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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김정은 핵무기' 평가 "부동산 너무 사랑해 못 파는 사람 같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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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2월 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정상회담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2월 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정상회담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부동산을 너무 사랑해서 도저히 팔 수 없는 사람과 비슷하다.”

우드워드 신간『격노』WP·CNN 사전 입수 보도 #트럼프-김정은 주고받은 친서 27통 확보 #트럼프 "김정은 영리함 넘어" 아첨에 넘어가 #"나한테 다 말해…고모부 처형 생생하게 들어" #"美 비밀리에 새 핵무기 시스템 구축" 누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북한 핵무기의 관계를 이렇게 평가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9일(현지시간) 전했다.

이날 WP와 CNN은 ‘워터게이트 특종’의 주인공인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이 오는 15일 펴낼 예정인 신간 『격노(Rage)』 일부 내용을 사전 입수해 보도했다.

우드워드 부편집인은 이 책을 쓰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18차례 보도를 전제로 한 '온 더 레코드(on-the-record)' 인터뷰를 했다고 밝혔다. 인터뷰는 지난해 12월부터 올 7월까지 진행됐으며, 모두 합쳐 9시간 분량에 달한다.

지난해 12월은 북·미 비핵화 협상이 멈춰선 가운데 북한이 "크리스마스 선물" 운운하며 미국을 위협할 때였다. 올 3월 미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5월 인종차별 반대 시위 등 굵직한 현안이 있을 때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시로 우드워드와 인터뷰했다.

오는 11월 3일 미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직 관료, 전직 변호사, 조카, 언론인 등이 쓴 트럼프 관련 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주요 저서 가운데 트럼프를 직접 인터뷰해 쓴 책은『격노』가 거의 유일하다.

트럼프, 김 위원장 핵 집착을 집에 대한 애착에 비유 

트럼프 대통령은 우드워드에게 자신은 김 위원장과 그가 가진 핵무기의 관계를 집주인과 부동산처럼 평가한다고 털어놓았다. “말하자면, 마치 어떤 사람이 어떤 집이 아주 마음에 들어서 도저히 팔 수 없는 거랑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사안을 쉽게 설명하려 할 때 종종 부동산 거래에 비유하는 경우가 있다. 집에 애착을 가진 사람을 예로 들며 김 위원장에게 북핵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보기관 수장들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 같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법이 실효성이 없다고 경고함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우드워드에게 자신은 지금의 항로를 유지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앙정보국(CIA)은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른다고 일축했다.

트럼프는 김 위원장과 세 차례 직접 만난 데 대한 세간의 비판을 의식한 듯 “나는 만났다. 그건 엄청난 일(big fucking deal)"이라며서도 "나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우드워드는 트럼프가 김 위원장과의 관계를 방어할 때 비속어를 썼다고 기록했다.

트럼프 주장과 달리 외교 전문가들은 미국이 잃은 게 있다고 본다고 우드워드는 지적했다. 북한이 오랫동안 반대했던 한·미 연합 군사훈련 연기와 축소했고, 북한 정권이 오래 갈망해 온 국제적 위상과 정당성을 김 위원장이 갖게 됐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2018년 6월 12일 1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싱가포르 카펠라호텔에서 산책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2018년 6월 12일 1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싱가포르 카펠라호텔에서 산책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김정은, 영리함을 넘어 서는 사람"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을 처음 만났을 때 너무나 경이로운 나머지 속으로 “이런 젠장(Holy shit)”이라고 되뇌었다고 털어놓았다. 김 위원장이 “영리함을 훨씬 넘어서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김 위원장과 매우 친해졌다고 우드워드에게 과시하면서 “그는 내게 뭐든지 다 말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이 고모부 장성택을 어떻게 처형했는지 생생한 설명을 들었다는 것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뒷말도 나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개자식(asshole)”으로 생각한다고 우드워드에게 전했다. 김 위원장이 실제로 한 말인지, 트럼프의 생각인지는 불분명하다.

2018년 6월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에게 A4 용지보다 큰 크기의 친서를 전달했다. [뉴스1]

2018년 6월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에게 A4 용지보다 큰 크기의 친서를 전달했다. [뉴스1]

김정은과 주고받은 친서 27통 입수 …트럼프 친서는 "일급비밀"

‘격노’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주고받은 편지 27통이 담겼다. 이 가운데 25통은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김 위원장에게 보낸 친서 내용은 우드워드와 공유하지 않았다. "일급비밀"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날 WP에 공개된 편지 발췌본은 대부분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극찬하는 내용이었다. 김 위원장은 한 편지에서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저와 각하 사이의 또 다른 역사적인 만남을 원한다”고 썼다.

