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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동현의 이코노믹스

저금리와 과도한 대출 규제가 집값 상승 도화선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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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가계 대차대조표로 본 부동산 시장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온 나라가 부동산 문제로 시끄럽다. 도대체 얼마나 오른 걸까. KB 주택가격 동향 자료에 나타난 전국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의 시계열 추이를 보자. 1998년을 100으로 설정했다. 이를 역대 정부별로 수치화할 수도 있다. 연평균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시기는 김대중 정부 시절이다. 그다음이 노무현 정부, 그리고 현 문재인 정부다. 이명박 정부 때는 전국 아파트 가격은 소폭 상승했지만 서울과 강남의 아파트 가격은 오히려 하락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은 2%를 조금 상회하는 수준으로 지역과 관계없이 균등한 상승률을 보였다.

예금이자 적고 주식은 변동 심해 #결국 부동산으로 돈 쏠림 불가피 #LTV 너무 낮춰 매입 어렵게 되자 #전세 낀 갭투자로 몰려 집값 상승

과거와 비교해 이번 정부 들어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전국 아파트 가격 상승률 대비 서울이나 강남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역대 어느 정부보다 높다는 점이다. 전국 아파트 가격은 2.4% 오르는 동안 서울 아파트 가격은 연 8.3% 상승해 3.49배 더 올랐다. 과거 아파트 가격이 가장 많이 상승했던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에서는 이 수치가 각각 1.45배와 1.59배에 그쳤다. 가격 상승이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지역적 편차가 커졌다는 의미다.

그러면 부동산 가격이 왜 이렇게 폭등했을까. 부동산 대책이 부족했는가? 그렇지 않다. 그동안 나온 부동산 대책만 23차례였다. 석 달에 두 번꼴로 나온 셈이다.

정책은 크게 네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첫째는 조정대상 지역이나 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해 전매 제한 및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했다. 이와 함께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통한 대출억제 대책이 8번이나 거듭됐다.

둘째는 양도세나 종부세 등 세제를 강화한 대책이 9번에 달했다. 여기에 공시가격 대폭 상향 조정으로 과표기준 자체가 상향된 것을 고려해야 한다.

셋째는 주택 공급 확대였는데 횟수로는 8번이지만 청년이나 신혼 주거용을 포함해 공급량이 중복으로 발표된 부분이 있고 이중 적지 않은 분량이 공공 임대 아파트다. 최근 들어 3기 신도시 정책과 지난 8월 4일 공급대책을 통해 본격적으로 공급을 늘리겠다고 했지만 뒤늦은 감이 있다. 여기에다 임대차보호법도 있었다.

금리 낮으면 돈 빌려 집 사는 게 유리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이렇게 강력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가장 큰 이유는 저성장으로 인해 이자율이 낮아진 점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 우리나라 성장률은 추세적으로 하락해 왔고 이에 따라 금리 역시 점진적으로 하향 조정돼왔다. 금리가 낮아지면 가계의 대차대조표에는 두 가지 효과가 생긴다. 자금의 출처를 보여주는 대변의 부채와 자본 쪽에는 차입에 따른 조달비용이 하락해 차입이 용이해진다. 그러나 자산의 운용을 나타내는 차변의 예금이나 채권은 수익률 저하로 위험자산 쪽으로 옮겨가게 된다. 대표적인 위험자산은 부동산과 주식인데 우리나라는 주식의 위험 프리미엄이 장기적으로도 +값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부동산으로 옮겨가게 된다. 위험 프리미엄, 즉 이자율 대비 주택가격의 기대수익률이 양의 값을 갖는 한 차입을 통해 부동산을 매입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문제를 더 깊숙이 살펴보자. 먼저 자금의 조달을 나타내는 대변 항목에서 정부가 LTV·DTI·DSR 등 주택 담보부 대출을 제어하면 부동산 가격이 잡힐 것으로 예상하지만, 여기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전세라는 독특한 부동산 금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2017년 거듭 LTV 낮춘 게 결정적 패착

역대 정부 아파트 가격상승률 및 주요 경제지표

역대 정부 아파트 가격상승률 및 주요 경제지표

전세가와 아파트 가격의 차이는 갭 투자자 입장에서 일종의 ‘그림자 LTV (Shadow Loan to Value)’ 비율이 된다. 10억원 짜리 아파트를 차입을 통해 구매하는 경우를 가상해 보자. LTV 규제가 50%라면 (추가로 DTI나 DSR 규제를 만족할 경우) 은행으로부터 주택 담보부 대출을 5억원까지 차입할 수 있다. 반면에 전세가가 6억이면 전세를 통해 자기자본 4억원으로 주택을 살 수 있다. 이 경우 그림자 LTV 비율은 60%고 은행 차입을 통한 LTV 비율은 50%가 되는 셈으로 정부의 LTV 규제가 무력화된다.

