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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미국 대통령 선거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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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먼 나라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한국에서 바라보는 방식은 매우 다양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선거 결과가 한반도 주변 정세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하기 분주할 것이며, 어떤 이들은 후보자나 정당에 대한 개인적인 지지와 소회로 온 마음을 쓰며 한쪽을 응원할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그냥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분주하기 짝이 없는 정치 이벤트를 멀찌감치 관전할 것이다.

코로나로 흔들리는 미국선거 #형식이 바뀌고 양극화도 심화 #미국이 미리 겪는 문제들을 #우리 정치는 감내할 수 있을까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와 극단적으로 심화된 정치적 대립, 그리고 트럼프라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현직 대통령이 겹친 상태에서 치르는 미국 대선은 미국인들이 입을 모아 “우리 생애 가장 중요한 선거”라고까지 일컫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것이 매우 강건하다고 믿었던 미국 민주주의를 근저에서 흔들면서 민주주의 일반, 나아가 한국 정치에 매우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장 당면한 질문은 선거의 형식이 매우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는 점이다. 후보자와 유권자가 만나는 캠페인에서부터 투표방식과 집계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뜻하지 않았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많은 과정들이 비대면으로 진행될 것이며, 특히 선거의 가장 중요한 이벤트라 할 수 있는 전당대회가 이미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다. 전당대회는 오바마 전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연사들이 미리 촬영한 동영상을 보내거나, 혹은 물리적 공간을 뛰어넘어 실시간으로 온라인 연설을 하였고, 전 세계의 수많은 지지자들이 다양한 화상회의나 유튜브 등의 온라인 공간을 통하여 이를 시청하고 댓글을 달았다.

후보자가 유권자들과 악수를 하고 대화하는 일, 대규모 청중들의 환호 속에서 이들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명연설을 남기는 일, 심지어는 일상에서 지인들이 후보자와 정당에 대해 ‘침을 튀기며’ 언쟁하는 일들조차도 이제는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한편에서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직접적인 정치적 토론과 대화가 불가능해진 상황을 개탄하겠지만, 동시에 매우 많은 사람들이 비대면으로 참여할 수 있는 선거형식이 성공적으로 개발되고 수행된다면, 이러한 새로운 형식의 캠페인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라지고 난 이후에도 남게 될 것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던지는 또 다른 질문은 민주주의가, 그리고 선거라는 과정이 과연 얼마나 극단적 정치적 원심력을 견딜 만큼의 인장 강도와 복원력이 있느냐는 매우 근본적인 질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씻을 수 없는 상흔이 짙게 배어있고 여전히 그 보이지 않는 창궐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아직도 마스크를 쓰는 것이 옳은지 여부를 정치적 논쟁으로 남겨놓은 나라. 수 백 년의 인종 갈등이 소수인종에 대한 경찰의 폭압적 살인과 시위로 더욱 격화되고 있는 시간. 그리고 시위대를 향해 총을 겨누어서 기소된 것으로 유명해진 부부가 전당대회에서 후보자 지지연설을 하는 정치.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강건하다고 믿어지던 미국의 민주주의조차도 선거 과정을 통해서 양당 지지자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평행우주를 아우를 수 있는 복원력이 있을지 매우 걱정스럽다.

갈등을 동원하고 차이를 과장하며 경쟁자를 한 표 차이로 이겨야 하는 선거를 우리가 그래도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러한 격렬한 논쟁과 경쟁이 우리가 치러야 했을 피 흘리는 내전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혹시나 상대방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의 미국 선거처럼 양당 지지자들이 상대를 혐오하고 경멸하며 사생결단으로 치닫는 내전같은 선거를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또한 누구나 알고 있다. 하나는 생명의 존속을 위협하는 코로나바이러스이며 다른 하나는 정치공동체의 존속을 위협하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우리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 정치적 승복의 문제에 다다른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선거의 다양한 형식을 바꾸고, 극단적으로 정치적 지형을 악화시킨 곳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만약 패배했을 때 과연 결과에 승복할 것인가 하는 믿을 수 없는 질문들이 이미 제기되고 있다. 그것이 상상의 시나리오는 아닌 것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이미 그 비중과 중요성이 매우 높아진 부재자 투표에서 심각한 부정이 있을 것이라는 트럼프의 트윗들이 이미 미국 선거를 암운처럼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건강과 가정을 위협하고 경제를 파괴하는 것을 지나 이제는 미국의 민주주의 자체를 실제로 뒤흔들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새삼 두려울 따름이며, 우리의 선거를, 정치적 양극화를, 그리고 우리의 민주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를 통해 우리가 새삼 깨닫게 된 역설은 우리는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며, 우리는 결국 이웃과 연대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매우 단순한 사실이 아니었던가.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조차 바라기 힘들어진 시대에 미국의 평탄한 선거를 기원한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