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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한국은 일류 선진국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강정영의 이웃집 부자이야기(60)

아름다운 나라로 손꼽히는 스위스 제네바에는 세계무역기구(WTO) 건물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중 하나로 꼽히는데 회의장에서는 불꽃 튀는 경제 전쟁이 펼쳐진다. [사진 pikist]

아름다운 나라로 손꼽히는 스위스 제네바에는 세계무역기구(WTO) 건물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중 하나로 꼽히는데 회의장에서는 불꽃 튀는 경제 전쟁이 펼쳐진다. [사진 pikist]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스위스. 그중에서도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제네바의 레만 호반에 세계 무역질서를 규율하고, 분쟁을 해결하는 세계무역기구(WTO)가 자리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중 하나다. 그러나 건물 속 회의장은 딴판이다. 붉은 카펫이 깔린 멋진 회의장이지만 그곳은 각국 대표가 날밤을 새우면서 짜낸 전략을 가지고 피가 마르게 협상을 하는 장소다. 경제 전쟁터라 불러도 과하지 않다.

바로 그곳에서 1993년 말 15년간의 긴 협상 끝에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꾼 우루과이라운드(UR)가 탄생했다. 막바지 협상이 벌어지던 어느 날, WTO 건물 로비에서 유혈 사건이 발생한다. 쌀 시장 개방에 극렬하게 반대하던 한국 농민대표가 할복자살을 기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쌀 시장 개방을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제 협상은 국익이 걸린, 한 치 양보 없는 냉혹한 전쟁이다.

네덜란드의 덴 하그(Den Haag, 헤이그). 국제회의가 자주 열리는 도시다. 1907년 7월 만국평화회의가 열리고 있는 그곳 비넨호프(Binnenhof). 좀 어색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한 조선인이 긴장된 얼굴로 회의장에 들어가려다가 제지당한다.

“어디서 온 사람이오?”
“난 조선 사람 이준이외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소? 일본국에 조선이라는 땅이 있다는 소식은 들었소만.”
“이보시오, 무식한 사람! 조선은 엄연히 독립국이고 일본과는 다른 나라요. 내가 그 전후 사정을 열강의 대표들에게 자세히 설명하러 왔소.”

그러나 일제는 이미 영·불·독 등 당시 열강을 설득, 일제의 한반도 침탈을 항의하러 온 이준 열사 일행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었다. 조국을 빼앗기고 그 부당함조차 제대로 알릴 수 없었던 그는 분을 못 이겨 머나먼 이국땅에서 자결로 순국한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청일, 러일 전쟁. 주변 강국들이 남의 땅에서 벌인 전쟁이다. 2차 대전 이후 한국의 독립은 1945년 미·영·중 수뇌가 카이로에 모여 처음 논의되었다. 38선 남북 분단은 미·소의 결정이었다. 과거 한반도는 주변 강국들이 맘대로 국경선을 긋고 운명을 결정했다. 땅 주인은 아무런 힘이 없었다.

지금은 다를까. 사드 배치를 두고 미·중이 대립하고 있다. 독도와 과거사 문제로 일본과 다투고 있다. 만약 한반도에 또다시 살벌한 국제분쟁이 일어난다면 어떨까. 과거와 달리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힘센 두 사람은 미국의 트럼프와 중국의 시진핑 주석일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주가가 높은 기업은 미국의 애플, 테슬라, 아마존 등이다. 이들이 세계적 혁신기업이고, 미래의 기술과 테크닉을 선도해 나갈 기업이다. 세계의 정치 와 경제는 이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아니면 낙오되고 소외되니까.

삼성은 매출의 약 80%가 해외에서 일어나고 다른 일류기업도 해외 비중이 국내보다 높다. [중앙포토]

삼성은 매출의 약 80%가 해외에서 일어나고 다른 일류기업도 해외 비중이 국내보다 높다. [중앙포토]

한국의 일류 기업은 삼성, 현대, LG, SK 등이다. 삼성은 매출의 약 80%가 해외에서 일어나고 다른 일류기업도 해외 비중이 국내보다 높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세계를 모르고 국제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국가도, 국민도, 기업도 뒤처진다. 일류국가의 반열에 들어갈 수 없다.

한국, 자신 있게 일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정치외교와 경제면에서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은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과 지도층 사람의 국제사회나 경제에 대한 이해도는 매우 낮다. 안타까운 일이다.

국제관계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 큰 울타리다.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우리는 그틀 속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국제관계에 휴머니즘은 없다. 오로지 힘이 결정한다. 한국의 국제관계 최고 전문가는 UN 사무총장을 지낸 반기문 씨일 것이다. 누구나 반 총장과 같은 국제감각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나 지도층 인사는 물론, 일반 국민도 어느 정도 기본적인 국제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게 부족하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세계와 호흡하지 못한다.

요새 방송을 보면 온통 구성진 트로트 열풍이다. 그 비중이 지나치게 많다. 그뿐만 아니라 출연자의 시시콜콜한 일상과 신세타령이 주를 이룬다. 방송이 가지는 엄청난 영향력을 고려할 때 국민 정서를 나약한 신파조 모드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나약한 민족은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

유사시 세계지도는 강대국 몇 나라가 그린다. 그것이 역사이고 현실이다. 세계 1, 2, 3위 군사 강국과 일본에 둘러싸인 한국. 남북문제를 당사자인 남북이 독자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강국들이 국제질서를 이유로 제재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강국이 되고 싶은가. 국민 개개인의 국제화 마인드가 절대적인 요소다. 우리는 그게 너무 부족하다. 국민교육 제대로 해야 한다. 언론 방송을 통해 국제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도 많아져야 한다. 국제 분쟁, 국제무역, 다른 인종에 대한 이해도를 넓혀야 세계 무대에서 힘 있고 야심 찬 민족으로 거듭날 수 있다. 언제까지 민족의 운명을 다른 나라에 맡길 것인가. 한두 명의 독립투사나 의사 열사가 나라를 구할 수는 없다. 국민 전체가 강국의 자질을 함양하고 강해져야만 강국이 될 수 있다.

청강투자자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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