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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교 의인 “가드레일 휜 것 보고 뛰쳐나갔다…피해없어 다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다리가 강물로 떨어질 때 느껴졌던 진동과 소리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난 3일 오전 강원 평창군 진부면에서 붕괴 직전의 송정교에 들어선 차량을 급히 돌려보낸 박광진(58)씨는 6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큰 사고를 막아 다행”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박씨는 “승용차가 다리를 지나는 걸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생각 만으로 힘껏 소리를 치고 마구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박광진씨 굴삭기 경력 40년 베태랑 중장비 기사 #가드레일 휜 것 발견하고 최초 붕괴 감지 #상판 주저 앉은 것 보고 뛰쳐나가 #목숨 건진 운전자 "고맙다" 감사 인사

사고를 면한 운전자에게 지난 4일 감사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박씨는 “승용차 운전자는 송정교에 진입할 때만 해도 이상을 감지하지 못했다더라. 그러다 내가 수신호를 보내는 모습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 싶어 서둘러 후진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송정교가 무너지기 불과 30초 전 수신호로 맞은 편 차량 진입을 막아 아찔한 인명사고를 막은 그에게 사람들은 ‘용감한 시민’, ‘영웅’, ‘의인’ 등 수식어를 붙여 찬사를 보냈다.

박씨는 송정교에서 60m 떨어진 주택 2층에 산다. 박씨는 사고가 난 날 아침 2층 거실에서 평소처럼 송정교를 내려다 봤다. 그는 일직선이어야 할 다리 옆 가드레일 3개가 휘어진 모습을 보고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직감했다고 한다. 굴삭기 운전 경력 40년으로 교량 공사에서도 여러번 일해본 적 있는 그의 눈썰미와 신속한 현장 대처가 인명 사고를 막은 셈이다.

지난 3일 강원 평창군 진부면 하진부리 송정교가 제9호 태풍 '마이삭'에 불어난 강물로 일부 유실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강원 평창군 진부면 하진부리 송정교가 제9호 태풍 '마이삭'에 불어난 강물로 일부 유실돼 있다. [연합뉴스]

다리가 무너질 것을 언제 예상했나.
“3일 오전 7시25분 정도였다. 강물이 하도 불어났길래 송정교를 유심히 보니 다리에 설치된 가드레일 3개(차도 2개, 인도 1개)가 일직선이 아니고 약간 곡선으로 휘어져 있었다. 심상치 않은 것 같아서 7시26분에 동네 이장한테 전화를 걸어 ‘다리가 무너질 것 같은데 면사무소에서 나와서 조처를 하라고 연락하라’고 전했다.”
송정교로 뛰쳐나가기 직전 상황은.
“이장에게 전화를 하고 나서 다리를 보니 평평했던 상판이 ‘V자’ 모양으로 살짝 주저앉은 게 보였다. 붕괴 전에도 차량 몇 대가 지나갔는데, 마지막 차량이 상판에서 덜컹 하고 넘어가는 모습을 보고 큰일 나겠다 싶어서 재빨리 송정교로 뛰어갔다. 나와서 보니 다리 상판이 50㎝ 정도가 내려앉아 있었고, 그때부터 내가 서 있는 진입로에는 차가 못 오게 막았다.”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보면, 다리에 진입한 맞은편 승용차를 보고 급히 손짓을 했다.
“그 승용차가 반대편에서 진입해 올 때는 나를 못 본 것 같더라. ‘넘어오면 안돼’라고 있는 힘껏 소리쳤지만, 빗소리와 강물 소리에 묻혀서 안 들렸던 모양이다. 손으로 ‘X’ 표시를 보내고, 마구 손사래를 치니까 이 모습을 알아봤는지 그때부터 비상등을 켜고 후진해서 다리를 빠져나갔다.“
화를 면한 승용차 운전자와 나중에 통화해봤나.
“이틀 전에 전화로 ‘너무너무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받았다. 그 사람은 당시 송정교에 진입할 때 아무 이상을 감지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내가 필사적으로 막는 모습을 보고 이상한 느낌이 들어 후진으로 빠져나갔다고 한다. 그분도 다행히 건설업을 하는 분이라 위험한 상황이란 걸 눈치채신 것 같다.“
일반인이라면 가드레일이 휘어지는 거 알기 힘들 것 같다.
“굴삭기 기사를 하면서 교량 공사를 많이 해봤다. 고속도로, 철도, 일반 도로, 교량 건설에서 쌓은 현장 경험이 이번 사고 때 빛을 발한 것 같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고, 다친 사람이 없어서 천만다행이다.”

평창군에 따르면 최근 제9호 태풍 ‘마이삭’ 영향으로 진부면에 225㎜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이 비로 1989년 지어진 송정교의 교각과 상판이 붕괴했다. 평창군 관계자는 “다리 상판을 받치고 있던 교량 1개가 강물에 유실되면서 15m 길이 상판이 주저앉았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송정교는 진부면 하진부리 시가지와 송정리를 잇는 길이 150m, 폭 8m의 다리다. 왕복 2차선 도로와 인도 하나가 있다. 인근 마을에는 인도교를 포함해 다리가 3개 있는데, 상류에 있는 송정교를 이용하는 차량이 가장 많다. 송정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선 이 다리를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평창군에 따르면, 송정교는 지어진 지 31년 된 만큼 보수공사를 한 적은 있지만 매년 진행하는 안전점검에서 심각한 위험 징후가 발견되진 않았다고 한다. 2017년 정밀점검에서 B등급 판정을 받았고, 2018년 다리에 균열이 생겨 보수공사를 했다. 올해 상반기 점검에서도 큰 이상이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최종권 기자, 평창=박진호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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