 예를 들어 13세에 지리학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이후로 지리학을 영국 교육과정 내에서 배울 수 있는 길은 평생 닫혀 버리는 것이다.

16세에 치르는 시험은 중등교육수료자격고사(GCSE, General 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 로 각자가 13세에 선택한 과목에 대한 시험을 치른다. 모든 학교의 수업은 시험 몇 주 전에 끝나고 학생들은 집에 머무르며 하루 종일 이 시험을 위해 공부에 매진한다.

정부가 운영하는 이 시험은 비밀리에 준비되며 외부 감독자들이 과정을 철저히 감시한다. 수능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영국 학생들은 시험을 16세에 치른다는 것과 시험을 하루가 아닌 몇 주에 걸쳐 본다는 점이다.

시험은 학교가 채택한 평가기관에 따라 보는 날짜가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5~6월에 사이에 본다. 결과는 8월에 발표된다. 그때 나온 성적에 따라 그 다음 교육 과정이 정해진다.

시험 성적이나 학업에 관심 없는 학생은 16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직업교육을 받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실습을 하며 돈을 번다. 전체의 6% 정도가 학교를 떠난다.

나머지 학생들은 학업을 이어 간다. 이후 교육 시스템은 한국 시스템과는 상당히 다르다. GCSE를 통과한 과목 중 4~5개를 선택해서 그 과목들만 집중해서 공부한다.

16~18세는 중등학교 마지막 2년으로 이 기간 동안 학생들은 A레벨(Advanced Level)이라는 시험을 준비한다. 이때 학생들은 정말 치열하게 공부한다. 시험 과목수가 4~5개이지만 그 범위와 내용은 한국이나 미국 대학교 1, 2학년 수준과 맞먹을 정도다. 입학할 대학을 정해서 지원하는 건 17세 때다. 학생들은 이때 UCAS(Universities and Colleges Admissions Service)라고 불리는 영국의 대학 입학지원처 시스템을 통해 대학에 지원한다. 16세에 치른 GCSE 성적과 A레벨 시험 예측 성적, 자기소개서, 학교 추천서 그리고 상황에 따라 필요한 경우 인터뷰를 바탕으로 5개 대학을 선택해 지원한다.

영국 중등학교 학생들이 지난 8월 20일 GCSE 성적표를 들어 보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영국 중등학교 학생들이 지난 8월 20일 GCSE 성적표를 들어 보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그리고 각 대학들은 지원서를 검토해서 입학 가능하다고 판단한 학생들에게 일정 점수 이상의 A레벨 시험 성적을 받으면 합격할 수 있다는 입학 요강을 알려주고, 입학이 어렵다고 본 학생들에게는 불합격을 통보한다. 그 후 학생은 입학 허가를 받은 대학 중 2개를 선택하는데, 이 두 대학 중 높은 점수를 요구하는 대학(1지망)을 펌 초이스(firm choice), 그보다 낮은 점수를 요구하는 대학(2지망)을 인슈어런스 초이스(insurance choice)라고 한다. 학생은 펌 초이스 대학 합격을 위한 성적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A레벨 시험 한 달 전에는 모든 교과 과정이 끝나고 학생들은 집에서 지내며 시험 준비를 한다. 한 과목 당 2~3개의 시험을 보는데, 그 결과는 8월에 나온다. A레벨 성적은 가장 우수한 A*(A스타)부터 낮은 E까지 있다. 등급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안 좋은 성적은 U로 표기된다.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A레벨 시험 성적을 받는 것밖에 없다. 영국 대학에서 학생들은 단 한 과목만 공부한다. 전공이나 부전공 개념이 없다. 예를 들어, 당신이 역사학을 공부하기로 했다면 대학 생활 3년 내내 역사학만 공부한다. 그래서 영국의 대학 과정은 3년이다. 학생들이 13세부터 그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했기 때문이다.

매해 입학 정원의 숫자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A레벨 시험을 다시 보는 것은 매우 드물다. A레벨 시험 성적이 펌 초이스 대학 입학에 적합하지 않다면 인슈어런스 초이스 대학에 입학한다. 만약 두 대학 모두에 다 합격할 수 없는 점수를 받았다면, 클리어링(clearing·예비) 제도로 다른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하지만 올해 영국 학생들은 A레벨 시험을 볼 수 없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정부가 시험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대신 알고리즘에 근거해서 A레벨 시험 점수를 산출했다. 실제 시험 성적을 대신한 점수 산출 알고리즘은 네 가지 기준에 의해서였다.

우선 첫 번째는 학생이 다니는 학교의 수준이었다. 그 학교가 과거에 A레벨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기록한 학생들을 얼마나 많이 배출했는지를 고려했다. 그 다음은 학생이 16세에 받은 GCSE 성적, 그리고 학생의 평소 내신 성적, 그리고 담당 선생님들이 예상한 학생의 A레벨 점수 예상치였다.

하지만 알고리즘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학생 본인의 성적보다 학교의 과거 입시결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학생의 성적이 좋아도 소속 학교의 과거 성과가 낮으면 더 낮은 점수를 받았다. 교육에 대한 투자가 적은 가난한 학교나 가난한 지역의 학생들이 실력에 못 미치는 성적을 받게 될 확률이 높다.

지난 8월 13일 발표된 A레벨 점수 산정 결과 전체의 36% 학생들이 그들이 받을 것으로 예상했던 점수보다 한 단계 더 낮은 점수를 받았다. 3%는 2단계나 낮은 점수를 받았고, 반대로 2%는 원래 받아야 할 점수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A레벨 시험 성적이 유일한 대학 지원 기준인 상황에서 많은 학생들은 갑자기 기대했던 학교에 입학할 수 없게 됐다. 그들이 꿈꾸고 노력해 온 미래가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정부의 A레벨 시험 산정 결과 발표 후 많은 학생들이 성적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시위에 나섰다. 여당 의원들도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시험 성적 조정을 거부했다. 그러나 교육정책에 대한 자치권을 가지고 있는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모두 이 알고리즘을 거부하고 순전히 교사들이 추천한 성적에 근거한 성적을 근거로 삼았다.

입학정원 탓 A레벨 재시험 드물어

신문에는 소속된 학교의 과거 성과가 안 좋다는 이유로 훌륭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 학생들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며칠 간의 학생 시위와 엉뚱한 결과로 인해 대학 입학의 기회를 잃은 학생들에 대한 뉴스가 쏟아진 후인 8월 20일 결국 영국 정부는 결정을 철회했다. 교사의 예측 점수만을 고려하되 알고리즘이 교사보다 더 높은 점수를 산정한 경우에만 활용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일부 학생들은 이미 피해를 입은 상황이었다. 대학들은 A레벨 성적표가 나오는 즉시 빠르게 결과를 발표하는데, 성적 조건을 갖춘 학생들에게 합격을 통지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불합격시킨다. 많은 대학들이 융통성을 발휘해서 성적을 받지 못한 학생들에게 입학을 허용하기도 했지만 모두가 이런 혜택을 받지는 못했다.

게다가 2020년 졸업생들은 평생 A레벨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는 부담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한다. 앞으로 대학을 다닐 때나 직장을 구할 때 A레벨 시험 점수가 없다는 사실이 평생 낙인처럼 따라다닐지도 모른다. ※번역 : 유진실

짐 불리 코리아중앙데일리 에디터 jim.bulley@joongang.co.kr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한때 영국 지역 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한국에 왔고 현재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스포츠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KBS월드, TBS(교통방송), 아리랑TV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진행자 및 패널로 출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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