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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환자에 피살 임세원 교수, 의사자 인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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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임세원 교수 추모 그림. [연합뉴스]

임세원 교수 추모 그림. [연합뉴스]

조현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사망하기 직전까지 주변 간호사를 대피시켰던 고(故) 임세원(그림)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의사자(義死者)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2018년 12월 31일 그가 병원에서 사망한 지 1년 9개월 만이다.

법원, 정부 의사자 거부 취소 판결 #유족 “아프게 간 남편 위안 받길” #동료 의사 “판결 듣고 원없이 울어”

보건복지부는 지난 6월 임 교수가 “다른 생명을 구하기 위한 ‘적극적·직접적 행위’를 했다는 근거가 없다”며 의사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유가족이 소를 제기했고 서울행정법원은 10일 이 결정을 뒤집었다.

당시 임 교수가 간호사를 대피시키지 않고 도망쳤으면 살았을 가능성이 있어, 적극적인 구조행위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법원은 복지부에 “의사자 인정 거부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복지부가 항소하지 않으면 임 교수는 의사자로 인정된다.

판결 소식에 임 교수의 유가족은 “아프게 간 남편이 위안받길 바란다”며 “아이들이 아빠의 의로운 모습을 기억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임 교수의 친구로, 자살예방프로그램 ‘보고 듣고 말하기’를 함께 개발한 경희대 정신의학과 백종우 교수도 “잠시 진료를 중단하고 원 없이 울었다.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임 교수는 47세에 삶을 마감했다. 그 역시 우울증을 앓았고 극복했다. 자신의 ‘우울증 경험담’을 담은 저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2016)에서 임 교수는 “이 순간을 살기 위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친구와 동료들의 삶에 대한 관심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적었다.

최준호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총무이사는 “임 선생님의 뜻을 남은 의사들이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의 유가족은 그가 조현병 환자의 흉기에 찔려 사망했음에도 정신적 고통을 겪는 이들에 대한 낙인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여동생 임세희씨는 당시 빈소에서 “(오빠가) 자신의 고통을 고백한 것은 의사조차 고통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리려, 그만큼 사회적 낙인이 없기를 바라서”라며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 없이 적절한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고 했다. 유족들은 임 교수의 장례를 마친 뒤 조의금 1억원을 대한정신건강재단에 기부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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