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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플레잉 게임하듯 ‘인생 시뮬레이션’ 통해 위로받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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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3호 25면

[미래 Big Questions] 게임의 미래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킨 국내 개발 게임들.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킨 국내 개발 게임들.

정말 엄지를 아래로 내렸던 걸까? 칼로 베고, 창으로 찌르고, 그물을 던지고. 불과 몇 시간 전 함께 아침밥을 먹으며 시시콜콜한 농담을 나누던 그들은 이제 서로의 사냥꾼이 되었다. 금발의 게르만 거인과 북아프리카 출신 흑인. 페르시아군인 포로와 켈트족 노예. 검투사(gladiator)의 운명이야 어차피 그런 거 아니겠는가? 얼마 전까지 로마제국 최고의 수퍼스타였던 챔피언은 이제 피로 시뻘겋게 물든 모래 위에 쓰러졌다. 패자는 자비를 빌지만, 승자의 칼은 이미 그의 목을 겨눈다. 선택권은 관중에게 있다. 사느냐 죽느냐, 죽음이냐 삶이냐. Dolce vita, 그러니까 삶의 달콤함은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 방금 막 구운 빵의 향기,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연인의 거짓말, 그리고 목구멍을 스쳐 가는 순간 인생의 모든 괴로움을 잊게 해주는 포도주. 패배한 검투사는 잠시 후면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도 달콤한 숨 한 모금을 한번 다시 삼켜볼 수 있을지 말이다.

국회의원·과학자·요리사 등 역할 #누구나 주인공이 돼 대리만족 #온라인 게임은 이미 세계서 돌풍 #놀이는 본능,석기시대 때도 존재 #간접 경험 통해 위험 미리 대비 #자신만을 위한 다양한 삶 가능

5000년 전 고대 수메르인들도 보드게임

우르의 게임(기원전 2600~2400년).

우르의 게임(기원전 2600~2400년).

아래로 내린 엄지는 죽음, 위로 척 든 엄지는 자비와 삶을 의미한다고 프랑스 화가 장 레옹 제롬은 추측했지만, 사실 역사적으로 확실하지는 않다. 반대로 아래로 내린 엄지 또는 주먹 안에 숨긴 엄지가 자비를 의미한다는 가설도 있고, 패배자의 생존을 의미하는 특정 신호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역사학자들도 있다. 사실 엄지가 어디를 향했는지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2000년 전 로마제국에서 중산층 가장과 젊은이가 인간이 인간을 살육하는 장면을 보기 위해 줄을 서고, 자신의 엄지가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을 좌우한다는 사실에 흥분했다는 점이다. 마치 오늘날 축구장같이 로마제국 도시에는 하나씩 있었던 원형 경기장. 죽음 앞에서 공포로 가득한 타인의 얼굴이야말로 가장 흥미롭고 즐거운 엔터테인먼트였다.

우리의 관심과 시간을 언제나 독차지하려는 게임과 놀이. 현대인만이 아니다. 5000년 전 고대 수메르인들은 옹기종기 모여 ‘우르의 보드게임’을  즐겼고 석기시대 원시인들 역시 그들만의 놀이와 게임에 푹 빠져 있었을 것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진정한 블루오션이자 미래 새로운 먹거리라고 우리야 호들갑 떨지만, 사실 놀이와 게임은 오랜 시간 동안 직접적인 생존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제 궁금해진다. 한 번이라도 더 사냥을 나갈 수 있었을 시간에 인간은 왜 게임과 놀이를 즐겼던 걸까? 인류는 왜 “쓸모없는” 놀이에 시간을 낭비하는 걸까?

네덜란드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인류의 문명 그 자체가 자유롭고,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놀이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아무리 인류가 ‘생각’에만 집착하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즐거움과 놀이를 더 선호하는 ‘호모 루덴스’라고 가설하더라도, 여전히 질문의 핵심은  남아있다. 인간은 왜 노는 걸까? 러시아 발달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는 주어진 여유 시간과는 상관없이 이 세상 대부분 아이는 어른보다 더 많은 시간을 놀이에 투자한다고 가설했다. 특히 경험과 교육 없이도 아이는 스스로 놀이를 선택한다. 그렇다면 놀이는 인간의 타고난 본능 중 하나이지 않을까?

