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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하현옥의 시시각각

장관님의 뉴딜 펀드 ‘불완전 판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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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현옥 경제정책팀 차장

하현옥 경제정책팀 차장

“원금 보장되는 펀드라…. 한마디로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란 말이에요.”

‘뉴딜펀드’ 투자 안정성 부각하려 #‘사실상 원금보장 유사 효과’ 강조 #이익은 투자자, 손실은 국민 감당

지난 3일 발표된 20조원 규모의 ‘정책형 뉴딜펀드’에 대해 금융권 관계자가 내놓은 촌평이다. 투자 안정성을 강조하기 위해 관계 장관들이 ‘사후적 원금 보장 성격’을 운운한 것이 형용 모순이자 어불성설이란 말이다.

뉴딜 펀드는 ‘한국형 뉴딜’ 사업 재원을 조성하기 위한 금융상품이다. 일반 국민과 민간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내건 것이 이른바 원금 보장이다. 지난달 5일 당정은 뉴딜펀드 구상을 발표하며 “원금 보장”이라고 했다. 하지만 투자자에게 일정의 이익을 보장하거나 손실 보전을 약속하는 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현행법(자본시장법 55조)에 어긋난다는 지적에 “원금 보장 추구”라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다 이날 발표 자료에는 해당 표현은 사라지고 ‘투자리스크 우선 부담’이라고 뭉뚱그렸다.

원금 보장이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이날 오후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심폐소생술을 했다. 브리핑에서 ‘사실상의 원금 보장 유사 효과’를 강조한 것이다.

은 위원장은 “정부가 평균 35%로 후순위 출자하는 만큼 펀드에서 손실이 발생해도 마이너스 35%까지는 손실을 흡수할 수 있다”며 “사전적으로 원금이 보장된다고 명시하지 않았지만 사후적으로 원금이 충분히 보장될 수 있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홍 부총리도 “정부가 사실상 (원금을) 보장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라고 말을 보탰다.

현행법 위배 여부를 제쳐놓더라도 더 큰 문제는 ‘사실상의 원금 보장 유사 효과’를 위해 정부가 구상한 방법이다. 한마디로 세금 투입이다. 정부가 후순위 출자를 하면 손실이 생겼을 때, 정부 재정과 정책금융기관이 투입한 돈부터 손실로 처리된다. 세수나 빚을 내(국채 발행) 마련한 돈으로 손실을 메워야 한다. 뉴딜펀드의 이익은 투자자가 가져가고, 손실은 국민이 감당하는 셈이다. 납세자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경제부총리와 금융위원장이 ‘사실상의 원금 보장’을 강조했지만, 이것도 장담할 수는 없다. 정부 출자 범위를 넘어서는 수준의 손실이 발생하면 ‘사실상의 원금 보장’은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 장관님 말만 믿은 투자자들이 정부의 ‘불완전 판매’란 볼멘소리를 할 수 있는 지점이다.

‘장관님의 뉴딜펀드 불완전 판매’ 가능성을 더하는 자료도 나왔다. 브리핑 직후와 이튿날인 지난 4일 기재부와 금융위는 보도 참고자료에서 “정책형 뉴딜펀드 운영 시 재정의 우선적인 부담비율은 10% 수준을 기본으로 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손실 발생 시 정부가 감당할 몫은 10%라는 것이다. 장관님들의 호언장담(35%)에도 10% 손실만 책임진다는 이야기다.

일련의 전개 과정은 불완전 판매의 트라우마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원금 전액을 날린 투자자까지 발생했던 해외금리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다. 주요 쟁점 중 하나는 “원금이 손실날 가능성은 없다”던 판매사(은행)의 불완전 판매였다. 금융감독원은 DLF 불완전 판매에 대해 투자 원금의 40~80%를 돌려줄 것을 권고했다.

‘한국판 뉴딜’이 성공하면 손실 따위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지난 3일 ‘제1회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를 주재한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은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린 일”이라고 강조한 만큼, 정부와 기업의 전력투구 속 사업 전망은 밝을 듯해서다.

그럼에도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만 흘러가진 않는다. 만약 손실이 나면 세금으로 메워야 하고, 그것도 부족하면 ‘사실상 원금 보장’을 언급한 장관님의 불완전 판매에 배상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이래저래 들어가는 돈은 세금 아니면 나랏빚이다. 대통령의 말처럼 ‘한국판 뉴딜’에 대한민국의 또 다른 미래가, 국민의 부담이 달리게 됐다.

하현옥 경제정책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