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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딜펀드, 민간 잘하는 분야 넘보지 말고 성과 조급증 버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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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금융위원회는 토요일이던 지난 5일 오전 뉴딜펀드에 대한 7문7답 자료를 배포했다. 해당 자료는 뉴딜펀드가 지난 정부에서 추진하던 녹색펀드, 통일펀드 등과는 ‘차별화된 강점’을 지니고 있다는 내용 등이 담겨있다. 금융위가 주말까지 반납한 채 여론전에 나선 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세일즈에 나선 뉴딜펀드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후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홍콩계 증권사인 CLSA는 7일 ‘문재인 대통령이 펀드매니저 데뷔했다(Moon’s debut as a fund manager)’는 보고서에서 뉴딜펀드를 “손실을 세금으로 보전하는 펀드”로 평가했다. 뉴딜펀드에 대한 제언을 요청한 전문가들도 입을 모아 "민간 부문을 위축시킬 것"(김광두 국가마래연구원장)이라는 우려부터 내놓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뉴딜펀드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조급증을 버리고 투자처 선정하고, 민간이 하지 않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문가가 본 펀드 성공의 조건 #인프라는 사업성 분석에만 1~2년 #문 정부 임기 내 다 하려해선 안돼 #역량있는 벤처캐피털에도 기회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3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국판 뉴딜 금융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3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국판 뉴딜 금융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①단기간 투자대상 발굴 욕심 버려라=정부는 정책형 펀드 실무준비단을 구성하는 등 뉴딜펀드 출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뉴딜펀드가 시장에 나오는 건 빨라도 내년 상반기라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다. 이 때문에 초기에 성과를 내기 위해 면밀한 사업성 분석 없이 투자처를 무리하게 선정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인프라 사업의 경우 민간 운용사도 사업성 분석에만 1~2년을 쓰는 등 투자처 발굴에는 장시간이 소요된다.

황인창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민간에서 그동안 발굴하지 못한 사업성이 있는 분야를 단기간에 발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단기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장기간 꾸준한 수익을 줄 수 있는 투자처 발굴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시장에서는 문재인 정부 임기가 얼마 남지 않는 상황에서 펀드 성공이 가능할 것이냐는 의문이 가장 많을 것”이라며 “장기적 안목에서 안정적 수익이 가능한 곳과 벤처 기업 등 고위험이지만 큰 수익률이 나오는 곳을 잘 묶어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딜펀드에 관한 말말말.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뉴딜펀드에 관한 말말말.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② 20조원 숫자에 집착하지 마라=정부는 뉴딜펀드는 투자처를 발굴하기 전부터 20조원이라는 금액부터 못 박았다. 이 중 13조원이 민간 부문에서 나오는 금액이다. 한국형 뉴딜사업 전체 재원 160조원 중 10%가량을 국민펀드로 조성한다는 당초의 아이디어가 그대로 금액에 반영된 셈이다. 구체적인 투자처를 정해놓지 않고 민간부문에 금액부터 할당하다보니 ‘관제펀드’ 논란도 나오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출신의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그동안 보여주기에 집착해 정확한 수요조사 등도 없이 10조, 20조원 등을 투자하겠다 등 큰 금액만 제시해 놓고 제대로 집행조차 못한 경우도 많았다”며 “정확한 수요조사 등을 통해 실제 필요한 금액에 근접하게 펀드를 조성해 운용하는 게 훨씬 현실적인 접근 방식”이라고 말했다.

뉴딜펀드 개념도.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뉴딜펀드 개념도.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③민간이 할 수 있는 분야는 민간에=정부는 관제펀드 논란을 빚으면서도 뉴딜펀드를 조성하는 이유로 ‘마중물’ 역할을 들고 있다. 정부가 나서 신성장 동력 투자를 하면 더 큰 민간 투자가 따라온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논리에 대해 구축 효과(정부 지출로 오히려 민간투자가 위축되는 현상)에 대한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뉴딜펀드에 대해 민간이 잘 하는 일은 민간에 맡겨 큰 판을 깔아주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실제 정부가 투자처로 들고 있는 데이터센터 구축은 카카오가 4000억원을 들여 개발 계획을 밝히는 등 민간 분야의 투자가 이미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뉴딜펀드 정통한 금융권 관계자는 “데이터센터의 경우 금융사나 민간기업이 벌어들이는 수익을 일반 국민들에게도 나눠줄 필요가 있다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 같아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광두 원장은 “뉴딜펀드는 민간에서 쓸 돈을 정부가 가져가 정부 주도 사업에 쓰는 만큼 민간부문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민간 부문이 위축되면 코로나19가 끝난 후 세계 경제 전체가 회복될 때 복원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규제를 대폭 완화해주고 기업의 사기를 올려주면 투자가 늘어날 텐데, 그런 노력 없이 규제를 강화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정부가 주도하는 흐름으로 가고 있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④깜깜한 운용사 선정 기준 명확히=정부는 뉴딜펀드 구상을 발표하며 운용사 선정 기준은 아직 밝히지 않은 상태다. 정부는 올해 안에 해당 기준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현재까지는 일반 국민 참여를 열어두는 투자 구조를 짠 운용사 등에 가산점을 주는 방식만 공개됐다.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을 지낸 한동대 김학주 ICT창업학과 교수는 “현대차나 LG화학처럼 익히 알려진 회사에만 투자할 것이 아니라면 운용사 선정에 좀 더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시장에 알려지지 않은 회사를 발굴해 성장시킨 경험이 많은 벤처캐피탈 등에 기회를 주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운용사들은 투자처에 대한 아이디어와 구조를 먼저 제시하게 해 이를 평가해 선정하는 구조로 진행할 것”이라며 “운용사별로 이미 투자처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안효성·문현경·성지원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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