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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땀 뻘뻘 흘리며 풀 깎는 70대가 존경스런 이유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58)

명절이 다가오면 마을 경관을 가꾸고 손님맞이 대청소를 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중앙포토]

명절이 다가오면 마을 경관을 가꾸고 손님맞이 대청소를 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중앙포토]

명절이 가까워져 오면 도롯가를 예초작업 하는 어르신들을 자주 본다. 마을경관 가꾸기 공공사업 중 하나로 명절에 고향 찾는 손님맞이 대청소인 셈이다. 앞장선 어르신 한 분은 인상도 참 좋으시다. 그분은 화이트칼라로만 살아온 젊은 날의 폼생폼사는 버렸다. 정년퇴직 후엔 마당에 잔디라도 손수 깎아 보려고 엔진 톱과 예초기 쓰는 법을 배웠는데 힘을 쓰는 일이라 재미도 있고 몸이 더 건강해지고 좋아졌다고 한다. 산림 기능사 자격증도 땄고 내년엔 조경기능사 자격증에 도전한다며 자랑하신다. 이참에 시니어 일자리도 얻어 한 달에 열흘 정도 일하신다.

그분은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돈도 벌고 내가 청소한 주위가 깔끔하면 더 마음이 흐뭇하고 날마다 하는 일이 아니니 힘들지 않다” 하신다. 땀 흘려 일하고 퇴근 후 술 한잔할 때면 사는 맛이 난단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신다. “땀을 뻘뻘 흘리고 난 후 씻을 때의 기분은 아는 사람만이 알지요.”

그래도 일복을 갈아입고 일하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짠할 때도 있다. 요즘같이 더울 때 특수 작업복에 마스크 헬멧 모자 거기에 선 캡까지 쓰고 일을 한다. 땀이 비 오듯 흐른다는 말이 실감 난다. 내 젊은 시절엔 나이 드신 노인이 힘든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참 불편했다. 늙어서까지 뭔 돈을 벌겠다고 저 연세에 저런 일을 하나 하고 안 좋게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보니 그분이 존경스럽다. 꼭 그런 일을 하려는 젊은이가 없으니 더욱더 필요한 노동력이다. 앞집에서 차 한 잔과 과일을 갖고 나와서 대접한다.

어르신들이 일복을 입고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할 때도 있다. 문화재 지킴이도 비슷한 일인데 모두 나이가 지긋한 시니어 분들이다. 예초를 하고 주위 청소를 한다. [사진 pikist]

어르신들이 일복을 입고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할 때도 있다. 문화재 지킴이도 비슷한 일인데 모두 나이가 지긋한 시니어 분들이다. 예초를 하고 주위 청소를 한다. [사진 pikist]

문화재 지킴이 같은 일도 비슷한 일인데 모두 나이가 지긋한 시니어 분들이다. 예초를 하고 주위 청소를 한다. 이번 팀은 30~40대 초반 같은 젊은 분이 팀장이고 아래서 일하는 분들은 60~80대의 어르신이다. 모두 정년퇴직하시고 소일거리를 찾으신 듯 힘이 있고 일도 참 잘하신다.

인상 좋은 젊은 팀장은 더 믿음직스럽다. 오르락내리락하며 열정으로 일한다. 두 배는 하는 것 같다. 조금이라도 자신이 앞장서서 아버지 같은 어르신을 쉬게 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모든 일의 순서도 나이 많은 어르신께 여쭤보고 결정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드링크를 갖다 드리니 벌떡 일어나 가장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부터 나눠 드린다. 저런 젊은이를 보면 나라의 미래가 희망차다.

일하면서 쉬는 시간을 정하지 않으면 일에 치이고 일 욕심이 많은 어르신이라 전진만 한다. 적당한 시간이 되면 팀장이 부는 ‘삑삑’ 호루라기 소리가 귀청이 나가게 울린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헬멧을 쓰고 있기에 호루라기는 참 요긴하다. ‘ 삐리리릭 삐리리릭’ 추억의 소리다. 단체로 국민 체조할 적에나 들었던 옛날 소리라 정겹다. 아날로그 방식이지만 이따금 들리는 그 소리에 작업이 중단되고 모두 모여 쉰다.

누군가의 말처럼 건강한 어르신이 일을 취미 삼아 재능기부 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았으면 참 좋겠다. 나는 주 3일 작은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다. 일도 하고 책도 보며 정원도 손질한다. 여유롭고 느리게 가는 시간을 잘 활용하고 산다. 적당한 월급으로 생활하며 나 자신을 위한 시간도 만들 수 있으니 좋다.

요즘은 일이나 활동을 하고 싶어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다. 세상살이가 앞이 가로막힌 미로 같다. 그런데 그 속에서도 묵묵히 일거리가 주어지는 곳은 자연환경이다. 식물과 동물 등 자연 속에 살아가는 그들을 통제 관리해야 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추석 즈음 친정아버지와 산소에 가는 길에 길에서 땀을 비 오듯 흘리며 곡괭이질을 하던 어르신을 보며 불쌍하다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생각난다. 그때 아버지가 말씀하신 ‘죽을 때까지 일을 놓지 않고 사는 것이 가장 사람답게 사는 거’라 하시던 그 말이 이제야 느껴진다. 노후에도 일하고 어울려 활동할 수 있으면 행운이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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