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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매년 만기 때 지르는 환호…‘욜로통장’ 만들기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신성진의 돈의 심리학(77)

'오케이 마담'은 시장에서 꽈배기 장사를 하는 아내와 함께 여행을 가고 싶은 남편이 열심히 돈을 모아 하와이로 떠나게 되는데, 그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담은 영화다. [사진 영화 오케이마담 스틸]

'오케이 마담'은 시장에서 꽈배기 장사를 하는 아내와 함께 여행을 가고 싶은 남편이 열심히 돈을 모아 하와이로 떠나게 되는데, 그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담은 영화다. [사진 영화 오케이마담 스틸]

우울한 날의 연속이다. 코로나19가 재확산하더니 태풍에, 물난리에 온통 우울한 이야기뿐이다. 코로나 발병 이후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극장에 가 영화를 봤다. 우울함을 날리고 싶어 선택한 영화는 엄정화 주연의 ‘오케이 마담’. 오랜만에 즐겁게 웃었다.

이 영화의 모티브는 ‘하와이 여행’이다. 시장에서 꽈배기 장사를 하는 아내와 함께 여행을 가고 싶은 남편이 열심히 돈을 모아 하와이로 떠나게 되는데, 그 비행기 안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구체적인 내용은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좋을 것 같고 영화에서 찾아낸 돈 이야기를 해 보자.

하와이 여행을 가는 독특한 방법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고 싶지만 씨도 안 먹히는 짠돌이 아내. 사랑하는 아내 미영(엄정화)과 여행을 가고 싶은 남편 석환(박성웅)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다. 그것은 바로 여행 이벤트 당첨이다. 석환은 음료수 뚜껑에 ‘하와이 여행’이라는 문구를 정교하게 새겨 넣은 뒤 경품에 당첨되었으니 같이 여행을 가지고 아내에게 말한다. ‘하와이 여행’에 당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영은 여행을 가기보다는 돈으로 받고 싶었다. 하지만 미영은 사랑하는 딸을 위해 여행을 가기고 결심하고 비행기를 타게 된다.

아내를 속인 ‘사기’이긴 하지만 이런 사기는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석환이 여행 경비를 모으는 시간, 모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신나고 행복했을지 생각해 봤다. 4가족 하와이 여행경비는 시기와 이용하는 호텔 등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 있지만 4박 5일 정도를 잡으면 일 인당 200만원은 있어야 한다. 전 가족 여행비로 여유 있게 1000만원 정도를 예상하면 월 10만원씩 8년 정도, 월 20만원씩이면 4년 정도, 월 30만원씩이면 2년 반 정도 모으면 된다.

예산을 세워놓고 그 돈을 한달 한달 모아나가는 과정은 남편 석환에게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이었을 것 같다. 드디어 계획한 돈이 다 모였을 때, 프로젝트는 완성된다. 병뚜껑에 ‘하와이’라는 글이 새기고 아내 미영에게 그 뚜껑을 전달한다. ‘여보, 우리 하와이 당첨됐어!’

나만의 ‘하와이 여행’계획 짜보자

먼저 여행 목표를 정해 보자. 하와이도 좋지만, 코로나 때문에 당분간 쉽지 않을 것 같으니 제주도도 좋고, 속초도 좋고, 부산도 좋다. [사진 pxhere]

먼저 여행 목표를 정해 보자. 하와이도 좋지만, 코로나 때문에 당분간 쉽지 않을 것 같으니 제주도도 좋고, 속초도 좋고, 부산도 좋다. [사진 pxhere]

영화의 ‘하와이 여행’ 같은 이벤트에 운 좋게 당첨되는 사람이 있다. 나도 가끔 모임에서 경품이 당첨되곤 한다. 기분 좋다. 하지만 기대할 수도 예측하기도 힘든 일이다. 그것 말고 오케이 마담에서 남편 석환처럼 가족이 함께 즐기는 행복을 만들어 보자. 두 가지 방법이 있을 것 같다.

첫째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개인이나 가족이 함께 이루어가는 것이다. 먼저 여행 목표를 정해 보자. 하와이도 좋지만, 코로나 때문에 당분간 쉽지 않을 것 같으니 제주도도 좋고, 속초도 좋고, 부산도 좋다. 평소에 하지 않던 스타일로 약간 사치스러운 계획을 세워보자. 하와이라면 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지금 대한민국에서 하와이까지 줄을 그은 다음 타고 갈 비행기를 하나 만들어 지도에 붙여 놓자.

