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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아닌 ‘보신’ 자민당…힘 센 자만 따르는 국민도 문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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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3호 27면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7월 말부터 쭉 일본에 있다. 여름휴가라고 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심각한 상황에서 대부분 집에서 지내고 있다. 남편은 도쿄에, 엄마는 오사카에 있는데 둘 다 대도시라 사람이 많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다.

104년 전통 노사쿠 ‘놋쇠 풍경’ 히트 #유연한 발상 전환이 성공의 비결 #자민당은 딱딱하게 굳어버려 #아베 계승 스가를 총리로 밀어 #지지율 1위로 역전돼 할말 잃어

답답한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2박 3일 도야마(富山)에 가기로 했다. 도야마는 내가 신문기자 시절 2년 동안 근무했던 곳이다. 사람이 적은 곳으로 가서 온천에 몸을 담그고 맛난 스시와 사케를 먹고 싶었다.

노사쿠의 ‘놋쇠 풍경’ 후린. [노사쿠 홈페이지]

노사쿠의 ‘놋쇠 풍경’ 후린. [노사쿠 홈페이지]

도야마에서 근무하기 전엔 나라(奈良)에서 근무했다. 옛날 수도인 나라에는 오래된 절이 많고 문화 담당 기자로 스님과 만날 기회가 많았다. 나라를 떠나기 전 스님들이 이구동성으로 “도야마는 옛날부터 금속가공업이 유명하다. 절에서 쓰는 불구(佛具)도 대부분 도야마에서 구입한다”고 알려줬다.

특히 금속가공업이 유명한 곳은 도야마현 다카오카시(高岡市)다. 400년 전부터 불구를 만들어 왔다. 나 같은 일반인은 불구를 살 일은 거의 없지만, 요즘은 불구를 만들어 온 업체가 세련된 그릇이나 컵 같은 일상적으로 쓸 만한 상품을 만들기 시작해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전국적으로 인기가 많은 건 ‘노사쿠(能作)’의 상품이다. 이제 도쿄나 오사카의 백화점에서도 살 수 있지만, 이왕 도야마에 온 김에 다카오카시에 있는 노사쿠 본사를 찾아가기로 했다.

노사쿠 사장 취임 후 매출 10배 늘어

‘포스트 아베’ 경쟁에서 독주 체제를 굳힌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 장관은 오는 14일 치러 지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다. 새 자민당 총재는 아베 신조 총리 자리를 물려 받게 된 다. [연합뉴스]

‘포스트 아베’ 경쟁에서 독주 체제를 굳힌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 장관은 오는 14일 치러 지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다. 새 자민당 총재는 아베 신조 총리 자리를 물려 받게 된 다. [연합뉴스]

2017년 새로 만들었다는 본사 사옥의 크고 근사한 모습에 놀랐다. 안에는 상품만 진열돼 있는 게 아니라 노사쿠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전시도 볼 수 있고 유리 너머로 공장에서 작업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노사쿠는 1916년 창업한 회사로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점점 다카오카시의 금속가공업 전체가 쇠퇴하고 있는 가운데 노사쿠 카츠지(能作克治)가 2002년 사장 자리에 취임한 후 매출은 10배로 증가했다고 한다. 직원은 15배로 늘어났고 평균 연령은 32세라고 한다. 전통공예는 후계자 부족이 문제라고 하는데 노사쿠는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회사가 됐다.

일본의 장인정신은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전통을 지키며 대대로 이어가는 것에 가치를 두는 일본에서 장인은 존경의 대상이다. 그렇지만 전통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매출이 10배로 늘어나진 않는다.

유연한 발상으로 성공신화를 쓴 일본 노사쿠의 주석 제품들. [사진 나리카와 아야]

유연한 발상으로 성공신화를 쓴 일본 노사쿠의 주석 제품들. [사진 나리카와 아야]

노사쿠 카츠지 사장은 지금까지 없었던 상품을 개발함으로써 노사쿠 브랜드 가치를 올렸다. 첫 도전은 놋쇠로 만든 핸드벨이었다. 치면 시원한 소리가 나는 오린(おりん)라고 불리는 불구를 만들어 온 기술로 핸드벨을 만들었지만 이건 실패였다. 일본에서는 핸드벨을 쓰는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그 실패를 본 어떤 사람이 “후린(風鈴)을 만들면 어떠냐”고 제안했다. 후린은 일본에서 여름에 창가에 걸어 놓고 바람으로 울리는 소리를 즐기는 물건이다. 유리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지만 노사쿠는 놋쇠로 만들었다. 이것이 히트를 쳤다. 3개월 만에 1개에 4000엔(약 4만원) 하는 비싼 후린이 3000개나 팔렸다고 한다.

