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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1년에 10배 폭등…17C 튤립투기 닮은 植테크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정아의 식(植)세계 이야기(2)  

행복하고 자유롭게 사는 방법을 찾고 있다. 과학소설과 음악, 영화, 근육운동이 취미인 냥집사, 동물애호가였지만 최근 식물의 세계에 푹 빠져 있다. 먹는 식물 키우기로 시작, 지금은 꽃보다 예쁜 잎을 가진 희귀식물, 정글플랜츠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높아진 가드닝, 유기농 텃밭 채소 재배, 공기정화식물 플랜테리어…. 이제는 재테크 대상으로까지 번진 식물 세상과 식물에 빠진 사람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편집자〉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투기는 금융 역사상 아주 유명한 이벤트입니다. 네덜란드가 오늘날 세계 최고의 튤립 육종 및 수출국가가 된 걸 보면 원예사적으로도 큰 사건이었겠죠.

17세기 초 네덜란드에서는 상업과 무역의 발전으로 생겨난 신흥부유층과 귀족이 희귀하고 예쁜 튤립을 찾으면서 어떤 꽃이 필지 모를 튤립 구근 구매가 비정상적으로 과열되고, 역사에 남는 투기로 발전합니다.

에드워드 챈슬러가 쓴 『금융투기의 역사』에는 당시 상황이 소개됩니다. 투기가 시작되기 전 20길더(당시 유통된 화폐단위)였던 튤립 한 뿌리가 투기가 불붙으면서 다음해 봄에 225길더로 10배 이상으로 치솟았다고 합니다.

튤립투기가 피크였을 때 집 한 채 가격인 1200플로린이라는 거액에 거래됐다는 셈페르 아우구스투스(Semper Augustus)라는 튤립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 튤립투기 때 집 한채값이었다는 셈페르 아우구스투스.

17세기 네덜란드 튤립투기 때 집 한채값이었다는 셈페르 아우구스투스.

지금 한국 식물계에도 일부 열대관엽과 변종무늬를 가진 희귀식물 투자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1년여 만에 가격이 5, 6배에서 10배 가까이 올랐지만, 구하지 못해 탄식하는 식집사가 많습니다.

대표적 식물이 엽록소가 결핍된 돌연변이로 잎에 하얀색이나 노란색 무늬가 생긴 몬스테라 보르시지아나 알보 바리에가타(약칭 알보몬)나 몬스테라 아단소니 바리에가타 같은 변종 몬스테라입니다.

알보몬스테라. [사진 인스타그램, 몬스테라 해시태그]

알보몬스테라. [사진 인스타그램, 몬스테라 해시태그]

알보몬은 다 상한 잎 딸랑 한장 붙은 한 마디 삽수가 20만원에서 40만원 사이에 거래됩니다. 제대로 된 화분 하나가 아니라 잎 한장 붙은 삽수입니다. 팔겠다는 게시물이 중고거래 사이트 같은데 올라오면 구매 댓글이 순식간에 수십 개 이상 달리고 1, 2초 내에 품절됩니다. 잎 5, 6장 짜리 무늬 아단소니 역시 200만원을 불러도 사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몬스테라 아단소니. [사진 인스타그램, 아단소니 해시태그]

몬스테라 아단소니. [사진 인스타그램, 아단소니 해시태그]

변종 몬스테라뿐이 아닙니다. 천남성목 필로덴드론속의 남미글로리오섬 경우 사려는 사람이 줄 서 있어도 판매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안스리움 럭셔리안스 경우 갖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 잎 5, 6장짜리가 백만 원대에 호가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수입규제로 가격이 폭등한 필로덴드론 글로리오섬(좌) 과 안스리움 럭셔리안스(우). [사진 인스타그램]

수입규제로 가격이 폭등한 필로덴드론 글로리오섬(좌) 과 안스리움 럭셔리안스(우). [사진 인스타그램]

2년 전만 해도 이들 식물은 현재 가격의 10분의 1로도 구할 수 있었다 합니다. 그때 이들 식물을 일찍 확보해 번식해온 농원이나 개인 셀러는 크게 돈 번 것으로 알려져 있죠.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고 수시로 현금화가 가능해진 상황이 관상가치에 투자가치를 더한 희귀식물 식테크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때로 인기 식물의 거래를 둘러싼 잡음도 일어납니다. 원예업체가 희귀식물 온라인 선착순 판매를 할 때 일부 구매자가 매크로를 써서 불공정 구매를 한다는 논란까지 벌어졌습니다. 판매 글이 뜨는 동시에 댓글을 다는 일부 손 빠른 네티즌이 희귀식물을 다수 구매해 조금 키운 후 높은 가격에 되판다는 불만도 많습니다.

