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대구의 한자 ‘大丘’가 ‘大邱’로 바뀐 사연

중앙일보

입력 2020.09.17 09:00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83)

공자의 이름은 ‘구(丘)’다. 물체의 모습에서 따왔다. 중국 후한의 사상가 왕충이 쓴 『논형(論衡)』이란 책에 그 유래가 나온다. 『논형』의 ‘힐술현’에는 “물체를 닮은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형상이라 한다”며 “공자의 이름이 구(丘)인 것과 같다”고 했다. 동양에서 이름을 지을 때 오랜 기간 사용한 대표적인 방법이다.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공자의 어머니 안징재(顔徵在)가 니구산에 가서 기도를 드린 다음 공자를 낳았다. 공자가 태어나니 머리 위가 움푹 들어갔다. 그래서 이름을 ‘구’라 하고 자를 ‘중니(仲尼)’라 하였다.” 니구산은 가운데가 들어가 있다고 한다.

공자의 이름 '구(丘)'는 물체의 모습에서 따왔다. 동양에서 이름을 지을 때 사용한 대표적인 방법이다. [사진 Wikimedia Commons]

공자의 이름 '구(丘)'는 물체의 모습에서 따왔다. 동양에서 이름을 지을 때 사용한 대표적인 방법이다. [사진 Wikimedia Commons]

공자 이름 ‘구’는 우리나라 도시 이름에도 영향을 미쳤다. 바로 대구이다. 대구는 팔공산‧비슬산 등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분지 지형이다. 신라 경덕왕 이래로 대구는 ‘달구벌’로 명명돼 왔다. 이후 이 지명을 한자식으로 표기한 것이 ‘넓은 평야’, ‘큰 언덕’이라는 뜻의 ‘대구(大丘)’가 되었다. 오늘날처럼 ‘대구(大邱)’로 한자 표기가 바뀐 것은 조선 정조 시기다. 종래의 지명에 공자의 이름인 ‘구’자를 쓰는 것은 성현에 누를 끼친다는 유학자의 의견을 받아들이면서다.

공자는 이름이 형상의 원리로 지어졌지만 그 아들은 사물의 이름을 빌려 붙여졌다. ‘빌림(假)’의 원리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는 공자의 아들 이름 내력이 나온다. “공자는 19세에 송나라 견관씨(幵官氏)에게 장가들어 첫해 아들을 낳았다. 이때 노나라 소공이 잉어 한 마리를 공자에게 선물로 보냈다. 공자는 임금이 아들이 태어난 걸 축하하기 위해 선물까지 보낸 것을 영광으로 여겨 아들 이름을 ‘리(鯉, 잉어)’로 붙였다. 또 자는 이름과 연관지어 ‘백어(伯魚)’라 했다.” ‘맏이’와 ‘물고기’란 뜻을 담았다.

은나라 사람들은 이름을 지을 때 소박하게 태어난 날을 따르거나 또는 울음소리를 듣고 그 율을 붙였다. 또 문왕은 ‘창(昌)’이란 이름이 붙여졌는데 그가 훗날 주(周)나라를 번성하게 할 줄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춘추좌전』에는 자식 이름으로 지어서는 안 되는 것이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나라와  산천(山川) 이름이다. 또 질병과 짐승의 이름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예로부터 자식은 부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문화가 있었다.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도 공경하고 삼가는 뜻에서 피휘(避諱)라 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국가나 산천의 이름은 많은 사람이 자주 부르는 명칭이다. 그래서 그걸 이름으로 붙이면 후손은 수시로 듣고 말하게 돼 난처해지기 때문이다. 부모가 아들 이름을 ‘백두산’이나 ‘한라산’ 등으로 지으면 백두산의 아들은 아버지 이름을 여기저기서 듣게 될 것이다. 한 연예인은 쌍둥이 세 아들의 이름으로 ‘대한민국만세’를 두 글자씩 나누어 붙였다. 나라 이름은 살짝 비껴갔다. 이름을 지을 때 한 번쯤 생각해볼 사안이다.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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