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건축

알타미라 동굴화 속 숭배받던 소, 권력자음식 된 까닭

중앙선데이

입력 2020.09.12 00:02

업데이트 2020.09.12 00:10

지면보기

703호 26면

도시와 건축

영화 ‘더 킹’에서 주인공이 스테이크를 먹는 장면. 힘을 가진 사람이 스테이크에 와인을 먹는다. 그 한 접시엔 엄청난 시공간이 담겨 있다. [중앙포토]

영화 ‘더 킹’에서 주인공이 스테이크를 먹는 장면. 힘을 가진 사람이 스테이크에 와인을 먹는다. 그 한 접시엔 엄청난 시공간이 담겨 있다. [중앙포토]

영화 ‘더 킹’을 보면 권력의 암투를 벌이는 두 주인공 남자가 스테이크를 써는 장면이 나온다. 미디엄으로 구워진 고기를 칼로 썰자 피가 흘러나온다. 두 남자, 칼, 피가 화면 가득하다. 피 흘리는 칼싸움은 없지만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 주는 장면이다. 뉴욕 마피아들은 스테이크를 좋아했고 영화 속에서도 힘 있는 자들은 자주 스테이크 먹는 장면을 연출한다. 이탈리아 음식인 스테이크는 어떻게 권력자의 음식이 되었을까. 그 이야기는 알타미라 동굴부터 시작된다.

2만 년 전 소 조상 ‘오록스’ 그림
동굴 속은 고대인 성스러운 공간
소 숭배사상 농업사회서도 유지

투우장, 인간이 동물 압도 ‘새 신전’
동굴화 그렸던 조상이 보면 기겁
힘 가진 사람 스테이크·와인 즐겨

초기 인류가 만든 공간 중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은 알타미라 동굴이다. 스페인 북부에 위치한 이 동굴에는 기원전 1만8500년에서 1만4000년 사이에 그려진 동물들의 그림이 있다. 알타미라 동굴보다 북쪽에 위치한 프랑스에 가면 알타미라 동굴화보다 3500년 정도 후인 기원전 1만5000년에서 1만3000년 사이에 만들어진 라스코 동굴화가 있다.

두 그림에 공통으로 그려진 동물은 ‘소’다. 엄밀하게 말하면 소의 조상인 ‘오록스’를 그린 것이다. 오록스는 소보다 몸집이 훨씬 커서 앞다리 어깨의 높이가 180㎝가 넘었다고 한다. 큰 성인의 키보다 더 컸으니 고대인들이 숭배의 대상으로 삼은 것도 무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소 그림이 있어서 당시 사람들이 소를 사냥한 것으로 오해하는데 소는 사냥의 대상이 아니었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주요 사냥감은 사슴이었다. 거대한 몸집의 소는 숭배의 대상이었고 토템이 되었다. 소를 그린 공간은 종교적으로 구분된 성스러운 공간이 되었다.   수렵채집의 시기에 숭배를 받던 소의 위상은 농경사회가 되면서 점점 내려오게 된다. 그 증거는 기원전 8500년께 만들어진 ‘괴베클리테페’라는 건축유적에서 나타난다.

건축적으로 보면 알타미라 동굴이나 라스코 동굴의 공간은 기존의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돌의 공간에 그림을 그려 넣음으로써 인공의 공간을 만들었다. 당시 사람이 사는 공간은 흙을 파고 가벼운 나뭇가지로 엮은 움집이었다. 돌로 건축물을 만들지 못한 이유는 인간은 아직 무거운 돌을 움직여서 건축물을 남길 정도의 사회 조직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집단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생태계 내에서 인간의 위상도 올라갔다. 사회조직 규모가 커지자 건축물의 규모는 커지고 제작 방식도 돌을 사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괴베클리테페는 거대한 돌을 T자 모양으로 세워 놓고 주변으로 빙 둘러 가며 높은 돌담을 만든 건축물이다. 주목할 부분은 이 건축물에 조각된 그림이다. 거대한 돌기둥에는 사람의 얼굴을 단순하게 형상화한 커다란 조각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동물과 식물이 더 작게 그려져 있다. 인간을 자연의 동식물보다 더 위대한 존재로 보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기존의 동굴화에서 인간은 동물보다 작게 그려져 있었다.

인간 더 크게 새긴 괴베클리테페 유적

스페인 북부 알타미라 동굴에 그려진 소의 조상 ‘오록스’ 벽화. [중앙포토]

스페인 북부 알타미라 동굴에 그려진 소의 조상 ‘오록스’ 벽화. [중앙포토]

괴베클리테페를 건축할 즈음부터 인간은 동물을 길들여서 가축을 만들고, 식물을 길들여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인간은 기원전 7000년께부터 오록스를 가축으로 길들였는데 그 과정에서 거대한 오록스는 점차 크기가 줄어들었다. 앨리스 로버츠의 저서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에는 오록스의 크기가 점점 줄어든 이유가 적혀 있다.

