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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노동 고래 싸움이 자영업자 과잉경쟁 촉발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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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누가 자영업의 위기 불렀나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 대표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 대표

코로나19의 습격으로 자영업이 치명타를 입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이미 궁지에 몰릴 대로 몰린 자영업에 결정타를 날렸을 뿐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지는 말자. 혹여 코로나19에 가려 자영업을 궁지로 몰아넣은 원천적인 이유가 묻혀버려서는 곤란하다. 자영업을 살리는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정확한 이유를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영업을 빈사 상태로 몰고 간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인건비 부담에 기업들 고용 기피 #취업 바늘구멍 되자 자영업 과잉 #최저임금 급등에 빈사 상태 빠져 #노동 경직성 풀어야 악순환 완화

그 이유는 요컨대 진보·보수를 불문한 역대 정부의 자영업 홀대 정책에서 비롯된다. 더 쉬운 말로는 ‘왕따’라고 해도 좋다. 자영업이 어려울 때마다 정치권과 정부에서 자영업을 지원하는 정책들을 봇물 터트리듯 내놓았는데 웬 말인가. 하지만 이런 정책들은 다분히 보여주기식 미봉책에 불과할 뿐, 그 뒤에서는 오히려 자영업을 구조적으로 궁핍하게 한 정책들이 일관되게 추진된 게 현실이다.

자영업 왕따의 연원은 멀리 19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동환경은 열악했다. 특히 임금 노동자의 노동환경이 심각하게 열악했다. 이런 배경에서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계기로 시작된 소위 ‘87년 체제’는 임금 노동자의 노동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분수령이 됐다. 30년이 지난 지금 임금 노동자의 노동환경은 괄목상대하게 개선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임금 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 과정이 비임금 노동자 즉, 자영업자의 사업환경에는 독이 되는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발생했다. 임금 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 과정은 필연적으로 생산요소로서 자본과 노동 중 노동의 사용 비용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높아진 노동비용에 기업은 앞다투어 노동의 사용을 줄이고 대신 자본의 사용을 늘리는 노동 절약적 생산체제 구축으로 대응했다. 노동 절약적 생산은 제조업에서 특히 심하게 나타났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급증하던 제조업 임금 노동자는 ‘87년 체제’가 자리 잡은 90년대 들어 갑자기 감소세로 돌변했다.

경직적 노동시장의 필연적 결과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이후 제조업 고용의 부진은 장기간에 걸쳐 굳어졌다. 그 현상이 얼마나 심했는지 30년이 지난 지금의 제조업 종사자 수가 30년 전 제조업 종사자 수보다 오히려 적을 정도다. 아무리 제조업이 노동의 사용을 줄이는 자본 집약적 발전을 했다 하더라도 그동안 엄청나게 확대된 제조업의 양적 성장을 고려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기업 규모가 클수록 노동 절약적 생산은 더욱 심했다. 종업원 250인 이상 대형 기업에서 일하는 종사자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거의 꼴찌 수준이다. 제조업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임금 노동자는 노동환경 개선을 끊임없이 도모했고 그 과정에서 노동시장은 경직되었으며, 기업은 그것을 명분 삼아 앞다투어 과소 고용과 과잉 노동으로 대응한 결과다.

임금 노동자 시장의 과소 고용은 비임금 노동자 즉, 자영업자의 과잉을 의미한다. 그래서 한국의 자영업 종사자 비중은 선진국이라고 할 만한 나라 중에서는 가장 높다. 내수시장은 좁은데 자영업자는 이렇게 많으니 자영업은 원천적으로 과잉 경쟁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결국 임금 노동자와 기업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각자도생하는 사이 그 유탄을 자영업자가 맞은 것이다. 자영업이 처한 이런 어려움에 역대 어느 정부도 근본적 해결책을 고민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민 물가 안정을 명분으로 자영업자가 생산하는 품목이나 서비스 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반(反)자영업 정책을 펴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자영업은 가랑비에 옷 젖듯 점점 열악한 처지로 전락해 갔다. 유감스럽게도 정규직 임금 노동자의 권익 향상 시기는 자영업자와 잠재적 자영업자로서 비정규직 임금 노동자 수난의 시기가 돼 버렸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의 최저임금 급등은 그 절정의 모습을 보여줬다. 요컨대 자영업은 민주화가 시작된 ‘87년 체제’ 아래서 자영업 과잉 현상이 본격화했고, 수출주도형 성장과 물가안정이라는 정부 정책에 발목 잡혀 경제성장의 과실을 제대로 분배받지 못했으며, 드디어 최저임금 급등에 결정타를 맞으며 빈사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자영업이 살아야 한국경제 살아

이렇게 노동과 자본 간의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자영업 종사 인구가 1000만 명을 넘는다. 자영업자와 무급 가족종사자, 자영업에 고용돼 일하는 임금 노동자를 합한 수치다. 전체 취업자의 40%가 일하고 있는 자영업 부문이 빈사 상태니 한국 경제가 좋을 리 없다.

