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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간 中악당 없는 美영화···눈치보는 헐리우드 ‘불편한 진실’

중앙일보

입력

"중국은 헐리우드의 상상력을 검열하고 있다."

디즈니 영화 뮬란의 한 장면. [사진 디즈니]

디즈니 영화 뮬란의 한 장면. [사진 디즈니]

도발적 제목. 미국 언론 악시오스가 달았다. 중국이 헐리우드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들라는 거다.

그런데 이런 일. 악시오스는헐리우드가 알아서 하고 있다고 본다. 중국 정부와 자본이 좋아할 일을 알아서 한다는 말이다. ‘자기검열(self-censorship)’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기 검열이라니. 말이 될까.

악시오스는 못 믿으면 따져보라고 한다.

헐리우드에 중국 정부나 중국이 악당으로 나오는 영화가 있냐고.

영화 에어포스원 한 장면. [중앙포토]

영화 에어포스원 한 장면. [중앙포토]

생각해보자. 실제 그렇다. 헐리우드는 영웅과 싸우는 ‘빌런(악당)’을 현실 세계서 찾는데 고수다. 냉전시기엔 소련이 담당했고, 냉전 이후에도 상당 기간 러시아가 했다. 9.11 테러 후엔 중동 테러리스트가 등장했다. 하지만 중국인 테러리스트, 중국 스파이가 악당인 영화는 기자 기억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오사마 빈 라덴 암살 작전을 그린 영화 제로다크서티. [사진 컬럼비아픽처스]

오사마 빈 라덴 암살 작전을 그린 영화 제로다크서티. [사진 컬럼비아픽처스]

중국과 미국이 지금처럼 적대관계가 아니니 그런 것 아닌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헐리우드는 흥행과 소재만 된다면 해당 국가가 언짢게 생각할 역사도 영화로 만든다. 악시오스는 “헐리우드는 영화 ‘호텔르완다’ 처럼 집단 학살 등 반인권적 상황에 대한 대중의 기억을 일깨우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중국과 관련해 ‘불편한 진실’을 다룬 미국 상업영화는 최근엔 없다.

생각해보니 있긴 하다. 

티벳에서의 7년.[사진 컬럼비아픽처스]

티벳에서의 7년.[사진 컬럼비아픽처스]

오래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3년 전이다. 97년 개봉한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티베트에서의 7년’이다. 같은 해 개봉한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쿤둔’은 달라이 라마의 생애를 다뤘다. 중국에서 재판을 받는 리처드 기어가 나오는 영화 ‘레드코너’도 97년에 나왔다. 하지만 세 영화 제작사는 이후 모두 중국 활동에서 큰 불이익을 받는다. 중국 정부가 불편해하는 티베트 침략, 재판제도 문제를 다뤘다는 이유다. 중국 정부의 조치는 수년간 지속된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1997년 작품인 쿤둔. 달라이 라마의 생애를 다뤘다.[사진 컬럼비아픽처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1997년 작품인 쿤둔. 달라이 라마의 생애를 다뤘다.[사진 컬럼비아픽처스]

이는 헐리우드 영화판에 큰 트라우마를 남긴다. 앤 코커스 버지니아대 교수는 “(이때부터)헐리우드에서 자체 검열이 유행병처럼 퍼졌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중국과 관련한 부정적인 내용의 정통 상업영화가 헐리우드에서 나오지 않는 배경이다.

경향은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 중국 영화시장은 미국을 넘어서려 한다. 문화·인권 관련 비영리단체 펜아메리카에 따르면 미국의 2019년 박스오피스 매출은 114억 달러다. 펜아메리카는 올해 중국의 매출이 이를 추월할 것으로 추정했다.

슈일러 무어 파트너 변호사는 악시오스에 “10년 동안 (헐리우드영화에서)어떤 나쁜 중국인도 보지 못했을 것”이라며 “중국에 반하는 주제가 있는 원고를 보면, (제작사) 고객에게 ‘결코 중국에선 배급할 수 없을 것’이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영화 ‘뮬란’은 이런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영화다.

영화 뮬란의 한 장면.[사진 디즈니]

영화 뮬란의 한 장면.[사진 디즈니]

9월 개봉하는 이 영화는 1998년 나온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실사판이다. 헐리우드 영화지만 내용과 출연진은 사실상 ‘중국제(中國製)’다. 원작이 중국 남북조시대 악부시집(樂府詩集)에 실린 목란사(木蘭辭)다. 아버지 대신 전장에 나가 국가와 가족을 구하는 여자 영웅 이야기다.

영화 뮬란 출연진들. [사진 디즈니]

영화 뮬란 출연진들. [사진 디즈니]

배우는 모두 중국계다. 송승헌과 교제했던 걸로 유명한 중국계 미국 배우 류이페이(유역비)가 주인공 뮬란을 연기했다. 리롄제(이연걸), 전쯔단(견자단), 궁리(공리) 등 90년대 중국과 홍콩 대표 배우가 출연한다.

정작 이 점이 미국에선 흥행 마이너스 요소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미국 내 반중정서는 올해 불이 붙었다. 이에 편승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갈등을 대놓고 내세운다. 실제로 디즈니는 미국에서 뮬란을 디즈니의 동영상 스트리밍서비스디즈니플러스로 공개하기로 했다. 중국과 한국 등 해외에서 극장 개봉을 하는 것과 대조된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여전한 것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미국 내 여론을 의식한 듯 보인다. 이마저도 반응이 싸늘하다. 디즈니 플러스 가입자는 별도로 29.99달러를 내야 ‘뮬란’을 볼 수 있다.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의 온라인 설문 조사에서 가입자 82%가 ‘뮬란’을 안 볼 거라고 했다.

그래도 디즈니는 ‘뮬란’의 중국 흥행에 기댈 태세다.

지난 3월 미국 헐리우드에서 열린 영화 뮬란 월드 프리미어 행사에서 주연 배우 류이페이가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3월 미국 헐리우드에서 열린 영화 뮬란 월드 프리미어 행사에서 주연 배우 류이페이가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홍콩 민주화 시위 당시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는 발언으로 친중 배우로 거듭난 류이페이에 대한 중국 내 호감도 덕을 보려는 거다. 중국 전통소재에 친중 배우 주연인 작품. 중국 당국이 흥행 지원사격을 해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앞으로 헐리우드의 태도가 바뀔 수도 있다. 미·중 신냉전 상황은 이후에도 지속할 것이다. 미국 정부가 헐리우드군기 잡기에 나설 수 있다.

[악시오스 캡처]

[악시오스 캡처]

하지만 당장은 힘들어 보인다. 악시오스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 대부분의 극장이 문을 닫아 영화산업은 압박을 받고 있다" 며 "이러한 경제 격변은 (헐리우드)제작사가 중국에 맞설 동기가 더 사라져 감을 뜻한다"고 전망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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