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본부(질본)가 오늘부터 질병관리청(질병청)으로 승격된다. 보건복지부 소속기관에서 벗어나 독립된 차관급 중앙행정기관으로 새롭게 출발한다. 코로나19가 일상이 된 ‘위드 코로나 시대’에 질병청이 출범하는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코로나19로 300명이 넘는 국민이 희생된 상황이니 비장감이 들만도 하다. 정은경 초대 질병청장은 “코로나19를 빨리 극복하고 앞으로 닥칠 신종 전염병에 대한 위기 대응도 철저히 하라는 국민의 뜻”이라고 의미를 새겼다.
차관급 중앙행정기관으로 오늘 새 출발 #코로나19 극복, 신종 전염병 대비해야 #방역이 최우선…소신껏 목소리 내기를
사실 질병청이 탄생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사스(SARS)가 터지자 2004년 국립보건원의 감염병 관련 조직을 떼어내 질본을 신설했다. 2015년 메르스(MERS) 사태를 겪으면서 질본이 차관급으로 격상됐지만 질본 시절 감염병 대응은 구조적 한계가 많았다. 인사와 예산권은 복지부가 갖고 있었고, 정책 결정의 독자성도 없었다. 코로나19 사태를 당하자 예방과 모니터링 단계부터 검사·치료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감염병 컨트롤타워가 절실하게 필요해졌고 결국 질병청이 탄생했다.
질병청은 청장과 차장을 포함해 5국·3관·41과 외에도 국립보건연구원과 5대 권역 질병대응센터 등 소속기관으로 구성된다. 정원은 기존 907명에서 1476명으로 42%(569명)나 늘었다. 코로나19 와중에 위상이 높아지고 몸집이 불어났지만, 질병청 공무원들은 승진 자리와 ‘밥그릇’이 커진 것으로 착각하면 곤란하다. 커진 몸집만큼 책임감과 사명감이 더 막중해졌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인식해야 한다.
실제로 조직이 비대해진 만큼 앞에 놓인 과제도 많다. 무엇보다 방역의 독립성이 생명이다. 정은경 청장은 직을 걸고 독립성을 지켜내야 한다. 청와대와 여당은 물론 복지부 관료집단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신설된 복지부 보건담당 2차관과는 협력하되 적정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방역과 경제는 사실상 제로섬(Zero-sum) 관계다. 경제를 앞세우면 방역이 느슨해지고 확진자가 늘어나 결국 경제 회복이 더 느려진다. 방역을 우선해야 단기간 고통스러워도 국민 건강을 챙기고 결국 경제도 살아날 수 있다.
정치권은 아무래도 방역보다 경제를 앞세우려는 유혹을 받기 쉽다. 하지만 질병청은 그런 유혹과 외압을 과감히 떨쳐야 한다. 내년 4월 재보선을 앞둔 만큼 ‘정치 방역’ 논란을 피해야 한다. 광화문 태극기 부대 집회를 비판한다면 민주노총 등의 집회에도 이중잣대 없이 공정하게 쓴소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질병청을 신뢰할 것이다.
전문성과 역량도 한층 강화하기 바란다. 내부의 전문성과 역량을 키우면서 외부 전문가들과 소통하고 다른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방역은 과학이다. 질병청의 관료화, 집단이기주의와 독선도 경계해야 한다. 코로나19는 지구촌 200개 이상 국가에서 발생했지만, 방역 당국의 역량에 따라 감염자와 사망자 수는 천차만별이다. 인구 100만명당 감염자, 즉 발생률을 보면 일본은 591명으로 한국(428명)보다 많지만, 대만(21명)은 한국보다 적다.
정부는 ‘K 방역’을 자화자찬해왔지만, 그동안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대구 신천지 교회 발 1차 대유행 사태 때 중환자 병실을 확보하지 못해 허둥댔고, 5월 연휴와 7~8월 휴가철에는 방역이 느슨해져 2차 대유행을 초래했다. 선제적 방역이 아니라 집단감염이 발생한 이후 뒷수습하는 뒷북 방역도 계속됐다. 개인정보를 충실히 보호하면서 방역 사각지대를 미리 찾아내고 공격적 사전 검사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정부는 수도권 거리두기 2.5단계를 2단계로 완화할 움직임이다. 질병청은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새로 출범한 질병청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첫 시험대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