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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집콕 생활 즐겁게 해준 온라인 국제 요리 릴레이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히데코의 음식이 삶이다(9) 

일반적인 취미는 골프, 테니스, 등산, 요리, 맛집 탐방, 영화 감상, 여행 같은 것이고, 물어보는 사람도 그런 대답을 기대할 것이다. [사진 pikist]

일반적인 취미는 골프, 테니스, 등산, 요리, 맛집 탐방, 영화 감상, 여행 같은 것이고, 물어보는 사람도 그런 대답을 기대할 것이다. [사진 pikist]

가끔 선생님은 취미가 뭐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오래전부터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답하기 곤란할 정도로 나는 별다른 취미가 없던 것 같다. 일반적인 취미는 골프, 테니스, 등산, 요리, 맛집 탐방, 영화 감상, 여행 같은 것이고, 물어본 사람도 그런 대답을 기대할 것이다.

요즘에는 이기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내 취미가 없다기보다 딸, 아내, 엄마, 며느리로서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내가 좋아하는 것만 관철하려는 고집스러운 삶의 방식 탓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어느샌가 취미였던 ‘내가 좋아하는 것’이 직업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되레 취미가 뭐냐고 물어오면 멋쩍은 웃음으로 ‘요리책을 보는 것’이라고 답하게 되었다.

어렸을 적 본가 부엌의 테이블 한쪽이나 응접실 소파의 사이드 테이블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좋아하는 요리책과 매달 발행되는 ‘NHK 오늘의 요리’가 놓여 있었고, 아버지의 책상에는 일본어로 된 프랑스 요리 용어 사전이나 라루스 사전, 독일어 빵 전문서, 일식 생선 손질법 등에 관한 다양한 요리책이 쌓여 있었다.

당시 독일어나 프랑스어를 읽을 줄 몰랐던 나는 가만히 그 요리책의 페이지를 넘겨봤다. 포스트잇 같은 것도 없던 시대에 어머니는 관심 있는 요리였는지, 다음에 만들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건지 페이지 귀퉁이를 접어놓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원서 곳곳에는 굵은 심 연필로 밑줄이 그어져 있었고, 공백에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이것도 유전자 탓인가 하며 혼자 히쭉 웃고 만다.

이십 대 때는 장래의 직업에 대한 생각이 컸다. 국제정치학자나 심리학자, 언어학자, 신문기자, UN 직원 등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고 싶었다. 바지런히 도서관에 다니며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전문서를 샀고, 대학 세미나에서 전문서에 열심히 밑줄을 그어가며 리포트를 썼다. 그 무렵 요리책에는 눈길도 안 줬고, 어머니가 유학하는 딸에게 보낸 항공우편에 꼭 딸려 보낸 육필 레시피조차도 한쪽에 쌓인 책 사이에 끼워놓고 잊어버리곤 했다.

다만 해외 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아주 가끔이지만 간단한 일본 가정요리를 배우고 싶을 때도 있고, 친구들과의 파티에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일본요리를 만들어줄 기회도 생긴다. 어느 책에 끼워뒀는지 생각나지 않는 어머니의 레시피를 필사적으로 찾아내, 레시피를 보면서 외국 친구들에게 일본요리를 만들어준 적도 있다.

‘요리책을 보는 것’이 취미인 내가 한국에서 요리교실을 시작한 지 13년째가 되었다. 그 사이에 파일에 쌓아둔 레시피는 몇 가지나 될까. 세어본 적은 없지만 출간한 요리책만으로도 여덟 권이니 그 외의 레시피를 포함하면 꽤 많은 숫자일 것이다.

맨 처음 요리책을 기획했을 때는 물론 요리 선생이라는 타이틀을 지닌 이상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나의 요리와 존재를 알리고 싶다는 욕심이 앞섰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순진한 야망도 품었다. 하지만 요리책을 쓰기로 한 것은 취미로 보던 좋아하는 요리책 저자처럼 되고 싶다는 또 다른 꿈을 실현하는 기회였다. 즉 ‘레시피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요리 그 자체와 식문화, 그리고 음식을 통한 의사소통’이라는 연희동 요리교실의 목적과는 달리 레시피 그 자체를 공유하는 장을 만들고 싶었다.

“선생님이 한국에서 에세이나 요리책을 멈추지 않고 계속 쓰는 이유는 자기 정체성 찾기 위해서죠?”

