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천공항이 비정규직 제로 성지라면서 왜 해고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의 인프라’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왜 잘 다니던 직장에서 내쫓습니까. 이유도 얘기 안 합니다. 그냥 나가랍니다.”

직고용 강행에 이유없이 해고된 #21년차 40대 전문직 가장의 울분 #“반대하자 내 편 아니라며 멀리해” #“공정의 가치를 묻는다”에 답해야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인국공)에서 일하다 해고된 이종혁(43)씨는 울분부터 토했다. 그를 4일 만났다. 장기호 인국공노조 위원장, 공민천 인천공항보안검색서비스노조 위원장, 공인수 인천공항보안검색운영노조 위원장과 함께였다.

이씨는 인터뷰 내내 입을 앙다물고, 어깨를 의식적으로 펴려 힘을 주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뭔가를 참는 것처럼 보였다. 눈물이었다. 지난달 13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열린 집회 때 흘린 눈물을 다시는 안 보이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울지 않으려 했는데 나도 모르게 주르륵 흘러내리더군요.” 이 집회에는 직고용 대상인 인국공 5개 자회사 노조가 참여했다. 지난해까지 비정규직으로 불리던 그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공사의 자회사 또한 공기업이다. 나는 그곳의 정규직이다”라고 했다.

이씨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야생동물통제관리 부문에서 일했다. 항공기와 조류의 충돌 사고를 막기 위해 공항 인근의 새를 쫓고, 쥐와 같은 동물의 서식지를 제거하는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전 세계 모든 공항이 전문직으로 여기는 직종이다. 이씨는 이 직업을 가지려 수렵면허증, 총포허가증, 1종보통 운전면허증을 취득했다. 21년 동안 근무했다. 근무 평점으로 문제된 경우도 없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직고용 사태로 해고된 (오른쪽부터) 이종혁씨와 직고용 중단을 요구하고 있는 공민천 보안검색서비스노조, 공인수 보안검색운영노조 위원장은 ’우리도 더불어민주당 당원이다. 정부와 여당은 돕기는커녕 우리를 내 편이 아닌 저항세력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인천국제공항공사 직고용 사태로 해고된 (오른쪽부터) 이종혁씨와 직고용 중단을 요구하고 있는 공민천 보안검색서비스노조, 공인수 보안검색운영노조 위원장은 ’우리도 더불어민주당 당원이다. 정부와 여당은 돕기는커녕 우리를 내 편이 아닌 저항세력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그런 그에게 시련이 닥친 건 정부가 정규직화의 방향을 급선회하면서다. 공사 소속이 아닐뿐 이미 정규직인 자신들을 정규직으로 대접하는 대신 직고용을 천명했다. 갑자기 공사로부터 “직고용 채용 절차를 진행한다”는 통보가 날아들었다. 이때만 해도 그는 “별일 있겠는가”라고 생각했단다. 20년 넘는 경력이 든든한 뒷배가 될 줄 알았다. 1차 직무적성평가와 2차 직무면접을 별 어려움 없이 통과했다. 한데 3차 최종면접에서 탈락했다. 7월 말이었다. 그리곤 ‘8월 11일까지 짐을 싸라’는 통고를 받았다. 이런 식으로 쫓겨난 자회사 정규직이 보안검색·소방대 등의 자회사에서 지금까지 47명이다.

이씨는 공사에 해고 사유를 물었다. 공사는 답 대신 “이의신청을 하라”고 했다. 이의신청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8월 13일 e-메일로 결과를 통보받았다. ‘기각’ 딱 두 글자뿐이었다. 이씨는 지금도 해고된 까닭을 모른다. 그는 “20여 년을 문제 없이 일했는데, 최종 면접에서 떨어질 이유가 없다. 이유를 알아야 소명이라도 할 것 아닌가. 소명 절차도 없다. 이게 이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고, 사람 중심 정책인가”라고 말했다.

해고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씨는 이후에도 회사에 출근했다. 그러나 사원증의 출입 기능이 정지돼 출입을 봉쇄당했다. 그에겐 아내(42)와 사이에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세 자녀가 있다. 며칠 전 막내와 둘째가 이씨에게 로또 번호를 건넸다. “1등 당첨될 거야. 그러면 (아빠가) 돈 못 버니 (당첨금으로) 장난감 사고 맛있는 거 먹을 수 있어”라면서다. 먹먹해서 한동안 말을 못했다고 한다. 부모님은 집회에서 삭발한 그를 TV 뉴스로 접하고 해고 사실을 알았다. 부모님과 처가에서 생활비를 보태줘 근근이 생계를 꾸리고 있다. 공민천 위원장은 “고용 안정을 위해 자회사 정규직에 합의했다. 가정을 파괴하고 실직자를 양산하는 직고용 절차를 중단해달라”고 호소했다.

해고된 이종혁씨의 이의신청에 대해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보낸 이의신청 처리 결과. 이씨의 메일로 보내왔다. 해고한 사유는 물론 이의신청에 대한 기각 사유도 명시돼 있지 않다.

해고된 이종혁씨의 이의신청에 대해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보낸 이의신청 처리 결과. 이씨의 메일로 보내왔다. 해고한 사유는 물론 이의신청에 대한 기각 사유도 명시돼 있지 않다.

이씨는 현재 퇴직금 수령을 거부하며 법적 구제절차를 밟고 있다. 그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 거침없는 말이 돌아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고용안정을 위한 정규직화,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인천공항을) 성지처럼 만들었다. 우리는 직장을 잃었다. 문 대통령이 인천공항에 안 왔으면 이런 일도 없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대통령이 책임을 졌으면 좋겠다.”

옆에 있던 세 명의 노조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정규직화를 앞세워 우리를 돕는 것처럼 말한다. 우리가 ‘이미 정규직이다. 직고용 필요 없다’고 하자 정부에 저항하는 세력으로 본다. 단박에 내 편이 아니라며 멀리한다. 우리도 더불어민주당 당원이다. ‘을’을 돕는다는 민주당의 을지로위원회? 자기편에게만 ‘을’이다.

이 와중에 인천공항공사는 대화 대신 노조 통제에 나섰다. 구본환 사장은 업무방해 혐의로 노조를 고소할 방침이라고 한다. 장기호 위원장은 “공사의 새 로고(CI)를 놓고 논란이 일자 로고 유출자를 색출하라고 감사실에 지시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자회사에 공사 출신을 ‘그룹장’이라는 직함으로 낙하산 파견을 하다 노조와 정면충돌했다. “멀쩡한 자회사 정규직을 내쫓으면서 공사 고위층은 자리 잔치를 한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인천공항은 엄청난 네트워크가 모인 세계적인 허브공항이다. 다양한 기술과 업무가 결합된 곳이다. 전문성을 존중하고, 독립 경영체계를 인정하는 자회사 정규직이 맞지 않나 싶다. 이런 현실을 도외시한 무리한 직고용이 당사자는 물론 청년과 국민의 공분을 샀다”고 말했다. 이씨와 세 노조 위원장은 “3년여 간의 합의과정을 무시한 결과가 너무 참혹하다”며 “공정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청와대에 묻는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