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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예방 상담원 가슴에 남는 말…"원하는 삶 살고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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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한국 사회의 오랜 난제다.15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10일 ‘세계 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자살예방 상담에 뛰어든 90년대생 상담원 조승하(30)씨와 박검지(29)씨를 미리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20대의 생명의전화 상담기

서울 성북구 오패산로에 위치한 생명의전화종합사회복지관에서 상담원 조승하(30)씨와 박검지(29)씨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제공]

서울 성북구 오패산로에 위치한 생명의전화종합사회복지관에서 상담원 조승하(30)씨와 박검지(29)씨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제공]

“상담자가 그러더라고요, 선생님은 지금 원하는 삶 살고 있냐고.”   

‘SOS생명의전화’ 상담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씨는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박씨는 “가정폭력으로 힘들어하던 20대 남성분과 라포(Rapport, 상담 과정에서 형성되는 신뢰와 친밀감)가 형성됐을 때쯤 ‘선생님은 힘든 점 없냐’는 질문을 받았다”며 “타인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는데 이 말로 저를 되돌아볼 기회를 얻었고 도리어 큰 위로를 얻었다”고 밝혔다.

‘2030 자살예방 상담원’인 박씨와 조씨는 SOS생명의전화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SOS생명의전화는 2011년부터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한국생명의전화와 운영 중인 사업이다. 마포대교 등 20개 교량에 75대의 전화기를 설치해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에게 전화를 유도해 마음을 돌리거나, 자살 시도 광경을 목격한 시민이 119상황실에 신고할 수 있도록 한다. 전화 상담은 365일 24시간 이용 가능하다. 조씨는 3년차, 박씨는 4년차 상담원이다.

교량에 설치된 SOS생명의전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제공]

교량에 설치된 SOS생명의전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제공]

두 사람이 이른 나이에 자살예방 상담을 하게 된 데에는 가족 영향이 컸다. 조씨는 어머니가 이곳에서 봉사하셨는데 사람들이 “‘훌륭한 일하고 계신다’고 해 어릴 때부터 꿈꿨다”면서도 “정작 어머니가 만류했지만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대학 졸업 후에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박씨도 “학교 상담 선생님이 청소년 시절 방황하던 동생의 마음을 열어준 기억이 난다”며 “이걸 본 뒤 나도 가족에게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 봉사를 바로 시작했다”고 밝혔다.

"남성 한 분은 전화기를 들고 30분간 펑펑 울기만 하시더라고요." 

어려울 때도 많다. 조씨는 “사람들이 처한 환경이 다 다르기 때문에 내가 가진 경험을 바탕으로 상담자의 고름을 짜주기란 정말 어려운 인 것 같다”며 “한 번은 20~30대 남성 분께서 전화기를 들고는 30분 간 내내 펑펑 눈물을 흘리셨는데 그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전해져 가슴이 아팠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박씨 역시 “취중 전화나 세상에 대한 화가 가득하신 분에게 전화올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제 노력으로 안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저에 대한 추스름이 필요한 시간들이 꽤 많다”고 설명했다.

SOS생명의전화 상담실에 놓여진 비상벨 버튼. 상담원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벨을 누르면 상담실 바깥에 비상벨이 울린다. 박현주 기자

SOS생명의전화 상담실에 놓여진 비상벨 버튼. 상담원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벨을 누르면 상담실 바깥에 비상벨이 울린다. 박현주 기자

고민이 깊어질 때에는 멘토에게 조언을 얻는다. 조씨는 “‘저 그냥 죽을게요’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는 분이 있었는데 너무 놀라 베테랑 선생님께 조언을 구했다”며 “신원 확보하고 신고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듣곤 비상 호출벨을 눌렀던 기억이 있다”고 답했다.

또래 상담자의 전화도 종종 울린다. 생보재단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0년 6월까지 이뤄진 자살 위기상담 8113건 중 가장 많이 이용하는 연령대는 20대(32.7%)와 10대(30.8%)로 나타났다.

서울 성북구 오패산로에 위치한 생명의전화종합사회복지관에서 상담원 박검지(29)씨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제공]

서울 성북구 오패산로에 위치한 생명의전화종합사회복지관에서 상담원 박검지(29)씨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제공]

박씨는 “각자 연령대에 맞는 아픔과 어려움이 있지 않느냐”며 “또래인 20대 상담자에게 종종 전화가 오는데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해 서로 이야기하며 치유하는 형식의 ‘공감’이 이뤄지는 것 같다”고 했다. 조씨 역시 “채용 마지막 전형이 남은 취업 준비생이 ‘간절하게 원하는 자리인데 떨어질까 불안하다’고 상담한 적 있었다”며 “남이 봤을 땐 떨어진 게 아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 역시 멀지 않은 시기에 같은 간절함을 느낀 적이 있기에 얼마나 힘들지 공감 갔다”고 말했다.

이들이 꼽는 2030 상담자의 공통점은 ‘외로움’이었다. 박씨는 “2030은 취업이나 연애 문제로 어려워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힘든 상황에서 내 말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절망감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조씨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취업한 2030 남성 상담자가 친구들에게 직장생활에서의 어려움을 말했지만 ‘취업도 했는데 배부른 소리 한다’는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며 “지방에 계신 부모님께는 걱정 끼쳐드릴까 봐 말을 못해 상담 내내 힘겨워했다”고 설명했다.

“도움은 가까운 곳에 있으니 힘들 떈 언제든 연락 주세요.”

그러면서 조씨는 “요즘처럼 비가 잦게 내리면 위급상황이 많아 긴장하게 된다”면서도 “도움은 ‘전화’처럼 가까운 곳에 있으니 언제든 연락 달라고 말하고 싶다”고 당부했다. 박씨 역시 “얼마 전 어떤 분이 ‘5년 전 군인이었을 때 여기서 도움 받아 지나가는 길에 감사 인사 전하고 싶어 전화기를 들었다’고 해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며 “이분이 느낀 감정 느낄 수 있게 앞으로 전화 주실 내담자에게 ‘선생님은 너무 귀한 사람이라고, 있어 줘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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