1000만원을 목표로 했을 때, 돈이 저축되는 만큼 비행기를 하와이로 조금씩 옮겨가 보자. 100만원이 모이면 서울에서 하와이까지 거리(7591km)의 10분의 1되는 지점으로 옮기는 것이다. 돈이 모일수록 하와이가 점점 가까워지고 행복도 점점 커진다.

가족여행이라면 가족이 함께하면 더 좋다. 예전에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도 여행을 할 때 이런 식으로 해 봤는데, 아이들도 즐겁고 나도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이 돼지저금통장에 넣은 돈이 얼마나 되는지 적어 놓고, 여행을 가면 아이들이 저축한 돈만큼 여행에서 쓸 수 있도록 하면 더 즐겁게 돈을 아끼고 모은다. 돈이 모이면 여행을 떠나면 된다.

두 번째 방법은 구체적인 목표는 세우지 않고 매월 사치를 위한 저축을 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한 달에 10만원을 무계획·무목표 욜로 저축을 하는 것이다. 한 달에 10만원을 저축하면서 한 통장에 다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5개 통장에 2만원씩 저축을 한다. 같은 2만원이지만 기간은 다르다. 하나는 만기 1년, 하나는 2년, 하나는 3년, 하나는 4년, 하나는 5년 만기다. 이렇게 다섯 개 통장에 2만원씩 저축을 하면서 만기가 되면 그 돈을 신나게 쓰면 된다.

이렇게 하면 첫해는 원금 24만원, 2년째는 48만원, 3년째는 72만원, 4년째는 96만원, 5년째는 120만원이 된다. 그리고 만기가 되면 그때는 5년짜리 저축을 다시 시작하면 된다. 그러면 매년 5년짜리 적금이 하나씩 만기가 되어 돌아온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득이 늘거나 좀 더 저축액을 늘리고 싶다면 한 통장에 3만원, 4만원씩 늘여가는 것도 좋다. 아니면 통장 개수를 3개 정도로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면 매년 조금 더 많은 목돈이 쌓인다.

매년 만기가 되면, 그 시기에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모은 돈으로 하면 된다. 평소에 사기 부담스러웠던 것을 사는 것도 좋고 여행이나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도 좋다.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을 수도 있지만, 이 돈은 저축하기보다 쓰는 것이 좋다. 소비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면 저축이나 노동의 즐거움을 알기도 힘들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사치를 위한 통장?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늘 힘들고 우울하고 여유가 없었다. 매월 빡빡하게 살아왔고 여유가 없다보니 저축은 못하면서 살았다. [사진 pixabay]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늘 힘들고 우울하고 여유가 없었다. 매월 빡빡하게 살아왔고 여유가 없다보니 저축은 못하면서 살았다. [사진 pixabay]

이 글을 읽고 지금 시대에 적절한 글이냐고 힐난할 분이 계실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이게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해 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늘 힘들고 우울하고 여유가 없었다. 매월 빡빡하게 살아왔고 여유가 없다 보니 저축은 못 하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가끔 지름신이 강림하면 돈이 없으니 카드를 긁어 힘든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지 말고 자신의 수준에 맞게 ‘사치 통장’을 준비해 보자. ‘욜로통장’ 또는 사치 통장이라고 부르는 이 통장은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부담 없는 금액으로 시작할 수 있다. 자신의 재무 상태에 따라 큰 무리가 가지 않는 금액을 저축하면 된다. 집을 사고 자동차를 바꾸고 자녀 유학을 보내는 재무목표는 큰 금액이 필요하다. 하지만 욜로 저축은 1만원부터 10만원 정도, 무리가 가지 않는 금액이 좋다.

둘째, 저축과정이 즐겁고 행복하다. 저축액이 부담스럽지 않아서 좋고, 만기가 돌아오면 지를 수 있는 행복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제주도가 하와이가 점점 가까워지면 일상이 어렵고 우울해도 좀 즐겁고 신난다.

셋째, 만기의 즐거움을 누리게 한다. 욜로 저축은 무엇보다 1년에 한 번씩 돌아오기 때문에 만기의 즐거움을 자주 맛보게 한다. 적금을 시작하고 1년, 3년, 5년 만기를 맛보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무언가를 위해 저축을 하고 만기에 그 돈을 사용하는 맛은 목표를 세우고 목표 달성을 한 후에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는 모습을 갖는 데 도움이 된다.

글을 마치며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상상을 해 본다. 매일 매일 일상이 힘들지만 가끔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서 차곡차곡 쌓여가는 통장을 보면서 키득키득 웃는 즐거움을 누려보는 것? 우울한 세상에서 치료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한국재무심리센터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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