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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못 묻힌 시신의 한, 그걸 푼 동료 의경 결정적 한마디

중앙일보

입력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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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1일, A씨(당시 20세)는 의무경찰로 군 복무를 시작했다. 배치된 곳은 인천 남동경찰서 방범순찰대. 같은 해 5월 당시 이경 계급이던 그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조사에 나선 경찰은 A씨가 우울증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2주 만에 사건을 종결했다.

A씨 부모는 “조사결과를 못 믿겠다”며 “진상규명을 할 때까지 시신 인도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도 청구했다. 1심에서 패소했고, 항소는 기각됐다. 대법원은 심리불속행 기각(상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사건을 더는 심리하지 않고 상고 기각하는 제도) 결정을 했다. 그동안 가천대 길병원에 방치된 A씨 시신은 반(半)미라 상태가 됐다.

드러난 가혹 행위

지난해 초 A씨 부모는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진상규명위원회)에 A씨 사망과 관련한 재조사를 요청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이었다. 조사에 나선 진상규명위원회는 당시 A씨 동료 의경으로부터 A씨가 가혹 행위를 당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진상규명위원회가 밝힌 당시 상황은 이랬다. 신병훈련소에서 시작된 A씨의 감기 증상은 경찰서 배치 후에도 나아지지 않았다. 병원 진료결과 A씨는 폐렴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는 폐렴 증상을 완치하지 않은 상황에서 훈련과 근무에 참여해야 했다. 구보 시 낙오하는 일이 많았던 그는 선임병으로부터 폭언 등 가혹 행위에 시달렸다.

가혹 행위가 반복되자 우울증이 생겼다. 경찰병원 신경정신과에서 2차례 상담을 받았다. 증상은 계속됐고 A씨는 심야 근무 중 달리는 차에 몸을 날리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고 한다. 적절한 조치가 없던 상황에서 A씨는 숨지기 하루 전까지 가혹 행위에 노출됐다.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 A씨 일기장에는 죽음을 암시하는 글이 남아있었다.

진상규명위원회 관계자는 “A씨의 지휘관은 정상적인 부대생활이 어려웠던 A씨가 가혹 행위에 시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데도 암묵적으로 방치했다”며 “A씨는 적절한 조치가 선행되지 않고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우울증이 발병하고 악화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 A씨 순직 처리 결정

인천남동경찰서 전경. 연합뉴스

인천남동경찰서 전경. 연합뉴스

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달 경찰청에 A씨를 순직으로 재심사할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A씨가 의무경찰 복무 중 과중한 업무·선임병의 가혹 행위·부대관리 소홀 등으로 우울증이 발병해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으므로 순직 처리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인천지방경찰청은 이번 달 초 변호사·의사 등이 참여한 의무경찰 전공사상 심사위원회를 열고 A씨를 순직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본래 의경은 복무 중 극단적 선택을 하면 순직으로 처리될 수 없었다. 지난해 12월 의무경찰 관리규칙 순직 인정 범위에 공무상 인과 관계있는 정신질환이 발현돼 사망하는 경우가 포함되면서 순직 인정이 가능해졌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A씨 부모가 A씨 관련해 국가 유공자 등록과 현충원 안장 절차를 질의했다”며 “유족이 신청할 경우 적극적으로 도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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