아파트 매매대비전세 가격비율

아파트 매매대비전세 가격비율

KB 주택가격 동향이 전세가를 집계한 2011년 6월부터 현재까지 서울과 전국의 전세를 통한 LTV 비율을 보면 알 수 있다. 서울의 경우 이 비율은 50% 미만에서 시작해 2012년 중반부터 2015년까지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는 가격의 추가 하락에 대한 우려로 주택을 사기보다는 전세를 선호했고 더군다나 이자율이 하락하면서 전세가가 상승하던 시기였다. 이 그림자 LTV 비율은 2016년 중반 75% 가까이 치솟는다. 당시에는 LTV 상한선이 70%였다. 그런데 2017년 6·19대책 및 8·2대책을 통해 조정대상 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의 경우 이 비율을 60%나 40%로 낮췄다.

바로 이 부분이 갭 투자를 불러온 중대한 패착이었다. LTV 상한선을 그림자 LTV 아래로 낮추면서 오히려 전세를 통한 자금조달을 부추기게 된 것이다. 은행을 통해 차입할 경우 매입 후 실거주하는 사람이나 세를 놓는 사람이 공존하게 된다. 즉 실수요와 투기 및 ‘패닉바잉’ 수요가 섞여 있다. 반면에 전세를 통해 매입할 경우 애초 매입자는 실거주할 수 없다. 따라서 전세를 통한 구매는 가격 상승 기대감이나 우려로 인한 성격의 수요일 수밖에 없다. 은행을 통한 차입을 제한해 전세 매입 쪽을 부추기면서 이미 투기가 성행하고 있는 조정대상 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에 오히려 투기적 성격의 수요를 더 부채질한 꼴이 된 것이다. 전형적인 ‘규제의 역설’이다.

키워드

LTV  시세 중 대출금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담보인정비율(Loan to Value Ratio). LTV 규제는 이 LTV 비율의 상한선을 규제하는 비율로 원래는 은행의 건전성을 규제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예를 들어 LTV 상한선을 70%로 설정할 경우 담보물인 주택가격이 30% 이상 하락하지 않는다면 원금 상환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에는 주택 담보부대출의 총량규제 측면에서 활용되면서 상한선을 낮춰 신규대출을 억제한다. 현재 상한선은 비규제지역은 70%, 조정대상 지역은 9억원 이하 50%, 9억원 초과 30%, 투기과열지구의 경우 9억원 이하 40%, 9억원 초과 20%, 15억원 초과는 대출이 불가능하다.

‘맏아들’ 제치고 ‘부동산’이 확실한 노후대비가 된 현실

이번엔 가계의 대차대조표 차변 항목 쪽을 보자. 현재 고령화로 60세 이상 인구가 21.6%에 이른다. 이들 중 대부분이 은퇴자들인데 이들이 국민연금이나 개인연금 등을 수령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부분 그동안 벌어놓은 재산으로 노후 생활을 영위해야 한다. 순자산의 분포는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넓어질 수밖에 없다. 일생의 소득이 누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극빈층도 많지만, 상대적으로 부유층도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자율이 하락하면서 10억원을 예금해도 이자가 한 달에 100만원이 채 안 된다. 이러니 부유층도 위험을 감수하고 자영업에 뛰어들든지 아니면 추가로 부동산을 매입해 임대수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여당 소속의 한 시장이 주택을 9채 소유한 것이 밝혀지자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라고 실토한 것이 현실이다. 공적연금이 제 기능을 못 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노후 대비는 과거의 ‘맏아들’이 아니라 이제 ‘부동산’이 된 것이다. 이러한 수요는 대출을 억제한다고 잠재우기 쉽지 않다.

이렇게 가계의 대차대조표 양쪽을 분석해 보면 부동산 금융 규제가 왜 효과가 제한적이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초저금리 시대에 대응해 주택 담보부 대출을 제약하는 ‘거시건전성 규제(macro-prudential regulation)’ 정책이 많이 피력되었으나 이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고 심지어는 오히려 투기를 조장할 수도 있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긴 것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