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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엄마 등에 점 3개 있는 걸 50년만에 처음 알았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39)

장편소설 한편씩 쓸 때마다 체중이 많이 는다. 어떤 작가는 살도 빠지고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데, 저마다 체질 차이도 있겠지만 비만을 달고 사는 나는 매번 속이 상한다. 얼마 전부터 운동을 1순위에 두고 있다. 그 후 무엇보다 몸 이곳저곳 통증이 사라졌다. 며칠 전 거울 앞에서 내 등을 보려는데 도무지 잘 보이지 않았다. 몸을 강제로 비틀고 뒷모습을 보았다. 낯설었다. 살면서 내 뒷모습을 내가 본다는 건 참 어렵다. ‘분명 내 몸인데도 내가 몰랐던 부분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래전 아주 장시간 엄마와 떨어져 살았다. 내 글을 오래 읽은 분은 다 아실 것이다. 30년간 병석에 계셨던 아버지 대신 엄마가 먼 곳까지 다니며 일을 하셨다. 그러다 보니 막내였던 나는 거의 방치된 채 성장했다. 아니다. 방치된 것이 아니라 더 무거운 책임도 지고 있었다. 이 없으면 잇몸이라 했던가. 그 당시 여덟 살의 나는 아버지 병간호와 아궁이에 불을 때 밥하고 살림까지 해야 했다. 보건소 다니며 약과 주사 타오고 집기류 소독하는 일까지 내 몫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인생은 풍랑에 휩쓸린 난파선처럼 떠다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느 날 문득 거울 앞에 선 나는 오십을 넘어 있었고 그 당시 꽃 같던 나의 엄마는 팔순을 넘어 계셨다.

나의 엄마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나의 엄마가 어떨 때 많이 웃으시는지, 나의 엄마에게선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아는 게 너무 없다는 걸 알았을 때는 참 서글펐다. [사진 pikist]

나의 엄마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나의 엄마가 어떨 때 많이 웃으시는지, 나의 엄마에게선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아는 게 너무 없다는 걸 알았을 때는 참 서글펐다. [사진 pikist]

지난번에 문득 옛 시절이 떠올라 계산을 해봤다. 태어나 젖 먹었던 시절을 제하고 나니 내가 기억하는 엄마와의 시간은 평생을 합쳐도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누구보다 살가워야 할 모녀지간이건만 추억이 너무 없었다. 나의 엄마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나의 엄마가 어떨 때 많이 웃으시는지, 나의 엄마에게선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아는 게 너무 없다는 걸 알았을 때는 참 서글펐다. 돌아보면 내게 엄마의 빈자리는 너무도 컸다. 어린 나에게 환자를 맡겨놓고 타지로 가서 일해야 했을 엄마의 심정은 또 말해 무엇하랴.

그랬던 엄마가 연로해져 최근에는 척추 수술이 잦다. 그러다 보니 딸인 내 집에 쉬었다 가는 일도 잦아졌다. 오래전 사무치게 보고 싶고 그리웠던 엄마였건만, 막상 50여년이 지나 내 집에 오는 엄마는 반가우면서도 참 낯설다. 마음은 한없이 좋은데 엄마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게 나를 쓸쓸하게 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드려야 할 지 속으로 난감했다. 어색함을 지우려 일부러 말 시키고 대화하다 보면 고생하고 살아온 하소연이 전부였다. 가족이건만 각자가 살아온 사연을 뒤늦게 듣는 셈이다.

하루는 허리를 수술한 엄마에게 옷을 갈아입혀 드리다 엄마 등에서 낯선 뭔가를 보았다. 딸의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자세히 보게 된 엄마의 등. 핏덩이인 나를 낳고 업어주셨을 저 등.

“아, 이 모습이 나의 엄마 등이었구나. 내 엄마는 등에 점이 세 개 있구나.” 나도 모르게 엄마의 등에 난 점을 유심히 보았다. 평생 엄마와 목욕탕 한번 가보지 못했으니 낯선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나는 그날 또 한 번 엄마에 대해 정말 아는 것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 가족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그 당시 워낙 먹고살기 힘들었지 않았는가. 더구나 소읍에 일할 곳이 마땅치 않았던 시대다 보니 모두가 대처로 떠나야 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기 위해, 가장 사랑하는 사람 곁을 떠나야 하는 모순적인 삶. 그때는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스마트폰이 가족 간에 마주 앉아서도 높다란 벽이 되고 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 때문일까? 내 몸과 같은 가족이 내 등처럼, 가장 안 보일 때가 있다. 함께 살아도 배우자 속을 모르고, 자식 마음을 알기 쉽지 않다.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뒤에 있는 나의 등처럼 모르는 것 투성이다. 어떤 때는 내 이웃이나 지인보다 모르는 대상이 가족일 때도 있다. 잘 모르거나 이해 안 된다고 가족이 아닌 것은 아닐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그 자체까지도 남편과 아내의 모습이거나 자식의 모습이리라. 어쩌면 그때 비로소 필요한 게 사랑이 아닐까 싶다. 상대를 잘 알 때는 사랑이 없어도 이해가 있어 유지된다. 이해가 안 되거나 오해가 앞설 때, 조건 없는 믿음과 사랑이 필요한 사이가 가족이다.

우리에겐 평생 완결판 가족은 없다. 끝없이 부모나 남편, 아내, 자식을 알아가고 이해하려 애쓰다 인생을 마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이라는 삶은 나이 많고 적음을 떠나 너나없이 모두가 처음이다. 각자가 예측할 수 없는 난해한 하루하루를 견디고 건너가고 그렇게 살아낸다.

우리는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많은 책을 접한다. 그러나 정작 읽어야할 책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가족이라는 책은 참 두껍고 읽기 힘든 책이다. 시간은 무척 짧다. [사진 pxhere]

우리는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많은 책을 접한다. 그러나 정작 읽어야할 책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가족이라는 책은 참 두껍고 읽기 힘든 책이다. 시간은 무척 짧다. [사진 pxhere]

“가족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사랑할 수는 있다.” “사랑은 했지만 이해하지는 못했다.” 어느 영화에 나오는 대사다.

나도, 당신도, 멀거나 가까운 곳에 가족이 있다. 내가 그에 대해 그가 나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가족이다. 인생을 ‘아는 것’과 인생을 ‘살아내는 것’은 다르다고 하지 않던가. 때로는 부모나 남편과 자식에 대해 몰라도, 우리는 서로의 곁에서 오늘을 살아내고 있지 않은가. 서로를 용서 못 하고 사랑을 망설이는 동안에도 시간은 대출금처럼 뭉텅뭉텅 빠져나간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리를 끌고 생의 끝으로 가는 것이 시간이다.

우리는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많은 책을 접한다. 그러나 정작 읽어야 할 책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가족이라는 책은 참 두껍고 읽기 힘든 책이다. 시간은 무척 짧다. 심호흡 해보자. 이렇게 몰랐다니…. 내 딸을, 내 남편을, 내 아내를 이렇게 몰랐다고 실망할 필요 없다.

인생은 등불과 같다. 누군가 나를 기억할 때 환하게 불이 들어온다. 그때야 존재 의미를 갖는다. 지금부터라도 알아가자. 가족이라고 다 알 순 없다. 모르고 살았던 게 우리의 잘못만은 아니다. 어쩌겠는가. 별로 아는 것은 없어도 내 가족인 것을. 며칠 후면 또 내가 여러 번 읽어야 할 80년 된 두꺼운 책 한권이 내 집에 온다. 그 책, 바로 나의 엄마다.

시인·소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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