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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일 돌고돌아 결국 '노딜'…아시아나 구조조정·소송전 예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아시아나 항공기가 이륙하고 있다. 기간산업안정기금 운용심의회는 이날 아시아나항공 지원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1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아시아나 항공기가 이륙하고 있다. 기간산업안정기금 운용심의회는 이날 아시아나항공 지원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305일을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로 왔다. 지난해 11월 12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ㆍ합병(M&A)은 무산으로 결론 났다. 열 달을 끌어온 M&A 협상이 ‘노 딜(No Deal)’로 끝나면서 아시아나항공을 채권단 관리체제 아래 두는 플랜B가 본격 가동된다. 앞으로는 아시아나 경영정상화를 위한 구조조정과 인수 계약금 2500억원을 둘러싼 법적 공방 등이 예고돼 있다.

[아시아나 노딜]

지난 6월 서울 강서구 오쇠동 아시아나항공 본사에서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한창수 아시아나항공 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월 서울 강서구 오쇠동 아시아나항공 본사에서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한창수 아시아나항공 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창수 사장 “M&A 무산 안타깝다”

아시아나항공 한창수 사장은 11일 사내 인트라넷에 올린 담화문에서 “현산-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과의 M&A 계약이 해제됐다”며 “현산의 거래종결의무 이행이 기약 없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아시아나항공의 ‘계속 기업으로의 가치’를 보전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해 4월부터 약 1년 5개월 동안 M&A 성사를 위해 전사적으로 노력을 기울였지만 불발돼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7주간의 실사 및 본 계약 체결 이후 8개월이란 전례 없는 긴 기간 동안 현산의 많은 양의 실사 자료 및 설명 요청에 성실하고 차질없이 응대해준 모든 임직원의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한 사장은 매각 무산으로 동요하는 조직 내부도 단속했다. 그는 “3월 이후 전사적으로 지속하고 있는 무급ㆍ유급 휴직에 동참하며 회사의 위기극복 과정을 함께하고 있는 직원에게 M&A 무산 소식을 전하게 돼 안타깝다”며 “이에 굴하지 않고 경영 환경과 시장의 변화에 맞춰 우리 스스로를 변화시킴으로써 코로나19 이후의 상황에 철저히 대비한다면 밝은 미래가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라고 당부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사실상 무산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금호아시아나 항공 본사. 연합뉴스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사실상 무산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금호아시아나 항공 본사. 연합뉴스

채권단 ‘플랜B’ 가동…구조조정 불가피  

M&A 무산으로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 관리 체제 아래에 놓이게 됐다. 이미 아시아나항공 매각 무산을 염두에 뒀던 채권단은 기간산업안정기금지원, 영구채 출자전환, 차등감자 등을 포함한 플랜B를 마련해 왔다. 채권단은 2조원 규모의 기안기금을 투입해 아시아나항공 경영 정상화를 달성한 다음 시장 여건이 개선되면 재매각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올 상반기 부채총계는 11조 5459억원으로 부채비율은 2291.01%에 달한다. 지난해 말(1386.69%)보다 904.32%p 급증했다. 앞으로 1년 동안 갚아야 하는 단기차입금은 2조원이 넘는다. 특히 노 딜로 신용등급이 내려가면 매출 기반 자산유동화증권(ABS) 트리거가 발동돼 당장 7000억원을 상환해야 한다.

노딜 선언한 아시아나항공 매각 일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노딜 선언한 아시아나항공 매각 일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채권단 관리 체제에서 아시아나항공의 사업 재편이나 인력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항공업황 회복 시점이 늦어지면서 단기간에 새 인수 후보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채권단 관리하에 조직 슬림화를 중심으로 한 사업 개편이 이뤄지지 않겠냐”면서 “다만 기안기금을 지원받는 기업은 의무적으로 관련 조항에 따라 6개월 동안 근로자 90% 이상을 고용해야 해 아시아나항공의 인력 구조조정은 당분간 소규모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11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 아시아나 항공기가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11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 아시아나 항공기가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통매각 대상이었던 에어부산과 에어서울, 아시아나IDT 등 자회사 인력 4700여명이다. 기안기금 지원 조건에 계열사 지원 금지가 포함돼 있어 채권단은 자회사 분리매각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계열사의 관계자는 “M&A 무산 소식이 알려지면서 회사가 어떻게 될지 몰라 두려워하는 직원이 많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허희영 항공대 교수는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 재매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누적된 부실화에 대한 철저한 경영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면서 “이런 노력 없이는 또 국민 혈세만 낭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左), 정몽규 HDC그룹 회장(右). 중앙포토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左), 정몽규 HDC그룹 회장(右). 중앙포토

현산-채권단 간 계약금 반환 소송전 예고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정몽규 현산 회장 간의 계약금 반환 소송전도 예고돼 있다. 지난해 12월 현산-미래에셋 컨소시엄은 2조 5000억원에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기로 금호산업 및 아시아나항공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인수대금의 10%인 2500억원을 이행보증금으로 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앞서 “계약금 반환 소송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지만, 소송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게 항공업계 중론이다.

소송의 쟁점은 깨진 계약에 대한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가다. 현산은 계약 체결 이후 아시아나의 부채비율 급증 등 자본잠식이 심각한 상황을 강조하면서 아시아나항공의 회계처리에 문제가 있다는 점 등을 금호산업의 귀책사유로 제시할 전망이다. 금호산업은 현산이 인지하고 있었던 일정에 따른 재무상황 변화일 뿐, 회계처리에 문제가 없다고 맞설 것으로 보인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현산이 인수 의지엔 변함이 없다면서도 구체적인 재협상 조건도 밝히지 않고 시간을 끌어왔다”면서 “인수대금 1조원 할인 제안까지있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현산에 대한 법원 판단이 우호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시나아 인수를 추진해왔던 HDC현대산업개발(현산) 서울 삼성동 사옥의 모습. 연합뉴스

아시나아 인수를 추진해왔던 HDC현대산업개발(현산) 서울 삼성동 사옥의 모습. 연합뉴스

침묵하는 현산…왜?

이날 아시아나항공 노 딜 선언에도 현대산업개발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이조차 계약금 2500억원을 둘러싼 법정 다툼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방효석 법무법인 우일 변호사는 “민법상 ‘계약은 유지돼야 한다’는 게 기본 원칙이다. (현산은) 계약을 지키려고 했고, 계약해지를 당하는 입장으로 계약 파기에 대한 과실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방 변호사는 “법원에서 따져봐야 알겠지만, 재실사를 요구할 수 있다는 특약이 없다면 (현산은) 소송전에서 불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산이 인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한 재실사 요구가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곽재민·염지현 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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