왜 책을 쓰는지 자문해보니, 에세이든 요리책이든 거기에 실린 수많은 레시피를 통해 이 나라에서 자기 정체성의 상실을 막아보려고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사진 pixabay]

왜 책을 쓰는지 자문해보니, 에세이든 요리책이든 거기에 실린 수많은 레시피를 통해 이 나라에서 자기 정체성의 상실을 막아보려고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사진 pixabay]

꽤 오랜 기간 요리교실을 다닌 연미 씨가 말했다.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가르치는 교수인 연미 씨는 해외에서 한국에 온 이주여성 실태를 연구하고 있다. 좋아서 한국에 왔는지 결혼이라는 형태로 어쩔 수 없이 한국에 살게 되었는지는 각자 배경이 다르지만, 나 같은 여성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적응하는지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그가 요리 교실에 올 때마다 “무언가에 떠밀리는 것처럼 책을 쓰는 것 같아. 왜 그래요?”라며 학자다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에게 물어본다. “왜일까, 왜지?” 자문해본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직업상 레시피라는 것을 접해와서? 요리책 출판을 위해 레시피를 정리하고 촬영하고 편집하는 묘미가 있어서? 내 레시피를 보고 누군가가 만들어본 후 맛있다고 해주는 것에 대한 기대 때문에? 요리연구가로서의 관록을 쌓기 위해? 한때, 연미 씨가 던진 질문 탓에 오랜 시간 고민했다. 결국 나는 그가 내놓은 답처럼 에세이든 요리책이든 거기에 실린 수많은 레시피를 통해 이 나라에서 자기 정체성의 상실을 막아보려고 했던 건지도 모른다.

단, 레시피가 ‘정체성 찾기’의 수단이 아니며 단순히 맛있게 만들기 위한 매뉴얼도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레시피는 레시피를 읽은 사람의 마음에 머물며 그 사람의 요리 습관, 때로는 삶의 방식까지도 바꿔놓는다. 셰프나 요리에 종사하는 프로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갈고 닦아온 레시피에는 커다란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올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SNS에 레시피를 공개하는 사람이 급증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요리로 풍요롭게 만들자는 바람을 담아 레시피를 알려주는 사람이 줄을 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 이전부터 SNS의 발달과 함께 프로든 초보든 자기 레시피를 공개하는 사람은 있었다.

4월에는 아침에 일어나 뉴스를 보면 뉴욕의 사망자는 몇 명이고 이탈리아의 사망자는 몇 명이라든가 록다운된 세계 각국의 도시에서 식당이 영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 등 어두운 이야기밖에 없었다. 몇 년이나 연락이 끊긴 외국 친구의 안부도 걱정되었고, 요리를 통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소중히 하는 연희동 요리교실을 앞으로 어떻게 운영해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괴로워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럴 때 일본 가나자와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요리교실을 운영하던 친구가 페이스북과 인스타를 통해 ‘요리 릴레이’ 비슷한 바통을 넘겨주었다. 모두가 집에 틀어박혀 SNS를 보던 올봄에는 이 요리 릴레이뿐만 아니라 매달 한 번씩 추억의 해외여행 사진이나 책 등을 SNS에 올리고 친구와 지인에게 넘기는 꽤 귀찮은 요청이 반복됐으나, 이 ‘요리 릴레이’만큼은 의미가 컸다.

일본 요리사인 와키 마사요 씨의 제안으로 ‘요리 릴레이’가 시작된 것은 3월 29일. 5월 6일 일단 막을 내리기까지 600건에 이르는 레시피가 소개되었다. ‘코로나 사태로 일부러 장을 보지 않더라도 집에 있는 식재료 세 개 정도면 만들 수 있는 요리’라는 느슨한 조건에 따라 셰프와 요리사가 선보인 레시피는 해외는 물론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집에만 있어야 하는 사람에게 부엌에 들어서는 즐거움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나도 한국의 반찬으로 ‘김무침’을 소개했는데, 그 SNS를 본 사람이 보내온 감상을 읽고 레시피 공유라는 게 이렇게나 즐겁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 나는 불과 몇 개월 전까지 요리교실을 운영하기 위해 레시피를 만들고, 재료를 사러 가 수강생의 즐거운 목소리를 기다리며 강의 준비를 하는 루틴 워크의 일부에 지나지 않던 레시피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했다.

레시피는 식재료를 요리로 바꾼다.
레시피는 요리를 연마한다.
레시피는 요리를 기록한다.
레시피는 요리를 전달한다.
레시피는 시공을 초월해 맛을 전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레시피는 요리를 공유하는 수단이라는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레시피에는 커다란 힘이 있다.

김과 쪽파 무침 레시피

[사진 나카가와 히데코]

[사진 나카가와 히데코]

재료(반찬통 1개분량)

돌김 20장
실파(쪽파) 5가닥
양념 재료: 진간장 3T, 참기름 2T, 통깨 1T

만들기

1. 팬을 달군 후, 김을 재빨리 한장씩 굽는다. 김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비닐봉지에 담아 잘게 부순다.
2. 실파는 갈3cm로 자른다.
3. 얀념 재료를 섞은후 김과 실파를 넣어 가볍게 무친다.

키친 크리에이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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