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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냐" 공뽑기로 100만원씩 준다, 이게 추경 예술지원사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5일 유튜브로 중계된 서울문화재단의 지원금 대상자 선정 장면. [유튜브 캡처]

15일 유튜브로 중계된 서울문화재단의 지원금 대상자 선정 장면. [유튜브 캡처]

 “첫번째 숫자 2, 두번째 1, 마지막은 6입니다.” 15일 오후 2시 서울문화재단의 유튜브 채널에 세 명이 출연해 공을 하나씩 뽑아 세자릿수를 만들었다. 라이브로 중계된 추첨에서 30번에 걸쳐 숫자가 뽑혔다. 이 숫자에 해당하는 지원번호를 가진 총 30팀은 서울문화재단의 지원금 각 100만원을 받게 된다.

서울문화재단의 '추첨식' 지원 정책 논란

지원 사업의 제목은 ‘예술인과 재난을 대하는 가지가지 온-택트 수다’다. 서울문화재단은 “각종 재난 상황 속에서도 예술 활동을 지속하며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는 방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예술인의 작은 모임을 지원하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연극, 무용, 음악, 전통, 시각, 문학 등 장르 제한 없이 서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와 예술기획자들이 5~9인 모임을 구성해 신청할 수 있다.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13일까지 총 715건이 접수됐으며 이 중 중복 신청을 제외하고 650팀이 추려졌다.

서울문화재단은 통상적인 지원 대상 선정방법 대신 추첨을 선택했다. 일반적으로 예술인이나 예술활동 지원은 자격 요건에 따라 기획서를 제출받고 전문가가 선정한다. 하지만 서울문화재단은“경력, 심사, 정산의 제약을 없앤 실험적인 예술지원 방식을 도입했다”며 이같은 ‘공 뽑기’ 방식으로 지원금 대상자를 선정했다.

이날 라이브 방송에서 서울문화재단의 담당 팀장과 예술가 두 명이 공이 든 통을 섞어 숫자를 하나씩 뽑았고, 공정성을 위해 자리를 바꾸기도 했다. 방송의 댓글엔 “신선하다” “재미있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우연적 지원방식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로또 방식인가요. 실험이 아니고 도박입니다. 이럴 거면 지원서를 시간 내서 왜 쓰나요”“예술이 뽑기라니 뭐죠”“이거 안되면 로또 사러 가야되나” “강원랜드를 가겠습니다”같은 의견이었다. “올해 본 가장 재미있는 퍼포먼스”라는 댓글도 달렸다.

이번 사업은 코로나19로 인한 추경 예술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지원자들은 ‘이름, 활동분야’ ‘동료와 이야기할 수다의 제목’ ‘함께 대화 나눌 사람’ ‘이야기와 수다의 키워드’ ‘신청 동기(200자 이내)’‘계획하는 이야기 중 꼭 공유하고 싶은 내용’을 적어내고 신청할 수 있었다. 동료 예술인과의 대화는 코로나19를 고려해 비대면을 가정했으며, 별도의 증빙 서류는 필요하지 않았다.

지원 받은 100만원에 대해서도 사용 내역을 적어낼 의무는 없다. 서울문화재단 측은 “100만원은 소액이고 보조 개념이기 때문에 어떤 대화를 나눴다는 결과 보고서만 A4 용지 두 장 내외로 받기로 했다. 코로나19 시절에 예술가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다과비를 지원하는 정도라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서울문화재단은 내년 6월 서울 대학로에 예술가가 기획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공간 ‘예술청’을 오픈한다. 이번 사업은 이를 앞두고 시도해본 실험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서울문화재단 측은 “이런저런 방식을 도입해보는 중”이라며 “추첨 민주주의라는 개념으로 이해해달라”고 밝혔다.

비판적 시각도 있다. 한 문화정책 연구자는 “정책에서 우선순위와 원칙이 있었다면 추첨이라는 수단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지원자들의 자격이 똑같아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면 똑같이 나눠줬어야 한다. 지원금을 빨리 나눠 줘야 한다는 시급성이 앞서 예술가 지원 대신 복지가 된 사례”라고 지적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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