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중 양국 체면 다 살려줬다, 사라질 뻔한 틱톡 '신의 한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과 중국 사이, 틱톡의 묘수. 그래픽=신재민 기자

미국과 중국 사이, 틱톡의 묘수. 그래픽=신재민 기자

고래(미국과 중국) 싸움에 끼여 등이 터질 뻔했던 중국산 앱 틱톡이 묘수를 뒀다.

틱톡의 글로벌 사업부를 미국에 본사를 둔 미국 기업으로 탈바꿈하면서, 그 운영을 기술 협력 파트너로 택한 오라클에 맡기기로 했다.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이라는 당근까지 내걸며 미국의 마음을 샀다. 대신 바이트댄스 본사는 중화권에 그대로 두고, 알고리즘과 인공지능(AI) 등의 핵심 기술은 유지하면서 중국의 면도 세웠다.

파이낸셜타임스(FT)ㆍ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15일(현지시간) “틱톡의 모(母)회사인 바이트댄스가 틱톡 글로벌 사업부를 미국에 본사를 둔 신규 회사로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틱톡은 미국 사업을 포함한 전체 앱 서비스의 본사를 미국으로 이전하게 된다.

이를 위해 장이밍(張一鳴) 바이트댄스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던진 승부수는 주주로 참여하는 오라클이다. 바이트댄스는 틱톡 알고리즘과 인공지능(AI) 등 핵심 기술은 유지하면서, 이용자 데이터를 오라클에 맡기는 모양새가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원했던 ‘통째 매각’은 아니지만 흡족할 만한 수준이다.

틱톡에 초강수를 둔 트럼프 대통령. AP=연합뉴스

틱톡에 초강수를 둔 트럼프 대통령. AP=연합뉴스

WSJ은 미국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가 해당 안을 검토했으며 즉각적 결정은 일단 보류했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틱톡이 미국 기업에 매각돼야 한다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바이트댄스와 오라클의 기술 제휴 승인 여부는 곧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논의가 매듭 단계에 있음을 시시한 것이다.

틱톡 매각을 둘러싼 줄다리기는 난관의 연속이었다. 장 CEO는 당초 마이크로소프트(MS)의 문을 두드렸지만 핵심인 “알고리즘까지 넘기라”는 MS의 조건에 발을 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바이트댄스에게 틱톡이 자동차라면 알고리즘은 엔진 격”이라며 “자동차는 팔아도 엔진 기술은 팔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 결과 알고리즘까지 탐내진 않은 오라클과의 협상이 급물살을 탔다.

바이트댄스 창업자인 장이밍과 틱톡 로고.

바이트댄스 창업자인 장이밍과 틱톡 로고.

오라클을 택한 것도 신의 한 수였다. 오라클의 CEO인 사프라 캣츠는 2016년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인수위 집행위원으로 일했을 정도로 관계가 좋다. 캣츠가 백악관과 장 CEO를 연결해준 뒤 적신호가 청신호로 바뀌었다. 트럼프의 복심으로 통하는 맏사위이자 백악관 선임고문인 재러드 쿠슈너도 인터뷰에서 “오라클 안에 긍정적”이라고 언급했다.

미국의 투자회사로 중국에서도 세력을 확장해온 세쿼이아 캐피탈도 동원했다. 이 회사 임원인 더글라스 레오네가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기부자인 점을 이용했다. 레오네는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등 트럼프 행정부 요직 인사들에게 틱톡을 옹호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다고 전해졌다.

그 결과 8000만명의 가입자를 거느린 틱톡을 키워 미국 기업에 넘길 뻔했던 장 CEO는 회심의 미소를 짓게 됐다. 중국에 일종의 ‘배신’으로 비칠 수 있지만 틱톡의 글로벌 사업부만 미국으로 보내고 핵심 기술과 바이트댄스 본사는 중화권에 남는 양다리 전략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틱톡과 손잡은 오라클은 트럼프 행정부와도 가까운 관계다.

틱톡과 손잡은 오라클은 트럼프 행정부와도 가까운 관계다.

속이 끓는 곳은 중국이다. 틱톡의 알고리즘은 지켰지만 신냉전 속 화웨이와 위챗까지 미국의 전방위 공세에 속으로는 칼을 갈 수밖에 없어서다.

지난 14일부터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부품 수출 길은 완전히 막혔다. 틱톡에 이어 위챗(WeChat)까지 미국 정부의 손아귀에서 운명이 좌지우지될 판이어서다. 위챗은 대표적인 반중 인사인 에드 로이스 전 의원을 로비스트로까지 고용했다. 서구에 중국 기업 대변인 역할을 해온 장밍(張明) 유럽연합(EU) 주재 중국 대사는 15일 블룸버그에 “틱톡에 대한 미국 정부의 행동은 전형적인 왕따이자 협박”이라고 반발했다.

미국의 공세에 가만히 있을 중국이 아니다.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 AI 기술을 수출할 경우 당국의 승인을 받도록 한 것도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미국에 밀리지 않고 당국이 직접 제어를 하겠다는 취지이기 때문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는 최근 호에서 “틱톡 사태 이후가 더 큰 문제”라며 “미국과 중국의 드잡이 가운데에서 기업들만 골치 아프게 됐다”고 전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