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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남편 창밖으로 밀어버릴까 했다는 미셸 오바마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 (83)

얼마 전 강의를 진행하던 중이었습니다. 수강생이 리더십 자가 진단을 하는 동안 오랜만에 저도 같이 진단지를 작성해 보았습니다. 처음 본 진단지도 아닌데 할 때마다 결과가 같진 않습니다. 나의 상황과 생각의 변화에 따라 진단 결과가 조금씩 달라지곤 하죠. 진단지의 질문은 평소 잘 떠올리지 않았던 것을 고민하게 하기에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게 해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진단 결과를 집계해 보는데 ‘나는 소중한 것을 먼저 하며 살아간다’는 문항의 점수가 다른 문항에 비해 낮게 나왔습니다. 간단한 하나의 진단 만을 통해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지만, 나는 늘 소중한 것을 챙기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스스로 체크한 것의 결과가 다르게 나온 것을 보니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새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죠.

리더십 자가 진단을 해보면 질문들이 평소 잘 떠올리지 않았던 것들을 고민하게 만들기에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게 해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사진 pxhere]

리더십 자가 진단을 해보면 질문들이 평소 잘 떠올리지 않았던 것들을 고민하게 만들기에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게 해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사진 pxhere]

대부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물어보면 가족을 꼽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과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먼저 하는 것은 달라 보입니다. 소중하다고는 생각하지만 닥쳐오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에 우선순위가 밀리기도 하죠.

자연스레 저도 남편을 떠올립니다. 당연히 소중하게 생각하는 남편이지만 남편이 내 행동의 우선순위에 있었던가 생각해 봅니다. 더불어 나는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남편도 그렇게 생각할까 하는 질문도 스스로에게 해봅니다.

리더십이라는 것이 스스로의 주도적인 삶을 이끄는 셀프 리더십도 있지만, 조직이나 단체를 이끄는 리더십을 진단하는 경우가 많죠. 리더십을 진단할 때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도 중요하지만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중요합니다. 리더십은 내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원이 판단하는 것이라고 하죠. 그래서 조직에서 리더십 진단을 진행할 때면 스스로를 판단해 보는 셀프 진단과 동시에 직장 동료를 통한 다면평가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사이에서의 차이를 함께 찾아봅니다.

스피치나 커뮤니케이션 강의나 컨설팅을 진행할 때 셀프체크를 중요하게 말씀드립니다. 이때의 셀프체크는 개인의 판단이 아닌 타인의 입장이 되어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회의 석상이나 발표 자리에서 의식하지 않은 채 찍힌 본인의 영상을 보게 되면 잘 알고 있는 모습이라는 반응보다는 ‘제가 이렇게 한다고요?’라며 반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과 실제로 그런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하는 부부 사이라도 때때로 진단이나 상담 등을 통해 내가 잘하고 있는가를 상대방과 타인의 관점에서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문득 이솝우화 ‘해와 바람’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하늘에 해와 바람이 살고 있었는데 온화하고 얌전한 해와 달리 바람은 샘이 많고 거만했죠. 어느 날 한 남자가 따듯해 보이는 외투를 걸치고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남자를 본 바람은 자기가 힘이 훨씬 세다고 말하며 해를 이기기 위한 꾀를 부리죠. 누가 저 남자의 외투를 먼저 벗기는 지 내기를 하자고 합니다. 바람은 외투가 벗겨지길 기대하며 지나가는 남자를 향해 세차게 바람을 붑니다. 하지만 바람을 세게 불면 불수록 남자는 옷깃을 더 여밉니다. 돌풍과 소용돌이를 동반해 세차게 불던 바람은 결국 지쳐버렸죠. 이제 해가 나섭니다. 따듯한 빛을 내리쬐기 시작하자 공기와 땅의 기온이 올라갑니다. 남자는 외투의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밝아지는 햇살과 함께 남자는 외투를 벗고 나무 그늘에 앉았습니다. 바람은 분명 속임수가 있었을 거라 툴툴거립니다만 바람의 강한 힘을 이긴 건 태양의 부드러움이었음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부부가 살다보면 문득 상대방을 창문 밖으로 밀어버리고 싶은 ‘욱’하는 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우리 부부는 해의 대화를 하고 있나요 아니면 바람의 대화를 하고 있나요? [사진 pixabay]

부부가 살다보면 문득 상대방을 창문 밖으로 밀어버리고 싶은 ‘욱’하는 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우리 부부는 해의 대화를 하고 있나요 아니면 바람의 대화를 하고 있나요? [사진 pixabay]

얼마 전 미셸 오바마와 관련된 기사를 읽었습니다. 버락 오바마와 결혼 28주년을 앞두고 있다는 그녀는 한 토크쇼에서 부부관계에 대한 의견을 말했습니다. 간혹 남편을 창문 밖으로 밀어버리고 싶은 때도 있다던 그녀는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아주 긴 시간 동안 서로 참기 어려운 시기가 있을 수 있는데, 이게 이혼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했죠.

이어서 결혼한 사람은 자신의 어려웠던 시기에 대해 잘 얘기하지 않는다며 그렇기 때문에 어린 부부는 어려움에 부닥치면 ‘우리는 끝났어’라고 포기하려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미셸 오바마는 “만약에 그렇게 해서 끝날 것이라면 내 남편과 나는 몇번이고 헤어졌다”며 “내가 그때마다 뛰쳐나가고 포기했다면 결혼 생활 중 느낀 아름다움을 놓쳤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결혼을 고려할 때는 농구팀을 꾸리듯 서로의 관계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거쳐 신중하게 해야 한다며 결혼을 농구로 생각한다면 여러분의 선수가 모두 강하고, 승리하기를 원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죠.

미셸 오바마의 기사를 읽으며 그녀도 나도 그리고 부부의 연으로 이어진 누구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때때로 화가 나고 상처도 받지만, 그 순간을 잘 이겨내며 문득문득 또 아름다움을 느끼며 살아가겠구나 합니다.

부딪히는, 그래서 문득 상대방을 창문 밖으로 밀어버리고 싶은 ‘욱’하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죠. 그 순간 우리 부부는 해의 대화를 하고 있나요. 아니면 바람의 대화를 하고 있나요?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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