국내 제조업 취업자수 추이

국내 제조업 취업자수 추이

1300만 정규직 임금 노동자만큼이나 1000만 자영업 관련 종사자도 중요하다. 그러니 이제는 자영업 차례다. 1960년대 이후 80년대까지의 30년이 기업 친화적 환경이었고, 90년대 이후 30년이 임금 노동자 친화적 환경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자영업 친화적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 시작은 자영업의 등을 터트린 노동과 자본 간 고래 싸움을 개혁하는 데서 비롯돼야 한다. 마침 노동개혁과 기업개혁은 한국경제 전체의 미래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인 만큼 일석이조다. 플랫폼 노동자 등 전에 없던 자영업 종사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어 환경적으로도 자영업 정책 변화의 적기이기도 하다.

OECD 국가 대기업 종사자 비중

OECD 국가 대기업 종사자 비중

자영업을 살리기 위한 해법으로서 개혁의 과제는 이해관계가 첨예하다. 자칫 진보와 보수의 진영논리에 의해 양쪽에서 모두 배척당할 수 있다. 하지만 자영업은 진보와 보수 어느 진영에도 속해 있지 않은 그저 왕따의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자영업을 살리는 해법에는 진영논리가 비집고 들어와서는 안 된다.

2020년 지금 자영업은 한국경제 소득 양극화의 진원지이자 낮은 생산성의 발원지다. 한국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자영업의 생산성 향상과 소득 개선 없이는 한국경제는 건강한 선진 경제의 모습을 갖출 수 없다. 자영업이 살아야 한국경제가 살 수 있다. 자영업의 업그레이드 없이는 한국경제의 업그레이드도 없다.

노동 개혁하고 고용행태 바꿔야 일자리 가뭄 해소

노동과 자본의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것이 자영업 수난의 본질이다. 따라서 자영업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려면 고래 싸움에 개입해야 한다. 즉 노동개혁과 기업개혁이 필요하다.

우선 노동개혁은 정규직 임금 노동자의 이해관계에 경도돼 있는 노동시장 제도를 수정해 자영업 관련 종사자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일례로 임금 노동자 일자리 확대에 결함이 있는 경직적인 노동시장 구조나 최저임금 인상 정책 등은 정규직 임금 노동자에게는 유리하지만, 자영업자에게는 불리하다. 경직된 노동시장 구조를 개선하고 생산성에 기반을 둔 임금 결정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제도 도입이 자영업을 위한 노동개혁 방향이다.

기업개혁은 ‘250인 이상 대형 기업 종사자 비중의 OECD 평균 수준 달성’을 목표로 하는 기업정책 개혁이 필요하다. OECD 국가 꼴찌 수준인 이 비중이 OECD 평균 수준만 되어도 대형 기업 일자리가 200만개 이상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자영업 종사자 비중은 크게 낮아져 자영업 과잉현상은 해소될 수 있다. 이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기업정책의 중심축을 보호와 규제에서 지원과 경쟁으로 이동시키는 개혁이 필요하다. 여기에 더해 경직된 노동시장을 명분 삼아 경쟁적으로 과소 고용과 과잉 노동으로 대응해온 기업 고용 행태를 개혁하는 일도 병행돼야 한다.

자영업 해법으로서 노동개혁과 기업개혁 과제는 이해 관계자가 첨예하게 대립해 있어 해법의 실타래를 풀기 어렵다. 이를 푸는 과정은 각 세력이 각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에 상응하는 만큼의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가지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노동계는 정규직 노동자보다 열악한 위치에 있는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하고, 기업은 고용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의식해야 한다. 자영업자 역시 한국경제 저생산성의 진원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정부와 정치권은 정치적 이해관계보다 한국경제의 이익을 앞세우는 국가적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자영업이 살기 위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은 한국의 정치·경제·사회가 질적으로 한 단계 더 성숙해 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 대표. KAIST·삼성경제연구소를 거치며 30년 동안 한국경제를 연구했다. 외환위기, 가계부채 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비상상황이 있을 때마다 위기를 경고하고 대응책을 제시해왔다. 지금은 자영업의 위기를 한국경제의 위기로 보고 이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자영업이 살아야 한국경제가 산다』 등이 있다.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