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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롱한 자개, 빛나는 옻칠…눈부신 우리 문화의 정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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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3호 19면

나전칠기 전시회 2제

이형만 장인의 ‘석류무늬타원형 테이블’(2017), 홍송·옻칠·자개, 1375x780x365㎜. [사진 통영옻칠미술관]

이형만 장인의 ‘석류무늬타원형 테이블’(2017), 홍송·옻칠·자개, 1375x780x365㎜. [사진 통영옻칠미술관]

나무토막과 조개껍데기와 나무 진액이 장인의 손길을 거쳐 최상의 예술품으로 탄생한다. 목공과 자개와 옻칠로 궁극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기물, 나전칠기(螺鈿漆器) 이야기다. 이 나전칠기를 만드는 장인 중 최고의 숙수 9명의 작품 30여 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경남 통영옻칠미술관(관장 김성수)에서 열리고 있는 ‘천년을 잇는 옻칠과 나전 작품전’(7월 15일~10월 15일)이다.

전통장인·회화작가 9인전 #세계가 극찬한 장인들 한자리에 #“기술적 완성도 높고 아름다워” #옻칠회화 선구자 김성수전 #광택 좋아 액자에 유리 필요 없어 #“전통기법에 현대 회화 방식 가미”

파리만국박람회 2위한 김봉룡 선생 작품

김봉룡 장인의 ‘무궁화당초문 서류함’, 266x363x95㎜. [사진 통영옻칠미술관]

김봉룡 장인의 ‘무궁화당초문 서류함’, 266x363x95㎜. [사진 통영옻칠미술관]

1967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제10호 나전장에 처음 지정됐던 김봉룡(1902~1994) 선생은 고려 시대부터 내려오던 나전칠기의 명맥을 이은 분이다. 192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장식공예만국박람회에 나전칠기 대형 화병을 출품해 은상을 받았을 정도로 세계가 극찬한 장인이다. 전시를 기획한 김성수 관장은 선생의 제자다. “실톱으로 조개껍데기를 둥글게 자르는 주름질 기법이 탁월한 분입니다. 우리가 선을 그을 때 보통 연필을 쓰는데 스승님은 붓을 사용하셨죠. 일제 강점기 시절인데도 당초무늬에 꽃을 새겨넣을 때 꼭 무궁화를 집어넣으셨고요. 나전칠기계의 손기정 같은 분이셨달까. 스승님의 그런 기개가 세상에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아 안타까웠어요.”

역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제10호 나전장이었던 송방웅 선생은 이번 전시가 유작전이 됐다. 전시를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0세. 전복 껍데기를 직선으로 잘라내는 끊음질 기법의 대가로, 이탈리아의 디자인 거장 알레산드로 멘디니와 협업해 조명브랜드 라문의 17개 한정판 에디션 ‘아물레또 펄(AMULETO PEARL)’을 선보이기도 했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나전장으로 이탈리아 밀라노 트리엔날레와 영국 런던 아시아하우스에 다녀온 이형만 장인은 흑칠과 주칠의 조화 속에 자개의 영롱함이 살아있는 무궁화당초무늬 호족반과 석류무늬타원형 테이블을 내놨다.

정수화 장인 의 ‘탈태나전 달항아리’(2017), 삼베·옻칠·자개, 540x540㎜. [사진 통영옻칠미술관]

정수화 장인 의 ‘탈태나전 달항아리’(2017), 삼베·옻칠·자개, 540x540㎜. [사진 통영옻칠미술관]

옻칠 장인들의 대표작도 놓칠 수 없다. 옻칠은 광택의 고급스러운 아름다움과 빼어난 방부·방충·방수 효과 덕분에 반영구적 보존성이라는 장점을 가졌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제113호 칠장인 정수화 장인의 탈태나전 달항아리, 고려나전 염주함, 고려나전함은 촘촘한 자개의 아름다움이 옻칠의 광택 속에 빛난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제13호 옻칠(정제)장 박강용 장인의 주칠 남원반&7합 소형발우는 정갈한 붓질이 돋보이고, 서울시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제1호 옻칠장 손대현 장인의 팔각 모란당초 흑칠기와 팔각 국화 끊음 흑칠 과기는 현란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최종관 장인의 ‘대나무잎 대반’(2019), 옻칠· 삼베·한지·토분·금분·채화, 900x900x100㎜. [사진 통영옻칠미술관]

최종관 장인의 ‘대나무잎 대반’(2019), 옻칠· 삼베·한지·토분·금분·채화, 900x900x100㎜. [사진 통영옻칠미술관]

서울시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제14호 나전장 정명채 장인이 장생 만자 회포문 함으로 전통기법에 충실함을 보여주었다면 국가중요무형문화재 나전칠기장 제10호 고 김태희 선생의 채화칠 기능전승자인 최종관 장인은 대나무잎 대반과 빙렬문 대반을 통해 현대적 감각의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뽐낸다.

미술평론가 신항섭은 이번 전시에 대해 “고려시대 옻칠나전 장인들의 혼이 현현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술적 완성도가 높고 아름답다”며 “옻칠나전과 옻칠화 그리고 옻칠회화가 발현하는 예술적 아우라를 직접 확인해보라”고 말한다.

김 관장은 “한때 자개장 바람이 불었지만 정식 옻칠이 아닌 값싼 화학칠인 캐슈(Cashew)를 사용하는 바람에 옻칠나전에 대해 싸구려 이미지만 갖게 된 것을 바꿔보려 최고의 작품만 모아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며 “전통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드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국립대학에서 명맥을 잇게 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고 안타까워했다.

“래커 대신 옻칠이라는 이름 알릴 터”

김성수 관장의 ‘우주공간 space’(2018),1112x162㎜. [사진 통영옻칠미술관]

김성수 관장의 ‘우주공간 space’(2018),1112x162㎜. [사진 통영옻칠미술관]

옻칠회화의 선구자인 김성수 관장은 미술관 전시에 이어 서울에서도 개인전을 시작했다.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에서 시작된 ‘김성수 옻칠회화전-한국현대옻칠회화 선구자’(9일~15일)다.

홍익대와 숙명여대에서 교수를 지냈고 국전 공예부 추천작가·초대작가·심사위원을 역임한 김 관장은 90년 한국옻칠예가회를 만들고 현대 옻칠회화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왔다. 전통 옻칠나전의 방식을 사용하되 현대적 미감을 적용해 추상적 이미지를 구현하는 작업이다. 광택이 좋아 액자에 유리도 필요 없다. 나무로 짠 캔버스에 삼베를 바르고 옻칠하기를 반복하는 지난한 노력이 빚어낸 결실은 2002년~2003년 한국인 미국이민 100주년 기념 미국 순회전을 통해 해외에서 먼저 이름을 알렸다.

김 관장은 “옻칠과 나전의 물성과 제작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않고 작품을 하는 것은 전통을 잇는 자세가 아니다”라며 “전통 기법에 뿌리를 두고 현대적 방식을 가미해야 진정한 옻칠 회화”라고 강조했다. 그는 “영어로는 래커(Lacquer)로 표시되는 경우가 많지만 제 작품을 통해 옻칠(Ottchil)이라는 표기를 널리 알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정형모 전문기자/중앙 컬처앤라이프스타일랩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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