희귀식물은 중고거래 사이트의 단골 사기 품목이 되기도 합니다. 대표적 중고 거래 카페인 중고나라에는 다른 사람의 희귀식물 사진을 도용해 사기 치는 사람이 거의 매일 나타날 정도입니다.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남의 사진을 도용해 판매글을 올리는 사기꾼들도 적지 않다. 사진은 인기 안스리움중 하나인 크리스탈호프. [사진 인스타그램, 크리스탈호프 해시태그]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남의 사진을 도용해 판매글을 올리는 사기꾼들도 적지 않다. 사진은 인기 안스리움중 하나인 크리스탈호프. [사진 인스타그램, 크리스탈호프 해시태그]

열대 관엽식물의 공급 부족은 수입제한조치 때문입니다. 몬스테라속, 필로덴드론속, 안스리움속 식물은 바나나뿌리선충 기주식물로 분류되어 북미 중미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대부분 지역과 유럽 여러 국가로부터의 수입이 6월부터 금지됐습니다.

특히 알보몬스테라처럼 돌연변이로 무늬가 생긴 식물은 엽록소 결핍이라는 변종 특성상 하얀 잎(고스트라 불립니다)이 잘 상하고, 일반 식물보다 성장과 번식이 더디어 공급이 크게 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조직배양을 통해 변종 무늬식물의 변종 유전자를 고정시키려는 연구도 일부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엽록소가 결핍된 변종몬스테라의 흰 부위는 잘 상해서 하얀 잎(고스트)이 나오면 예쁘지만 걱정부터 하는 식집사도 많다. 사진은 필자의 알보몬 흰 부위가 약간의 습도로도 상한 모습.

엽록소가 결핍된 변종몬스테라의 흰 부위는 잘 상해서 하얀 잎(고스트)이 나오면 예쁘지만 걱정부터 하는 식집사도 많다. 사진은 필자의 알보몬 흰 부위가 약간의 습도로도 상한 모습.

변종무늬식물과 열대 관엽 애호층이 젊은 층으로 넓어지며 희귀식물 식테크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 가드닝 붐 속에 인스타그램이나 핀터레스트 등의 사진을 보고 가드닝에 입문한 젊은 층이 대거 식세계로 편입되었습니다. 예전에 난이나 선인장 키우기가 주로 중장년층 취미였던 것과 비교하면 달라진 점이죠.

희귀식물의 가격상승이 무한정 지속될 수는 없을 겁니다. 올해 식물시장은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가드닝붐이라는 수요측면의 충격과 열대관엽 수입규제라는 공급사이드 충격이 몰고 온 이례적인 상황입니다. 수입규제가 풀리거나 조직배양이 성공해 대량공급이 되면, 단기간에 폭등한 희귀식물 가격은 당연히 떨어지겠죠.

네덜란드 튤립 투기 시절에도 변이로 색이 갈라진 튤립들이 가장 인기있었다. 변종 식물에 대한 선호는 수백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사진은 한스 볼론기르 '변이튤립 무리'.

네덜란드 튤립 투기 시절에도 변이로 색이 갈라진 튤립들이 가장 인기있었다. 변종 식물에 대한 선호는 수백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사진은 한스 볼론기르 '변이튤립 무리'.

17세기 네덜란드의 그 멋진 튤립처럼 한 때 모두가 갈구하다가 투매대상이 되듯, 과다한 가격으로 희귀식물 수요기반이 점점 줄어들 경우 가격은 하락하겠죠.

문제는 튤립투기역사를 아는 필자마저도 갖고 싶은 식물의 판매글이 뜨면 1초 이내 품절된다는 걸 알기에 손가락이 먼저 움직입니다. 키우며 보는 것도 좋지만, 언제든 현금화가 가능하다고 합리화하면서. 이 식중독에서 벗어나기 힘든 저 같은 식집사 때문에 버블이 당장 꺼지긴 힘들 거 같습니다.

전 금융투자협회 상무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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