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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종 전 법원장까지…‘사법농단’ 4번째 줄줄이 무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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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4호 11면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방법원장이 18일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시스]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방법원장이 18일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시스]

법원 내부 비리에 대한 수사 기밀을 법원행정처로 넘겼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은 이태종(60) 전 서울서부지방법원장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1심에서 무죄를 받은 4번째 사건이다. 이번 판결까지 전·현직 법관 6명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재판장 김래니)는 18일 “공소사실이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 전 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 “수사 저지 아닌 감사 목적” #수사기밀 누설 혐의 인정 안 해 #전·현직 법관 6명 무죄 판결

이 전 법원장이 받은 혐의는 두 가지다. 2016년 서울서부지법 집행관 사무소 직원들이 검찰 수사를 받았다. 검찰은 이때 이 전 법원장이 다른 법원으로의 수사 확대를 막기 위해 수사 당사자들의 검찰 진술과 영장 사본 등을 나모 서부지법 기획법관을 통해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알렸다고(공무상 비밀누설) 본다. 이렇게 수사 기밀을 유출하면서 법원 내 국·과장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시킨 점에 대해서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기록으로 따져볼 때 이 전 법원장에게 수사 저지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없고, 직원들에게 기밀 취득을 지시했다는 점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기획법관이 법원행정처에 보고하는 과정에 이 전 법원장이 공모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법원은 “피고인은 법원장으로 철저한 감사를 지시한 것으로 보일 뿐”이라며 “서부지법에서 수집된 자료에도 다른 법원으로 수사 확대 가능성과 관련한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검찰이 주장한 ‘수사 확대 저지’ 목적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어 문제가 됐던 집행관 사무원 비리 사건 수사 과정에서도 법원이 자의적으로 영장을 기각하거나 한 사정은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법원 직원들이나 판사들의 증언도 이 전 법원장 무죄의 근거가 됐다. 다수의 증인은 “피고인이 법원장으로서 감사를 지시했을 뿐이고 수사 상황을 파악하라는 지시는 받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재판부는 “관련자들은 감사 필요성과 기획 법관의 요청으로 자료를 냈지 피고인의 지시로 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나 전 기획법관이 행정처에 보낸 보고서는 직무상 비밀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어떤 자료를 확보했고, 책임자가 어떤 의견인지는 누설되면 수사에 장애를 초래할 위험이 있는 형법상 기밀”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나 전 기획법관이 “법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진술한 점을 받아들여 이 전 법원장이 나 전 기획법관에게 지시하는 등의 공모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에 대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는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 판단을 했다. 나 전 기획관은 기소되지 않았으므로 이런 행정처에 대한 보고 행위 자체가 누설에 해당하는지도 판단하지 않았다고 판결문에 썼다.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는 길게 판단하지 않았다. 설령 서부지법 비리 수사와 관련한 영장 사본을 보고하도록 이 전 법원장이 지시했다 하더라도, 당시 법원장의 직위에서 할 수 있는 정당한 업무기 때문에 직권남용에 해당할 여지는 없다고 본 것이다. 선고 이후 이 전 법원장은 “30년 넘게 일선 법원에서 치열하게 재판한 한 법관의 훼손된 명예가 조금이나마 회복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로써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기소된 사건들에 대해 4번째이자 전·현직 판사 6명이 1심서 무죄를 받았다. 앞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과 임성근 부장판사,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가 각각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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