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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위치추적 되나요” 간보다 붙잡힌 보이스피싱 일당

중앙일보

입력

유심 [사진 pixabay]

유심 [사진 pixabay]

“창고 같은 곳에 감금돼 있는데, 제 위치 추적 되나요? 위치 추적요?”

119에 전화가 걸려 왔다. 지난 7월 13일 오후 4시쯤 걸려온 전화속 목소리는 낮은 음성의 남성이었다. 그는 감금을 당했다며 위치추적이 되는지를 집요하게 물었다. 이후 전화는 바로 끊겼다. 발신지는 서울 지하철 건대입구역 인근, 소방서는 이 남성의 신고를 관할 경찰서로 인계했다.

경찰, 119전화 인게받아 수사 착수 

9일 서울 광진경찰서 관계자는 "당시 소방서에서 구조 요청 전화를 인계받고 건대입구역 사거리를 기준으로 반경 300m가량을 정말 샅샅이 뒤졌다"고 말했다. 집집마다 찾아다녔지만 감금된 사람도, 창고형 구조물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경찰은 종종 있는 장난전화일 수도 있다고 여기다, 발신 번호가 개통된 휴대전화 대리점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

여권으로 알뜰폰 개통 수상히 여겨  

경찰은 소방서 신고전화에 찍힌 전화번호가 지방에 위치한 한 휴대전화 대리점에서 개통된 점에 주목했다. 그런데 단말기 없이 휴대전화에 꽂을 수 있는 유심과 전화번호만 개통했고, 명의자는 외국인이라는 점이 특이했다. 더구나 이 대리점에서는 외국인 명의로 ‘알뜰폰’ 번호 200여개가 무더기로 개통한 것도 이상했다. 또 이 과정에서 대리점 측에 누군가가 명의 확인용으로 여권 수백장을 텔레그램으로 전송한 것도 수상했다.

보이스피싱 사기치려 수백개 번호 개통  

경찰은 곧장 여권 사본 수백장을 전송해 유심칩을 대량 구매한 A씨를 찾아냈다. A씨를 조사했더니 그는 구입한 유심과 개통한 전화번호를 몇 단계의 중간책을 거쳐 중국에 있는 '보이스피싱 총책'에게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경찰은 A씨가 중국에 넘긴 유심 중 일부가 수천만원대의 보이스피싱 사기에 이용된 정황을 파악했다.

2018년 경찰이 보이스피싱 '중계소'에서 발견한 심박스(SIM box). 심박스는 슬롯 하나하나에 각각 다른 번호의 유심을 256개까지 장착할 수 있다.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서울영등포경찰서 제공]

2018년 경찰이 보이스피싱 '중계소'에서 발견한 심박스(SIM box). 심박스는 슬롯 하나하나에 각각 다른 번호의 유심을 256개까지 장착할 수 있다.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서울영등포경찰서 제공]

위치추적되나 시험하다 덜미 잡혀  

경찰은 현재까지 유심을 통해 전화번호를 불법 개통해 중국으로 넘긴 A씨와 중간책 등 8명을 검거하고, 추가 범죄를 막기 위해 해당 전화번호를 모두 정지시켰다. 경찰의 조사 결과 보이스피싱 일당이 119에 허위 신고 전화를 했던 건 개통한 알뜰폰 번호가 위치 추적이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A씨가 개통한 번호로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하기에 앞서 소방서를 통해 위치추적 여부를 시험하다 결국 꼬리가 밟힌 것이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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