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현재 소상공인연합회 홈페이지의 임원진 소개란에 회장은 빈칸으로 바뀌어 있다. 전날 소상공인회가 임시 총회를 열어 배동욱 회장에 대한 해임을 의결한 뒤 명단 삭제도 즉각 이뤄진 것이다. 6월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발생한 ‘걸그룹 춤판’ 논란이 계기가 된 소상공인회 내부 혼란은 이렇게 한 단계가 마무리됐다.
15일 임시총회를 주도한 김임용 수석부회장은 해임 결정 뒤 기자회견에서 “술판ㆍ춤판 워크숍 논란으로 물의를 빚은 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태였을 뿐”이라며 “처음부터 사리사욕을 앞세우고 연합회를 사유화하기 위한 노력에만 골몰한 데 근본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해임 투표에 참여한 29명(소속단체 대표 격) 중 찬성인 24명은 ▶소상공인회의 근조화 발주처를 배 전 회장 가족이 운영하는 꽃집에 일감 몰아주기 한 점 ▶의견이 맞지 않는 사무국 직원에 대한 강등 조치가 부당하다는 점 등에 동의했다.
하지만 배 회장은 이번 결의에 대해 무효를 주장하며 소송을 예고한 상태다. 배 회장 측은 “총회 의결권이 있는 사람은 56명인데 현장 투표엔 25명만 참여해 과반 정족수에 미달한다”는 등의 이유로 절차상 하자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김 수석부회장 등 해임 찬성 측은 “회비 납부 이력 등을 기준으로 봤을 때 의결권자는 49명이기 때문에 과반 찬성 요건에 맞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다툼을 계기로 소상공인회장직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커졌다. 무보수 명예직인 소상공인회장 자리를 두고 조직 내 분란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다.
경제단체장 중 한명…쓸 수 있는 돈 월 500만원
소상공인회장에게 공식적인 월급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회장의 경조사비 지출 등 명목으로 월 최대 500만원의 현금을 쓸 수 있다.
소상공인회 관계자는 “실제 쓰는 돈은 한 달에 200만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전했다. 회장 직무를 수행하며 쓰는 주요 경비는 법인카드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 회장에겐 카니발 차량과 기사가 제공된다.
소상공인회장에겐 사무국 직원 28명에 대한 인사권과 지회장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도 있다. 김 수석부회장은 “배 전 회장은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직원을 본부장 등에 앉히고, 노조 활동을 해온 실장을 팀원으로 강등시켰다”며 “걸그룹 논란 때도 사태의 원인을 홍보팀에 돌려 팀을 해체했다”고 비판했다.
이번 해임 결정의 한 이유가 된 각종 사업에 대한 결재권도 회장의 권한이다. 월 200만원가량의 근조화 일감을 가족 꽃집에 맡겼다는 비판을 받은 배 전 회장은 7월 논란 당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배 전 회장의 해임을 찬성하는 측은 “이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면 다른 인쇄업체, 용역업체 등을 자신의 입맛대로 바꾸는 전횡을 일삼았을지 모를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모든 사안을 넘어서는 회장 자리에 대한 가장 큰 매력은 대외적 영향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단체장 자격으로 주요 정부·정치권 인사들을 만나 의견을 전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또 소상공인회장 출신인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이 21대 총선에 당선되면서, 자리에 대한 가치가 더욱 올라갔다는 분석도 중기부와 정치권에서 나온다. 최 의원은 2018년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안에 반대하며 주목을 받은 뒤, 당시 미래통합당의 비례대표 후보 공천을 받았다. 소상공인회에 대한 지도ㆍ감독 기관인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이번 다툼이 일어난 건 명예직 그 자체에 대해 상징성을 두는 심리가 강해 보인다”고 말했다.
2013년 법정 단체로 지정된 소상공인회는 700만 소상공인의 대표 격인 조직이란 점을 내세우고 있다. 정부 지원금은 연간 약 30억원이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