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look] 20조 투자처, 민간경쟁 통해 사업성 높은 프로젝트 발굴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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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청와대에서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청와대에서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 3일 뉴딜펀드 조성 방안을 발표한 이후 논란이 뜨겁다. 시중 자금을 디지털·그린 인프라 등 생산적 분야로 옮겨 경제를 도약시키겠다는 취지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20조원 규모의 뉴딜펀드 자금 조달과 운용 방식을 둘러싼 여러 가지 오해가 있다.

정부 개입 땐 ‘정치금융’ 부작용 #특정지역 위주 사업 선정 등 우려 #손실 일부 보전하는 공공펀드 #미국·독일·영국에서도 활용 #뉴딜펀드, 국민 참여 이끌려면 #출시 후에도 성과 투명 공개를

우선 ‘혈세’ 투입 논란을 들 수 있다. 정부가 밝힌 정책형 뉴딜펀드는 모(母)펀드와 자(子)펀드의 구조다. 투자 손실이 발생하면 모펀드 투자자인 공공부문이 우선 부담하고 자펀드 투자자는 손실을 최소화한다. 이런 투자 방식은 국제적으로 공공 인프라 투자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공공 인프라 투자는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 자금이 소요되고 사업 기간 중 예상치 못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민간 투자자에게 손실 제한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운송인프라금융법(TIFIA)에 근거한 펀드, 독일의 디지털인프라펀드, 영국의 런던그린펀드 등이 비슷한 방식이다. 독일·덴마크·일본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친환경 인프라 구축을 위해 시민 참여형 펀드를 출시한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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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서울 지하철 9호선 펀드, 군산 새만금 신재생에너지 펀드 등이 대표적인 손실 제한형 시민펀드로 꼽힌다.

뉴딜펀드를 개방형 주식형 펀드로 보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도 있다. 상장주식펀드(ETF)를 제외한 대부분의 뉴딜펀드는 폐쇄형 채권형 펀드에 가깝다. 따라서 채권 투자의 일종으로 이해하는 게 올바르다. 최근 5년간 국내 인프라 투자의 연평균 수익률은 5~7% 안팎이었다. 수익의 대부분은 배당과 이자로 구성된다. 예컨대 국민연금 기금의 국내 인프라 투자를 살펴보면 2018년 수익률은 9.4%, 지난해 수익률은 6.2%였다. 다만 투자금액이 장기간 묶일 수 있는 위험은 있다. 이 문제는 폐쇄형 펀드를 한국거래소에 상장시켜 사고팔 수 있게 하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뉴딜펀드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지적도 나온다. 첫째는 시장의 자원 배분 기능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민간에서 경쟁을 통해 사업성이 뛰어난 프로젝트를 발굴하도록 유도해야지 정부가 자원 배분에 개입하면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시장에서 위험하다고 평가해 선택하지 않은 사업을 정부가 맡아 수행하면 해당 사업에서 발생한 손실은 다음 세대에게 넘어갈 수 있다.

둘째로는 ‘구축(驅逐)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정부의 재정지출이 민간투자를 위축시키는 문제다.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결정돼야 할 사업을 공공부문이 맡으면 민간이 시장에 참여할 유인을 낮춘다. 결국 민간부문의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셋째는 ‘정치금융’의 우려다. 뉴딜펀드가 추구하는 프로젝트 가치와 사업성을 우선하지 않고 힘있는 유력 정치인의 지역구 사업을 우선할 수 있다는 점도 그중 하나다. 특정 지역 위주로 인프라 프로젝트가 선정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넷째는 기업과 투자자들의 비정상적인 행태가 발생할 수 있다.

뉴딜펀드의 자금을 지원받고 싶은 기업들이 너도나도 뉴딜과 관련이 높다고 포장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사업 내용이 얼마나 뉴딜과 관련돼 있는지는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한국거래소가 개발한 뉴딜지수에 편입될 가능성을 내세워 관련 주식에 무분별한 투자가 이뤄질 우려도 있다. 뉴딜지수에 편입되는 기업 정보를 사전에 알고 선행매매를 할 위험도 존재한다.

한국 경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의 협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20조원 규모의 뉴딜펀드를 성공적으로 도입하기 위해선 세 가지 방향을 제시하고 싶다.

첫째로 뉴딜펀드는 시장 친화적인 펀드여야 한다. 투자자에겐 위험에 비례해 기대 수익률을 제시해야 한다. 저위험 상품에 기대 수익률이 높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민간 사업자 간 경쟁을 통해 뉴딜이 추구하는 가치와 사업성이 우수한 프로젝트를 발굴할 수 있어야 한다. 런던의 도시재생펀드처럼 크라우드 펀딩(대중의 투자로 자금 조달)을 통해 시민 아이디어를 모아 투자하는 것도 방법이다.

둘째로 뉴딜펀드는 국민 참여형 펀드여야 한다. 누구나 뉴딜펀드에 쉽게 참여할 수 있으려면 수익구조가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판매 절차도 간편해야 한다. 뉴딜펀드 출시 후 투자 대상 프로젝트의 성과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해외 사례처럼 뉴딜펀드 성과의 일부분을 모아 공공 인프라 사업에 재투자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셋째로 뉴딜펀드는 지속 가능한 펀드여야 한다. 디지털·그린 인프라 사업은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다. 따라서 자금 조달에 안정적인 기반이 필요하다. 뉴딜 금융의 생태계도 강화해야 한다.

이를테면 뉴딜 관련 사업과 기업을 객관적으로 선별할 수 있게 분류 체계와 인증 제도를 갖춰야 한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관련 공시 의무와 평가 체계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효섭

이효섭

이효섭

국내외 금융·자본시장 연구에서 주목받는 연구자다. 포스텍에서 수학·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뒤 KAIST 경영대학원에서 경영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0년 자본시장연구원에 합류한 뒤 ‘디지털 혁신을 위한 한국 금융투자업계의 과제’ 등 다양한 보고서를 내놨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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