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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 아이도 덮쳤다, 美서부 최악 산불로 50만명이 대피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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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미국 서부지역 산불이 확산일로다. 캘리포니아·오리건·워싱턴주 등 서부 해안을 중심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수십 건의 산불이 3주째 잡히지 않으면서다.

13일(현지시간) 미 CNN·뉴욕타임스(NYT)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전날 기준 3개 주에서 발생한 산불로 1만9125㎢가 잿더미로 변했다. 남한 면적의 약 19% 규모다. 또 최소 28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실종되는 등 인명 피해도 잇따르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미국 미시건주 디트로이트 호수 선착장이 산불로 인한 연기에 뒤덮여 있다. [AP=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미국 미시건주 디트로이트 호수 선착장이 산불로 인한 연기에 뒤덮여 있다. [AP=연합뉴스]

화마에 1살·13살 어린이도 목숨 잃어

워싱턴주에서는 1살짜리 아이가 부모와 함께 대피했지만, 불길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아이의 부모도 혼수상태다.

오리건주에서는 13살 소년이 차 안에서 애완견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소년의 엄마가 근처에 있던 또 다른 차 안에 갇힌 할머니를 구하러 자리를 비운 사이 변을 당했다. 소년의 할머니도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었고, 엄마는 큰 화상을 입었다.

오리건주에서만 50만 명이 대피 위기에 놓였다. 주 정부는 현재까지 4만 명에 강제 대피 명령을 내렸다. 실종자도 수십 명에 이른다. 한밤중 긴급하게 대피 길에 올랐다는 로리 존슨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말 그대로 자다 말고 맨발에 잠옷 바람으로 뛰어나왔다"며 급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케이트 브라운 오리건 주지사는 실종자와 사망자 수가 더 늘어날 것이라며 "대량 사망 사고"를 대비하라고 명령했다.

미국 오리건주에서 발생한 산불이 마을 도로까지 덮쳤다. 대피길에 오른 마을 주민이 촬영해 SNS에 올린 영상 캡처.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오리건주에서 발생한 산불이 마을 도로까지 덮쳤다. 대피길에 오른 마을 주민이 촬영해 SNS에 올린 영상 캡처. [로이터=연합뉴스]

인근 캘리포니아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8월 중순 낙뢰로 시작된 산불이 3주째 꺾이지 않으며 28건의 대형 산불로 번졌고 이날까지 최소 19명이 숨졌다.

NYT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의 기록적인 산불 6건 중 1·3·4위에 오른 산불 3건이 지난 3주 사이 한꺼번에 발생했다. 주말 사이 습도가 오르고, 바람이 잔잔해지며 불길이 잠잠해졌지만, 산불로 인한 연기가 대기를 뒤덮어 최악의 대기질을 기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까지 겹치며 호흡기 질환이 급증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극단주의자 소행" SNS에선 가짜뉴스 확산 

주 정부와 소방당국이 산불과 사투를 벌이는 가운데 소셜 미디어(SNS)에서는 온갖 음모론이 돌아다녀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지난 10일부터 SNS에는 극좌성향 운동단체인 '안티파', 또는 극우성향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프라우드 보이즈'가 오리건주에 불을 지르고 다닌다는 게시글이 확산하고 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11일 성명을 내고 "극단주의자들이 오리건에서 산불을 일으키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가짜뉴스 진압에 나섰다. 페이스북도 산불과 관련한 허위 정보 삭제 조치에 들어갔다.

미국 오리건주의 한 농가 주인이 사유지까지 날아온 불씨를 끄기 위해 직접 물을 길러오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오리건주의 한 농가 주인이 사유지까지 날아온 불씨를 끄기 위해 직접 물을 길러오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대피 명령을 무시한 채 방화범을 잡겠다며 마을 입구에서 진입 차량을 직접 검문하고 있다.

이미 폐허가 된 지역에서는 빈집털이·약탈 범죄 우려도 커지고 있다. 대피 길에 올랐던 집 주인들은 약탈이 걱정돼 화재 구역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이에 오리건 클락카마스 카운티 교외 보안관은 "경찰이 검문과 경비를 강화하고 있다"면서 "안전을 위해 어떤 경우에도 화재 구역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트럼프 "관리 소홀 탓" vs 주 정부 "기후변화 탓"

대선을 두달 앞둔 미 정치권은 산불 원인을 둘러싼 갈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 산불 발생의 책임자로 서부 3개 주 민주당 소속 주지사들을 지목하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지사들이 관리를 소홀히 한 탓에 최근 몇 년간 산불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고 비난했다.

이에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서부 산불의 원인은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비난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미국 오리건주 탤런트 및 인근 마을 주택 수백 채가 대형 산불로 모두 전소됐다. [AFP=연합뉴스]

미국 오리건주 탤런트 및 인근 마을 주택 수백 채가 대형 산불로 모두 전소됐다. [AFP=연합뉴스]

뉴섬 주지사는 "더 이상 기후변화가 산불의 원인이냐 아니냐는 논쟁을 하고 싶지 않다"면서 "기록적인 더위와 지속된 강풍이 이번 산불을 일으킨 '퍼펙트 스톰'"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올해 캘리포니아는 2016년 이후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또 장기간 이어진 가뭄으로 나무들이 메마른 탓에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했다. 기후 전문가들도 지구 온난화가 대형 산불을 일으켰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14일 산불 현장 방문…늑장 대응 비판도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4일 캘리포니아 산불 현장을 방문할 예정이다. 주 소방당국의 화재 진압 기지인 새크라멘토 카운티의 맥클레랜 공원을 찾아 피해 상황을 보고받을 예정이라고 백악관은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산불 현장을 방문할 예정이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산불 현장을 방문할 예정이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주간 산불 피해 확산에 침묵했다. 이에 워싱턴포스트(WP) 등 언론의 비판이 나오자 지난 11일에야 트위터에서 산불을 언급했다. 캘리포니아·오리건·워싱턴에 재난을 선포했다면서 "산불 현장에서 화마와 싸우고 있는 2만8000명 이상의 소방관에게 감사하다"고 적었다. 그러나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비판 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늑장 대응'에 나섰다고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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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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