또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이 “소중한 기억”이라면서 “우리 사이의 깊고 특별한 우정이 어떻게 마법의 힘으로 작용할지 잘 보여준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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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은 또 다른 편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각하처럼 힘 있고 뛰어난 정치가와 좋은 인연을 맺게 돼 기쁘다”고 썼다.

2019년 6월 10일 쓴 다른 편지에서 김 위원장은 “전 세계가 관심과 희망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아름답고 성스러운 그 자리에서 각하 손을 굳게 잡았던 그 역사적인 그 순간을 잊을 수 없고 그날의 영광을 다시 재현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우드워드는 책에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자신을 '각하(Excellency)'로 부른 걸 자랑스럽게 얘기했다"면서 "트럼프는 김 위원장의 아첨에 넘어갔다"고 적었다. 2018년 12월 25일 편지에서는 '각하'를 9번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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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워드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보낸 친서는 별도 경로로 입수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김 위원장에게 보낸 편지가 "너무 극비"라며 공유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신에서 "당신과 나는 독특한 스타일과 특별한 우정을 갖고 있다"면서 "당신과 나만이 70년 간의 적대 관계를 끝내고 한반도에 번영의 시대를 가져올 수 있다"고 설득했다.

자신과 김 위원장의 사진을 1면에 실은 뉴욕타임스 지면을 보냈다는 사실은 공개했다. 흰 종이에 마커로 “위원장님, 멋진 사진이고 좋은 시간이었다"고 적어 함께 보냈다고 한다.

CNN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한 달 뒤 답장을 보냈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데 대한 실망감을 강도 높게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명백하게 화가 났고, 당신에게 이런 감정을 숨기고 싶지 않다. 정말로 매우 화가 났다"면서도 "각하께 이렇게 솔직한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는 우정이 있는 것이 무척 자랑스럽고 영광스럽다"고 적었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전에는 절대 웃지 않았다. 그가 함께 있을 때 웃는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우드워드는 이 주장을 전하면서 사실이 아니라고 펙트 체크를 했다.

트럼프는 우드워드에게 올 1월 전화를 걸어 "김(정은)을 조롱하면 안 된다. 당신이 그를 놀려서 지독한 핵전쟁(fucking nuclear war)이 휘말리고 싶지 않다"고 당부했다.

CIA는 정확히 누가 김 위원장의 친서를 구성하고 작성했는지 파악하지 못했지만, 트럼프가 좋아하는 웅장함과 역사의 중심에 서는 것과 아첨을 정확하게 혼합하는 기술로 빚은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2019년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회담이 순조롭게 돌아가지 않자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하늘에 로켓 쏘아 올리는 것 말고는 다른 것을 한 적이 없느냐"고 묻고는 "영화를 보러 가자. 골프를 치러 가자"고 제안했다는 일화도 공개됐다.

"美 푸틴·시 주석도 보지 못한 새로운 핵무기 시스템 개발"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미국과 북한이 일촉즉발 위기로 치닫던 상황을 우드워드에게 설명하면서 ‘군사 기밀’을 발설했다고 WP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나라에서 누구도 하지 못했던 핵무기 시스템을 내가 구축했다. 당신이 한 번도 듣거나 보지 못한 물건이 우리에게 있다. 푸틴(러시아 대통령)이나 시(중국 국가주석)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가진 그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고 말했다.

우드워드는 트럼프 발언을 확인하기 위해 취재했고 익명 취재원으로부터 미군이 비밀리에 새로운 무기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썼다. 이 취재원은 기밀 사항이기 때문에 자세한 정보는 제공할 수 없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공개한 데 대해 매우 놀랐다고 전했다.

우드워드는 트럼프 행정부 국가안보팀이 북한과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2017년 북한과 핵전쟁에 근접했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고 적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우드워드에게 "우리는 그게 진짜인지, 허세인지 결코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CNN은 전했다.

당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북한의 발사에 대비해 옷을 입은 채로 잠을 잤고, 기도하기 위해 성당을 자주 찾았다고 우드워드는 적었다.

"난 왜 독재자와 친할까? 나한테 설명 좀 해 줘"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독재자들과 더 잘 지낸다는 점을 시인했다. 그는 우드워드에게 “재미있는 건, 내가 맺는 관계를 살펴보면, 나는 상대가 더 거칠고 더 비열할수록 그들과 더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왜 그런지 내게 설명 좀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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