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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윤영찬과 포털에 던진 이재웅의 경고

중앙일보

입력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윤영찬 의원 포털에 외압 논란..카카오 'AI편집이라 외압불가' #다음설립자 이재웅, 윤영찬과 카카오 모두에 일침 날렸다

다음 창립자 이재웅 (당시) 쏘카 대표가 작년 12월 18일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4차 산업혁명 페스티벌 2020'에 참석해 '모빌리티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을 주제로 기조강연하고 있다. [뉴스1]

다음 창립자 이재웅 (당시) 쏘카 대표가 작년 12월 18일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4차 산업혁명 페스티벌 2020'에 참석해 '모빌리티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을 주제로 기조강연하고 있다. [뉴스1]

1.
참으로 창피한 사건이었습니다.
여당(더불어민주당) 윤영찬 의원은 8일 야당(국민의힘) 원내대표의 국회연설이 포털(다음카카오) 메인 뉴스에 짠 오르자 보좌관에게 다음과 같은 3줄의 문자를 보냈습니다.

‘이거 카카오에 강력히 항의해 주세요.’
‘카카오 너무하군요.’
‘들어오라고 하세요.’

2.
윤 의원은 화가 났었던 겁니다.
전날 있었던 여당 이낙연 대표의 연설이 다음카카오 메인 뉴스에 오르지 않았는데, 왜 야당 연설은 메인에 올려주느냐는 항의가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실제로는 이낙연 연설도 메인에 올랐는데, 윤 의원이 보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윤 의원이 흥분한 것은, 이낙연 대표가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같이 일하던 시절부터 친형처럼 가깝게 지냈던 인연도 작용한 듯합니다.

3.
오해든 착각이든, 윤 의원이 '형평성에 맞지않다'며 항의까지는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마지막 줄. ‘들어오라고 하세요’입니다. 인허가권을 쥔 관공서에서 관할 민간업체를 호출하는 느낌이 묻어납니다.

그런 느낌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닙니다. 윤 의원은 문재인 청와대의 초대 국정홍보수석으로 지난해말까지 근무했습니다. 그리고 청와대에서 나오자마자 지난 총선에서 당선돼 현재 소속 상임위원회가 포털을 관할하는 과방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입니다.

현정권 출범 이후 포털 입장에선 최고의 갑입니다. 포털은 방대한 사업의 대부분을 인허가 받아야 하는 업종이기에 갑이 특히 무섭습니다.

4.
‘들어오라고 하세요’는 보좌관에 보낸 문자입니다. 실제로 카카오 관계자가 불려왔다네요.

근데 이게 처음일까요? 윤 의원은 청와대에 들어가기 이전 네이버 부사장까지 지냈습니다. 포털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런 사람이 과연 충동적으로 카카오를 불러들였을까요.
아닐 겁니다. 상식적으로 추정하자면, 윤 의원은 이처럼 포털의 편집에 불만이 있을 경우 직접 불러 항의했고, 실제로 그 항의는 효과가 있었기에 반복해왔을 겁니다.

5.
이 부분에 대해선 포털이 화들짝 놀랍니다. 절대 그런 적 없다고. AI(인공지능)가 자동으로 하기에 전혀 외압이 안통한다고 밝혔습니다.

포털은 뉴스를 생산하지 않지만 사실상 가장 강력한 언론의 영향력을 즐기는 플랫폼입니다. 우리 국민의 대략 80%가 포털에서 뉴스를 보니까요.
그래서 포털에겐 언론으로서의 책임감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그런 따가운 눈총을 받는 포털 입장에서‘정치적 외압에 휘둘렸다’고 인정하면 큰 일 나겠죠.
그렇지 않아도 각종 가짜 저질 정보로 욕먹고 있는 처지인데, 정치편향까지 더해지면 무책임의 끝판왕이 됩니다.

그래서 모든 책임을 AI에게 돌렸습니다. 기계가 자동으로 하는데 무슨 외압이 가능하냐고..

6.
과연 그럴까요. AI가 뭔지 모르는 사람은 이런 대목에서 무식하단 소리 듣기보단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외면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기막힌 타이밍에 업계의 거물 이재웅(다음 설립자)이 나섰습니다. 이재웅은 오늘(9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습니다.

‘뉴스편집을 AI가 하면 뉴스의 중립성은 괜찮은 걸까요? 많은 사람들은 AI가 가치중립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AI를 설계하는 사람의 생각이 반영될 수 밖에 없습니다..AI가 했으니까 우리는 중립적이라는 이야기는 윤의원의 항의만큼이나 무책임한 답변입니다.’

7.
거물답게 핵심을 찔렀습니다. AI도 결국은 사람이 만들고 운영하니까요. 포털 역시 사람의 손길이 작용할 겁니다.
그걸 알기에 윤 의원은 불러서 항의를 해왔겠죠. 물론 증거는 없습니다. 어떻게 운영되는지 공개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이재웅의 결론은 ‘어떻게 뉴스편집을 하도록 설계했는지 밝혀라’입니다. 흔히 말하는 알고리즘을 공개해서 검증을 받으라는 요구입니다.
포털은 알고리즘을 영업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회사를 만든 사람이 공개하라고 주장하니 할 말 없게 됐습니다.

8.
마지막으로 가슴을 때리는 대목은, 이재웅이 알고리즘 공개를 요구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도 알지 못하는 편향과 차별을 기계에 의해 강요받고도 책임을 묻지 못하는 슬픈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까요.’

매우 철학적인 반성입니다. 윤영찬도 포털도 비겁하게 AI 뒤로 숨으면 안됩니다. 알고리즘을 공개해야 합니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