이후 주석 100%의 식기 등 신상품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인기가 더욱 치솟고 있다. 주석은 금속이지만 유연한 소재이기 때문에 식기를 만드는 데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져 왔다. 그런데 노사쿠는 자유자재로 구부러지는 재미있는 식기를 만들어 판매한 것이다. 이런 노사쿠 사장의 유연한 발상이 성공의 비결이다.

그런데 장기집권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 집권 자민당은 딱딱하게 굳어 버린 것 같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사임을 표명하고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차기 자민당 총재 즉 총리가 될 것 같은 상황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보수’라기보다 ‘보신(保身)’에 애쓰는 모양이라고.

마스크를 쓴 일본 자민당 국회의원들. [연합뉴스]

마스크를 쓴 일본 자민당 국회의원들. [연합뉴스]

아베 총리가 사임을 표명하기 전까지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이 차기 총리로 유력했다. 인기가 많아서다. 이런 이야기를 한국 친구한테 하면 “그러면 이시바가 되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을 직접선거로 뽑기 때문에 당연히 일본도 총리를 직접선거로 뽑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안타깝게도 일본 총리는 직접선거로 뽑는 것이 아니다. 직접선거로 뽑힌 국회의원 중에서 국회가 지명한다. 그래서 지금 일본에선 여당 자민당의 총재가 총리가 되는 것이다.

총리는 선거 때 자민당의 얼굴이기 때문에 다음 국회의원 선거를 고려해서 인기 높은 사람을 총리로 뽑는 것이 자민당으로서 유리한 선택이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원래 국회의원 표(394)하고 그것과 같은 수의 당원들의 지방표로 결정된다. 그런데 이번엔 자민당 집행부가 “정치의 공백은 없어야 한다”는 이유로 당원 투표를 하지 않고 지방 표를 141표로 줄이는 방식을 제안했다. 지방 표를 줄이면 이시바가 불리하게 되고 스가가 유리하게 된다.

왜 당 집행부는 스가를 총리로 밀고 싶은 걸까. 정말 궁금해서 개인적으로 일본 기자들의 의견을 물어봤다. 아베 정권에 비판적인 발언도 하는 이시바가 총리가 되면 아베 정권의 의혹들에 대해 책임을 추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시바는 총리가 되면 모리토모 가케 학원 문제나 ‘벚꽃을 보는 모임’ 문제 등의 의혹을 재조사할 생각인지 기자들이 물어봤을 때 “무엇이 어떤 문제였는지 해명부터 하고 필요하면 당연히 한다”고 답했다. 스가는 “아베 정권을 계승하겠다”고 하고 있고, 무엇보다 관방장관으로서 그런 문제들을 덮어 왔던 쪽에 있는 사람이다.

‘나는 신문기자다’ 보면 스가 정체 파악

영화 ‘나는 신문기자다’의 한 장면. [노사쿠 홈페이지]

영화 ‘나는 신문기자다’의 한 장면. [노사쿠 홈페이지]

스가는 ‘기자들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하지 않는 관방장관’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지난해 화제가 된 심은경 주연의 일본영화 ‘신문기자’의 모델인 도쿄신문 모치즈키 이소코(望月衣塑子) 기자와 스가의 대결이 유명하다. 모치즈키가 과감하게 질문을 던져도 제대로 답하지 않는 스가. “당신에게 답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질문을 하는 일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등의 답변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를 질문하는 곳이 기자회견이 아닌가.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국민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스가가 어떻게 언론을 컨트롤해 왔는지는 이달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상영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신문기자다’(모리 타츠야 감독)를 보면 알 수 있다. 모치즈키 기자를 찍은 영화지만 차기 총리 유력 후보인 스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렇게 보신을 우선으로 하다가는 자민당은 썩어 버리고 계속 인기가 하락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말을 잃었다. 9월 2, 3일의 조사 때 “차기 총리에 적합한 사람은 누구인지”라는 질문에 스가가 38%로 1위, 이시바가 25%로 2위로 나왔다. 6월에는 이시바가 31%, 스가는 3%였는데 역전했다. 스가가 될 것 같아서인가? 힘센 자에겐 잠자코 따르라는 것인가? 문제는 자민당뿐만 아니라 국민 쪽에도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한 후,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석사과정에 유학. 한국영화에 빠져서 한국에서 영화를 배우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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