장 레옹 제롬(1824~1904),‘ Pollice Verso’(아래로 내린 엄지, 1872). [피닉스 미술관]

장 레옹 제롬(1824~1904),‘ Pollice Verso’(아래로 내린 엄지, 1872). [피닉스 미술관]

어두움과 파충류를 두려워하는 본능, 이성에게 관심을 보이는 본능, 썩은 음식보다 달고 신선한 음식을 더 선호하는 본능. 대부분 본능에는 생리학적 또는 진화적 기능이 있다. 그럼 놀이의 진화적 기능은 과연 무엇일까? 비고츠키는 “시뮬레이션”이라고 주장한다. 세상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더구나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고 생존해야 할지 태어나기 전 알 수 없다. 눈을 뜨면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에 떨어졌을 뿐이다.

다른 포유류들의 뇌와 비슷하게 인간의 뇌 역시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태어난 뇌는 결정적 시기 동안의 경험을 통해 완성된다. 여기서 자주 사용된 뉴런 간의 연결고리는 강화되지만, 사용되지 않는 신경세포 간의 연결성은 사라지거나 약해진다. 어린 시절 뇌는 마치 젖은 찰흙 같은 유연성을 가지고 있기에 경험을 통해 노출된 환경에 최적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하나 생긴다. 결정적 시기에 모든 걸 경험해보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다양하고 위험하다. 하지만 만약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상황과 경우를 놀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미리 경험한다면? “내가 만약 공주를 구해야 하는 왕자라면?”, “내가 만약 남극을 탐험한다면?” 마치 파일럿이 비행 시뮬레이션을 통해 실제 상황에 대비하듯, 인간은 놀이라는 ‘롤플레잉’, 그러니까 ‘역할 수행’ 게임을 통해 자신의 인생이라는 ‘극한 게임’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놀이 통해 자기 인생이라는 ‘극한 게임’ 준비

레프 비고츠키(1896~1934).

레프 비고츠키(1896~1934).

만약 놀이의 핵심이 “인생 시뮬레이션”이라면, 우리가 지금 사는 이 세상 그 자체는 어쩌면 MMORPG, 그러니까 ‘대규모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이지 않을까? 누구는 국회의원, 누구는 과학자, 누구는 코미디언, 그리고 다른 누구는 유명 요리사 역할을 하는 그런 게임 말이다. 모두 같은 세상에서 태어나 출세, 돈, 사랑, 행복이라는 게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발버둥 치기에, 나는 다른 이들의 경쟁자이며, 타인은 내 성공의 걸림돌이다. 내가 성공하기 위해선 다른 누군가가 실패해야 하고, 다른 이가 이기기 위해선, 내가 패자가 돼야 한다. 더구나 세상이라는 게임에서는 ‘UNDO’가 불가능하고 ‘SAVE & EXIT’ 버튼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세상이라는 잔인한 게임에서 검투사이다.

모두가 같은 게임을 해야 하기에 승자보다 언제나 패자가 더 많을 수밖에 없는 인생. 그런데 최근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온라인 세상에선 언제나 내가 주인공인 새로운 형태의 롤플레잉 게임이 가능해졌으니 말이다. 국내 기업들이 개발한 MMORPG 게임들이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오늘날. 어쩌면 그들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놀이를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인생 시뮬레이션’이다. 하지만 이제 모두가 같은 세계에서 경쟁할 필요는 없다. 나를 위한, 언제나 내가 중심이자 주인공인 세상. 현실에선 다음 달 월급을 눈 빠지게 기다리는 신입사원이지만, 나만의 세상에서는 영웅이자 신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앞으로 더 발전할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지금까지 내 세계관 안에서만 존재하던 NPC(Non-Player Character, 인간이 아닌 비플레이어 캐릭터)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문자와 e메일을 보내고, 유튜브 영상과 생일선물을 추천하는, 현실과 게임의 세상이 서로 연속되는 하이브리드 인생 시뮬레이션을 상상해볼 수도 있다.

놀이와 게임이 인류 문명을 가능하게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고도로 발달한 문명은 더는 모두가 공생하는 ‘공공 세상’이 아닌, 한 명의 소비자를 위한 ‘개인 세상’을 가능하게 한다. 대량 생산이 아닌 개인화한 소비, 매스 미디어가 아닌 개인 미디어, 그리고 하나의 세상 시뮬레이션이 아닌 각자가 개인의 우주를 은신처로 삼는 세상에서 우리는 앞으로 살게 될지도 모른다. 현실은 잔인하고 나에게 무심하지만, 미래 인류는 어쩌면 자신만을 위한 ‘세상 시뮬레이션’을 통해 위로와 위안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자 daeshik@kaist.ac.kr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각각 박사후 과정과 연구원을 거쳤다. 미국 미네소타대 조교수,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냈다. 2013~2015년 중앙SUNDAY에 ‘김대식의 Big Questions’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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