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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주문이 된 검찰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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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사회디렉터

김원배 사회디렉터

“검찰의 선택적 수사, 선택적 정의로 칼이 무뎌지거나 아예 칼집에서 빼지 않는 등 그릇된 방향으로 지나치게 왜곡한 경우를 많이 목격했다.”

추미애 장관 아들 휴가 미복귀 의혹 #서울동부지검 8개월째 수사 끌어 #수사하면 좌천되는데 누가 나설까 #검찰개혁이 허물 덮는 도구로 전락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6월 25일 ‘선진 수사기구로 출범하기 위한 공수처 설립 방향’이라는 주제로 열린 공청회에서 한 말이다. 과거 정권의 검찰 수사 행태를 비판한 것이지만, 이 지적은 지금도 유효하다.

추 장관은 역대 어느 법무부 장관보다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법률 조항에나 존재하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했고 검사 인사권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을 거의 무력화했다. 검찰이 별도의 독립기관임에도 윤 총장은 자신이 거느리는 대검 참모 인사권도 행사하지 못했다. 윤석열 사단이 몰락한 대신 추미애 군단이 부상했다. 추 장관 쪽에선 이를 검찰개혁 내지 민주적 통제라고 포장한다.

하지만 오늘날 ‘추미애 검찰’의 현실은 어떤가. 서울동부지검이 맡은 추 장관 아들의 휴가 미복귀 의혹 수사는 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추 장관 아들이 소속된 부대의 장교가 “추 장관(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보좌관이 휴가 연장과 관련해 전화를 했다”는 진술을 했지만 서울동부지검 수사팀이 이를 조서에 넣지 않았다는 의혹까지 폭로됐다. 진술이 나왔는데 이를 기재하지 않았다면 수사 의지가 없는 것으로 의심받기 딱 좋은 일이다. 누구 말마따나 칼이 무뎌진 것일까.

조국 전 장관 일가의 비리 의혹 사건 이후 검찰의 공보 규칙이 강화되면서 수사는 깜깜이가 됐다. 피의사실 공표를 막는다는 명분이었지만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는지 시늉만 내는 것인지 알기 어렵게 됐다는 점은 분명하다.

서소문 포럼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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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구체적인 검찰 수사 상황을 아는 방법은 검찰 조사를 받은 사람의 얘기를 듣는 것이다. 이번 추 장관 아들 의혹도 같은 부대에서 근무한 동료 병사가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런데도 언론이 이런 걸 보도하면 ‘검언유착’으로 몰고 간다. 추 장관은 아들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국회에서 “검언유착이 심각하다” “검언유착이 아닌가 의심할 때도 있다”고 언급했다.

추 장관 보좌관이 전화했다는 진술도 누락했다는 의심을 받는 서울동부지검이 언론과 유착할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서울동부지검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검찰개혁과 검언유착은 특정인의 허물을 덮고 지지층을 결집하는 마법의 단어가 됐다. 비리 의혹을 받는 정권 핵심 인사에게 불리한 보도는 검언유착이며 검찰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이 만든 것이란 프레임이 작동한다.

추 장관 보좌관 출신인 서울시 의원은 최근 언론과 통화에서 추 장관 아들의 휴가 미복귀 의혹에 대해 “본질은 검찰개혁”이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는 “노상방뇨를 하다 경찰에 걸렸을 때 ‘문제는 검찰개혁이다’라고 외쳐보자”며 “그러면 당신은 잡범에서 졸지에 정의의 투사로 변신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추 장관은 아들 관련 논란이 확산하자 지난 7일 “신속하고 철저히 수사하여 실체를 규명할 것을 국회 답변 등을 통해 수차 표명했다. 사건 관련 보고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이 누가 있는가. 정권에 불편한 수사를 했거나 장관에게 반기를 들면 여지없이 좌천된다.

반면 정권이 관심이 있는 수사는 무리수를 두더라도 승진을 한다. 지난 7월 말 압수수색 과정에서 한동훈 검사장과 몸싸움을 한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은 독직폭행 혐의로 고발돼 감찰 대상에 올랐지만 최근 인사에서 광주지검 차장검사로 영전했다. 검찰 내부에선 “수사를 안 하고 질질 끌면 영전, 수사를 제대로 하면 좌천되는데 누가 나서겠느냐”는 얘기가 나온다고 한다. 추 장관이 진정 신속한 수사를 원한다면 구체적인 지시를 해야 한다.

검찰개혁은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받는 수사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검찰 수사의 중립성이 보장돼야 한다. 중립을 지키려면 일정한 독립성이 있어야 하고, 내부 견제가 작동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검찰 인사에서 보듯 검찰개혁과 민주적 통제라는 이름으로 이를 허물어버렸다. 아무리 검찰개혁을 외친다고 해도, 검찰이 선택적 수사를 하거나 권력 앞에서 무뎌진 칼이 된다면 말짱 도루묵일 뿐이다.

김원배 사회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