인간이 고기를 얻기 위해서 소를 기르다 보니 소가 큰 몸집으로 자라기 전에 도축해서 세대를 거치면서 소의 몸집이 점차 작아졌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소를 숭배하는 문화가 유지되기도 했다. 소는 식용 외에도 농사를 짓는 데 주로 사용됐다. 소의 가축화는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에서 시작되었는데 서쪽인 메소포타미아나 중동지역에서는 주로 소를 농업에 동력으로 이용했다. 농사지을 때 노동력으로 소를 이용하는 문화에서는 소를 숭배한다. 이집트를 비롯한 인도 역시 소를 숭배한다.

구약성경 출애굽기 편에는 유명한 ‘금송아지 사건’이 있다.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와의 도움으로 민족지도자 모세의 지도하에 이집트를 탈출한다. 그런데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을 이끈 신의 형상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들은 가지고 있는 금을 모아서 금송아지를 만든다. 이에 모세는 대노하여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을 던져서 깨뜨린다.

이 이야기는 십계명이라는 성문법을 만들어서 새로운 종교와 국가 체계를 세우려는 모세와 기존의 이집트 종교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 간의 갈등을 보여 준다. 유교에 근거해서 경국대전을 통해 국가의 기틀을 만들려고 했던 조선 건국의 주역들이 불교와 갈등을 빚었던 것과 비슷한 이야기 구도다. 금송아지는 이집트 농경사회의 상징이다. 소를 숭배하는 이집트 농경문화 종교와 동물을 죽여서 피의 제물로 삼던 유목문화 종교 사이의 갈등이기도 하다.

이처럼 수렵채집 시기부터 시작된 소 숭배사상은 농업국가사회에서도 유지됐다. 소 숭배 문화는 다음 세대 문화인 페르시아로 전승됐다. 메소포타미아에 위치한 페르시아 왕국의 페르세폴리스 건축물 기둥의 가장 높은 주두에는 황소가 조각돼 있다.

인류 최초의 신화인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를 보면, 주인공 길가메시의 친구로 ‘엔키두’가 나온다. 신이 만든 엔키두는 소와 비슷한 짐승의 모습이었지만 신전의 창녀와 2주일 동안 쉬지 않고 성관계를 맺어서 절반 정도의 인간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반인반수의 엔키두는 주인공 길가메시와 함께 여러 가지 모험을 한다. 주인공 엔키두가 절반은 소이고 절반은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진 것을 통해 수렵채집 시기부터 시작된 소 숭배의 토템이 점차 인간 중심의 신화로 바뀌는 과도기에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시간이 흘러 고대 그리스 시대에 와서는 미노타우르스 신화가 만들어졌다. 미노아왕의 왕비가 소와 사랑에 빠져서 반인반소의 아들 미노타우르스를 낳았는데 이를 죽이지 못하고 미로에 가두었다. 미노타우르스를 죽인 것은 그리스 아테네의 왕자 ‘테시우스’다. 이 신화는 소를 숭배하는 문화에서 인간 중심의 문화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이야기다. 길가메시 신화까지는 소와 친구였다면 수천 년이 지난 그리스 시대에 와서는 인간이 소를 죽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수렵채집 시기부터 숭배해 오던 신 같은 존재인 소를 죽이는 이야기가 미노타우르스 신화의 핵심이다. 비로소 인본주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소를 죽여서 인간이 주인공이 되는 대표 문화는 스페인의 투우다.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에서 숭배의 대상이었던 소를 이제는 경기장에서 붉은 천조각 하나로 농락을 하다가 인간 투우사가 죽이는 놀이가 되었다. 알타미라 동굴의 그림을 그렸던 조상이 보면 기겁했을 거다. 투우장은 인간이 동물을 압도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새로운 신전이다. 알타미라 동굴의 반대되는 공간은 투우장이다.

우리는 지금 스테이크를 먹는다. 소고기는 인간이 동물을 지배한다는 정신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음식이다. 그중에서도 드라이에이징은 소고기를 더 말려서 수분을 빼내고 단위부피당 단백질의 밀도를 높인 가장 비싼 고기다. 단위 부피당 더 많은 고기가 들어간 드라이에이징 고기는 부의 상징이다.

스테이크 한 접시엔 엄청난 시공간이 …

그 고기와 함께 와인을 마신다. 와인은 포도밭에서 포도를 키워야 하고, 장인이 힘써서 와인을 담그고, 창고에 몇 년 동안 숙성시켜야 만들 수 있는 술이다. 그 포도밭에서 농사를 지었으면 수천 명이 먹고 살았을 것이다. 와인창고에서 사람이 살았다면 수백 명은 살았을 것이다. 그러한 넓은 공간과 긴 시간을 낭비해서 만든 게 와인이다. 그래서 힘을 가진 사람은 스테이크에 와인을 먹는다. 그 한 접시에 엄청난 시공간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스테이크를 먹을 때 한번쯤은 알타미라 동굴에서 소를 그렸던 수렵채집인을 떠올리며 인간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하듯이 말이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하버드·MIT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30여 개의 국내외 건축가상을 수상했고 『어디서 살 것인가』『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